우리 아들은 어릴 때 밖에 나가서 노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 자전거를 타고, 벽을 타고, 나무를 타고, 뛰어 다니고, 봄이면 개구리를 여름이면 벌레들을 잡으면서 놀았다. 친구들에게 개구리를 잡아서 한 마리씩 나눠주기도 하고 놀이터에서 하루종일 놀며 들르는 모든 아이들과 함께 놀다가 해질 무렵이면 집에 돌아왔다. 나도 어린 시절 산으로 들로, 동네 골목길로 놀러다니며 컸던 기억이 있어서 아들이 밖에서 노는 것이 참 좋았다. 선사시대부터 내려오는 자연을 좋아하는 인간의 본성을 아들이 지니고 있는 것도 참 좋았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라 생각하는 내게는 그것이 참으로 자연스럽고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이웃들에게는, 특히 아들 친구들의 엄마들에게는 그다지 좋아보이지 않았나 보다. 어느 순간부터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왜 아들을 관리를 안하냐고. 학원은 안 보내냐고. 그리고 어떤 엄마들은 우리 아들 딸이 듣는 앞에서 자신의 아이에게 우리 아들과 놀지 말라고까지 말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 아들은 초등학교 1~2학년을 보낸 학교에서 남자 친구들의 생일파티에는 한 번 도 초대받지 못했다. 여자 아이들은 우리 아들이 재미있다며 생일 파티에 초대를 하기도 하고, 엄마들 식사에도 초대를 받았는데 신기하게도 남자 아이들 생일에는 단 한 번도 초대를 받지 못했다. 지금도 그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다. 아무튼 아들이 주변 어른들에게 적대감을 갖기 시작한 것은 이 무렵부터였다. 내가 일을 하는 탓에 아들은 엄마 아빠가 없는 상태에서 축구클럽 연습에 참여를 했다. 그 자리에는 나를 제외한 모든 엄마들이 자신의 아이들을 응원하러 나왔었고, 아들은 일상 생활에서도
학교의 행사에서도 보호자 없이 다른 어른들을 마주했고, 마주했던 어른들은 아들에게 그렇게 따뜻한 느낌을 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유난히 어른들을 경계하고, 완전히 자신에게 우호적이라는 확신이 들면 긴장을 푸는 아들의 모습을 보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것이 아들이 중학교 생활을 하면서 자신을 대하는 선생님들의 강한 어투나 존중감 없는 태도에 민감하게 반응하게된 배경이 되었던 것 같다. 마음이 아팠지만 우리 가족의 상황에서는 피할 수 없는 일이라,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지만 모든 것에서 아들이 안전하고 편안하다 느끼는 상황을 만들어 주지는 못했다. 아들이 커가면서 조금씩 단단해 지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한창
방황하고 있는 아들이지만 이러한 좋고 나쁜 모든 관계를 통한 경험들이 아들을 스스로 성찰하게 하고 단단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 믿고 있다. 그러한 좋고 나쁜 경험들을 하는 동안 우리 부모가 해야할 것은 흔들리지 않고 믿어주고 기다리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이다.
이렇듯 활동적인 남자아이는 우리 아들만은 아닐 것이다. 여자 아이들보다 남자아이들은 활동성이 많고, 적절한 신체 활동을 해 주어야 지적인 활동도 더욱 원활이 소화를 할 수 있는 이렇게 몸이 근질거리고 뛰어다니기를 좋아하는 남자 아이들이 요즘 학교 생활을 하는 것 또한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러 가지 여건들로 인한 제약과 80% 이상의 여교사 비율로만 보아도 남자 아이들의 학교 생활이 그리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남자 아이들은 입학하는 순간부터 제약, 제제, 꾸중을 들으며 매일 매일의 학교 생활을 해 나가고 신체 활동을 클럽을 통한 스포츠 활동으로 대체를 해 주어도 자연스러운 신체활동은 여러가지 요인에 의해서 지극히 제한이 되고 있는 것이 우리 아이들의 현실이다.
내 친구 중에 일찍 결혼하고 서른 살까지 모두 세 명의 아들을 낳은 친구가 있다.
그 친구 왈
“아들은 반은 남의 자식이라고 생각해~!!”
그 때는 우리 아이들이 어려서 어렴풋이 그렇겠구나… 짐작을 하는 정도였지만, 지금은 폭풍 공감을 한다. 엄마는 남자 아이의 특징을 잘 모를뿐만 아니라 알아도 이해하기는 좀 힘들지 않을까 한다. 그런 아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은 폭발적으로 많아진다. 꼴통쇼(꼴찌들의 통쾌한 승리쇼)의 진행자인 이영석씨는 아들은 내놓고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어떻게 내놓고 키우지?’
엄마들은 이 걱정, 저 걱정이 많다. 요즘처럼 험한 세상에 아들을 내놓고 지내기는 정말 불안하다. 나쁜 일을 당할 수도 있고, 나쁜 짓을 할 수도 있고, 특히 이 디지털 시대와 밤이
밝은 시대의 아들들은 예측불허이다. 전국, 아니 전 세계와 연결이 되는 디지털 환경에, 실명제도 아닌 SNS 플랫폼에, 밤새도록 운영하는 pc방이며, 편의점 등으로 불이 꺼지지 않는 밤의 환경은 아이들이 밤에 활동을 하기에 최적화 된 환경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춘기의 아이들은 이제 부모들의 통제에서 끊임없이 벗어나려한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자아가 커가고, 호기심도 기존 질서에 대한 의문도 생기고, 서서히 부모로부터 독립을 독립을 꿈꾸는 것은 반드시 겪어야 할 과정이다. 아이들이 미숙하고 현실감각이 떨어지더라도 부모는 이 시기부터는 아이들의 독립성을 인정해 주고
결정권을 서서히 아이들에게 주어야 한다. 물론 아이들에게 부모의 가치관과 소신을 끊임없이 주지시키고 심어주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당장 아이들에게 바로 먹히고 실천이 될 것이라는 기대는 접는 것이 좋겠다. 부모의 옳은 가치관을 심어주는 과정은 아주 오래 걸릴 것이다. 오랜 기간에 걸쳐 아이들의 머리와 몸과 마음에 새겨질 것이다.
나는 어릴적부터 친정 부모님 두 분이 책을 읽고 글을 쓰시는 모습을 지켜보아 왔다. 문학을 전공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젊은 시절의 나는 책을 그리 즐겨 읽지는 않았다. 그런데 참으로 놀랍게도 나이를 먹을수록 수십 년 보아왔던 부모님의 모습을 내가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 어릴 적부터 강요하지 않고 꾸준히 보여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아이들을 가르칠 수는 있어도, 강요할 수는 없다고 한다. 부모에게 필요한 것은 역시 오직 사랑과 인내심이다.
‘기-승-전-사랑’이다. 그리고 사랑은 우리 아이들이 어떤 꿈을 꾸든 움직이게 해줄수 있는 마법의 원동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