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경계하는 자세들2

기획자는 프로 불편러일 수 밖에 없다.

by 세비지
너무 사랑하는 사람들

또 하나의 경계하는 자세는 본인의 브랜드, 프로덕트, 아이디어를 너-무 사랑하는 자세다.

응? 사랑하면 좋은거지! 그게 무슨말이냐고? 정확히 말하면 객관성을 잃는 것이다.


사랑이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과도한 사랑은 객관성을 잃게 만든다.


관련한 예시 하나를 말하자면,

증권사에 다니는 친구가 "이거 무조건 됩니다."라고 센터장에게 말한적이 있다.

그러자 센터장이 "야, 종목을 너무 사랑하지 마라." 라고 했다고 한다.


왜 내 주식이 내려가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쉽게 손절하지 못하지 않는가

'아냐, 다시 오를거야' 희망 편향적 사고를 하며 물타기를 시전한다.

나도 그랬다.

미장에서 바이오 주식을 21불에 샀었다. 당시 28불에 거래되던 주식이라 나는 이게 저점, 들어가야할 포인트인줄 알았다. 이게 10불이 될때까지 몇 번의 물타기를 했고 2불이 될때까지 나는 손절을 못했다.

결국 나는 -70%였나 -60%였나 손해를 보고 몇 백을 날렸던 기억이 있다.

지금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손해도 두려웠지만, 내가 틀렸다는걸 인정하지 못했던게 아닌가 싶다.

(이후로 주식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대신 이번년도에 코인을 시작했다. 아직 정신을 못차린건가 싶다)


거쳐간 회사들 중 '망할것이다.'라고 강한 직감을 느끼던 때는

경영자가 망해가고 있는 프로덕트를 보면서도 쉽게 피봇을 결정하지 못할때였다.

이미 투여된 자원이 그들의 입장에선 많기 때문에 희망의 끈을 쉬이 놓지 못한다.

주식할때의 나와 같이, 본인의 결정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다.

오히려 잘돼가는 프로젝트보다는 나락가고있는 프로젝트에 더 많은 리소스를 쓰기로 결정하는 것을 종종 본적이 있다. 하지만 지표로 몇년동안 증명이 되고 있는 상황이라면 이는 '썩은 다리'일 수 있다.


썩은 다리를 도려내야만 건강한 살들만 살아남아 상처를 아물게하고

아문상처에 의족을 대던지 문제를 해결을 할 수 있다.

다음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썩은 다리가 다시 회생될거란 희망으로 결단을 하지 못한다면 이는 결국 몸 전체를 썩게 만든다.


내가 틀렸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나아가기 위한 검증의 절차일 뿐이다.

그냥 내 아이디어가 현재 시장에 적합하지 않았을 뿐이다.

우리에게 중요한건, 그래서 어떻게 액션을 할 것인가, 미래를 어떻게 나아지게 할 수 있는가.

결국 잘 되는게(유저에게 선택받는게) 중요하다.

가설은 틀릴 수 있다. 틀렸다면 다시 맞는 방향으로 빠르게 재정비하고 재검증할 뿐이다.

이를 바로 체크하지 못하면 부채가 쌓여 ‘썩은 다리‘가 된다


산출물은 유저에게 선택받을때 살아있는 것

내 아이디어가 실행된다는 것. 내가 기획한 대로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해주고 개발자가 개발을 해주다니!

짜릿하다고 느낄 수 있다. 마치 기획이 상위개념이고 디자이너와 개발자가 하위개념인듯한 내가 모든걸 결정하고 있다는 느낌! 하지만 이것이야 말로 내가 정말 경계하는 자세이다. 이는 반대도 마찬가지다.

산출물을 기준으로 기획도 한 조각이며, 디자인도 한 조각, 개발도 한 조각일 뿐이다.


우리의 산출물이 유저에게 선택받아질때 모든 노력과 시간이 의미있게, 살아있게 된다.

중요한건 회사내에서 이기는게 아니고 유저의 선택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다.

기획의 시야, 디자이너의 시야, 개발자의 시야, 유저의 선택은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기획은 마지막에 완성된다고 말한다.

(이 말을 이해하는 기획자를 생각보다 많이 본적이 없다. 금요일에 디자이너와의 스몰톡에서도 기획이 상위개념이라고 생각했다는 말을 들었으니, 내 생각이 전통성을 벗어나는 생각인가 싶기도 하다)


언제나 기획에는 책임이 따른다.

