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스스로 자라는 힘이 있다 똑똑하고 창의적인 아이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보단 행복한 아이로 커 가길 바란다. 시간이 갈수록 아이는 어른들에 의해 키워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커간다는 생각이 든다. 자녀들을 좋은 대학을 보낸 부모가 아이들을 잘 키웠다며 사람들이 너스레를 떨 때, 아이를 키워줄 만큼 여유가 있지 않고 삶과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부모들도 있다. 그들의 아이들은 부모가 주는 최소한의 지지와 관심을 받으며 때로는 독립적으로 때로는 소외감을 느끼며 이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간다. 부모가 아이를 잘 케어하지 못하고 공부를 잘 하도록 이끌어주지 못하여 아이가 방황하기도 하고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한다고 그 아이를 잘못 키운 것은 아니다. 아이는 부모가 키운다고 자라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자라기 때문이다. 한 사형수의 두 자녀를 성인이 되어 추적조사한 결과 한 자녀는 아버지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고, 다른 한 자녀는 그러한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 힘을 다하여 성공한 삶을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부모가 먹고 살기 바쁘고 힘겨운 삶을 살아도 그 어려움을 함께 공감하여 열심히 사는 자녀가 있는가 하면, 부모의 어려운 형편을 원망하며 방황하는 자녀가 있을 수도 있다. 무엇이 어디부터 잘못되어 아이들이 방황을 하게 되는지 원인을 명확히 밝힐 수는 없지만, 아이들이 방황하는 요인은 여러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을 하는 것 같다. 사실 원인을 밝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명확히 알 수 없는 원인을 밝히는데 집중하기 보다는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해결책을 하나씩 찾아가면 될 것이다. 지금 당장은 아이가 방황하고 있어서 부모로서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하고, 우울해지기도 할 것이다. 나도 어쩌면 우리 아들이 살짝 방황했으면, 아직도 조급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중학교 시절 2년을 통째로 모든 것이 틀어져 자신을 놓아버린 아들 앞에서 난 모든 것을 내려놓지 않을 수 없었다. 아들이 2학년 때 같은 반으로 한 친구가 전학을 왔다. 그리고 그 후 2년을 그 친구와 함께 방황을 하면서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부모의 이혼과 재혼으로 인해 방황하게 된 친구. 아버지와 살았는데 새엄마와 문제가 있어 집을 나와서 돌아다니던 친구. 참 착한 아이인데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는 생각을 했다. 여하튼 2년 동안 그 친구를 때로는 몇 주씩 데리고 있기도 하고, 최대한 아이에게 따뜻함을 느끼게 해주고자 애를 썼다. 두 번째 중학교를 다니고 있던 아이와의 의논 한 마디 없이 아이의 아버지는 전학 당일에 학교로 예고도 없이 아이를 데리러 왔고 아이는 억지로 끌려서 세 번째 중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중학교 시절을 세 학교를 다녔으니, 아이는 마음 붙일 동네도 친구도 없었다. 그 친구는 전학을 가고도 한 동안은 집을 나와서 우리 동네로 왔고, 때로는 우리 집에서, 때로는 길거리에서 밤을 보내게 되었다. 결국은 재워주니까 아이가 집을 나간다고 그 아이의 부모들에게 원망을 받았고, 그 아이는 우리에게 미안해서 더 이상 오지 않고 추운 겨울을 밖에서 보냈다. 우리 아들이 방황을 하면서 느낀 점은 부모들은 모두
아이들이 친구를 잘못 만나서 그렇다 생각하고, 내 아이는 그 친구를 만나지 않았으면 그렇게 되지 않을 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처음엔 나도 일하는 엄마의 부재로 그런 친구들을 만나서 아이가 탈선을 하고 방황을 하게 되는 것이라 생각했고, 처음 그 길로 안내한 친구들이 원망스러울 뻔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아들에게 물어보았다. “가끔 엄마는 o o 이가 전학오지 않았더라면, 울 아들이 집을 나갈 일도 없었고, 방황을 하지도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보는데, 네 생각은 어떠니?” “에이, 엄마~ 그렇지 않아요. 그런 친구들이 있어도 휩쓸리지 않고, 방황하지 않을 친구들은 안 하는 거고, 난 놀이가 재밌으니까 내가 선택한 거예요~ 그런 생각 하지 마세요~!!” 아들 말이 맞았다. 외부적인 자극들이나 요인들이 다소 작용은 했겠지만, 결국 내 아이가 방황하는 것은 그것이 가족의 문제이건, 주변 환경의 문제이건 그 요인들이 아이의 마음에 작용을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뇌가 다르게 작용하고, 방황을 많이 하는 사춘기 아이도 대체로 이상한 상태이다가 가끔씩 멀쩡한 상태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가 보기에 비정상적인 행동들을 하기도 하지만 자신을 제대로 보고 있기도 하다. 아이들은 순간순간 자신의 현재 위치를 제대로 바라보기도 한다. 중2 때는 미친듯이 아무것도 안 보이던 아들이, 중3이 되니 주변이 조금은 보이고, 이제 가끔씩은 제정신으로도
돌아온다. 최근까지 신나게 놀다가 이제 일주일에 4~5일은 하루8시간 이상 아르바이트를 한다. 사고 치는 일이 줄어들고 있고, 가끔씩 감동적인 얘기도 한다. 물론 아주 가끔이지만. 얼마 전엔 밤낮이 바뀌어 새벽에 내가 일어난 시간에 아들이 깨어 있었다. 갑자기 “설거지거리 많은데 내가 할까?” 하더니 후다닥 설거지 한 판을 해 버린다. 아르바이트 가서 설거지를 하더니 설거지 요령을 터득했나? 아무튼 뒤처리까지 꽤 잘 했다. 참 별일이었다. 아무튼 엄마의 말 한 마디 없이도 자기 마음이 움직여서 했다는 게 신기했다. 앞으로 다시 그런 모습을 보긴 힘들겠지만. 그리고 한 번은 엄마 아빠 등산을 따라가겠다고 하더니, 친구들과 함께 가도 되는지 묻는다. 친구 부모와 함께 등산을 가겠다고 스스로 말하는 아이들이 신기했다. 아무튼 이 아이들 그날 등산 이후로, 자기들끼리 등산을 몇 차례 더 갔다. 신기한 일이다. 아이들의 뇌는 변하고 있고, 뇌는 경험하는 것에 따라서 급격히 변할 수도 시간이 걸려서 천천히 변할 수도 있지만, 아무튼 변할 수 있다. 그리고 아이들이 마음이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행동할 때, 우리는 지속적으로 밝고 기분 좋은 방향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마음으로 말로 행동으로 도와야 한다. 수명이 늘어날수록 철드는 나이도 비례해서 늦어진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 조부모님 세대에는 수명이 50~60세. 우리 세대는 기대수명이 100세. 조부모님 세대에 서른이면 철들었다고 가정하면, 우리 세대는 50세가 되어야 철이 든다? 좀 끔찍한가? 철이 든다는 개념이 모호하긴 하지만, 내 생각을 말해보자면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자신을 책임질 수 있으면 철이 드는 거라고 생각해 본다. 기나긴 인생 여정에서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자라나고 성장하기 위한 경험도 방황도 수명이 길어진 만큼 오래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스스로 자기의 위치를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본인이 생각하는 만큼 무엇인가가 되어갈 것이다. 아이들은 학자가 될 수도 있고, 미용사가 될 수도 있고, 현대식 생선장수가 될 수도 있고,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한 직업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아이들이 느끼고 스스로 행동함으로써 이루어질 것이다. 절대 우리가 조절해 줄 수 없다. 부모의 역할은 사랑해주고, 믿어주고, 기다려 주기! 그리고 아이들의 행복을 마음으로 간절히 소망하고 믿기! 딱 거기까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