유저에게 선택받지 못한 산출물은 쓰레기일 뿐이다.

과한 단어인가 싶기도하지만 누구에게도 선택받지 않는 아이디어라면, 그렇지 않은가?

내가 디자이너의 시간을 낭비하게 했으며,

내가 개발자의 코드를 살아있는 프로덕트가 아닌 코드 덩어리로 전락하게 만들어 버린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시간을 낭비하게 했다는 측면에서 기획자는 스스로 엄격하게 질책되어야 한다.

그 시간에 진짜 문제를 찾고 우리 모두 거기에 몰두했다면, 더 나은 결과를 볼 수 있었을 텐데! 라고 이 낭비되는 시간을 아까워해야된다.


무엇을 위해 우리는 시간을 쓰는가? 유저에게 사랑받기 위해 시간을 쓴다.

ux/ui던 서비스던 브랜드던 유형상품이던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효율성에 환장한다.

리소스의 활용범위를 측정하며 이 시점에서 어느 기간을 목표로 했을때 어느정도의 임팩트를 목표로, 최선의 시나리오들을 짜볼 뿐이며, 디자이너와 개발자와의 미팅을 통해 문제사항과 개선점을 미리 체크하고 해당 방향을 기준으로 최대의 결과가 나올 수 있게끔 노력할 뿐이다.


당신의 생각보다 기획은 꽤 각박한 위치다. 권한보다 책임이 많이 따른다.

스쳐간 기획자를 보면 이 권한을 보고 시작한 사람들이 많고, 또 이 허울뿐인 권한을 휘두르려 한다.

기업문화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런 태도 받아주기 시작하면 진짜 중요한 실무자들 다 나간다.

그렇기에 좋은 기획자는 책임의 무게를 알 뿐이다.


전엔 잘됐는데?

가끔 보는 안타까운 경우는, 내 아이디어로 실현된 산출물이 긍정적인 지표를 가지다가 어느시점에서 부정적으로 변할때 보이는 태도들이다. 또는 너무 사랑할때의 태도들

인정을 못한다. 왜? 전엔 잘됐으니까! 또는 잘될거니까!

사랑과 확신은 스스로의 효능감을 높임으로 나를 일에 몰두하게 하는 강력한 동기부여임은 부정하지 않는다.

내가 바라보는 지표가 긍정을 말해줄 수록 내 아이디어가 너무 소중해진다.

하지만 시장은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또 유저의 마음은 갈대이니라.

너무나 많은 경쟁업체가 있고, 유저들의 선택지와 이탈포인트는 우리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많다.


우리가 무언가를 살때를 생각해보자. 신발로 예를 들어볼까?

실제 매장을 갈 수도 있고(심지어 매장도 여러개다. 직영점도 지역마다 있고 편집샵도 있고 abc마트같은 멀티샵도 있다) 쿠팡, 크림, 해외 배송 등 너무나 여러가지다.

심지어 이는 우리가 '신발 사야지'라고 마음을 먹은 경우에 일어나는 경우다.


좀 더 가보자,

나는 나이키 러닝화를 사고 싶다. 나가기 귀찮으니 쿠팡을 일단 켜본다.

나이키 러닝화 여러개를 보던 중 친구에게 카톡이 온다.

카톡으로 들어가 낄낄 웃다보니 시간이 1시간이 지나있다.

조금 피곤해져 이번엔 유튜브를 켜본다. 쇼츠를 보다가 오 괜찮은 신발이 보인다.

네이버에 이 신발을 검색해본다.

최저가가 나오는데 생각보다 좀 비싸다.

집세랑 핸드폰비 등등 생각하며 저울질해보니 아 머리가 아프다 일단 담아두고 천천히 생각해보자.

내일이 되었다.

출근전에 잠깐 누워 인스타를 훑어보니 내가 좋아하는 인플루언서가 신은 부츠가 너무 예뻐보인다.

흠.. 운동화는 여러개 있고, 겨울이니까 부츠나 살까? 하고 마음이 바뀐다.


어떤가, 공감이 가는가? 흥미가 있던 상품도 결제까지 가기가 이렇게 험난하다.

그러면 유저들이 흥미가 없었던 상품이라면?(내면에 흥미가 있으나 유저가 알아채지못한 경우도 포함한다)

흥미를 설득을 해야하는 일이니 이는 더 복잡해진다.


그렇게 우리가 잘 나아가고 있는지 확인하는 지표가 점차 망가지는게 보인다면?

유저들에게 선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

다시 아이디어, 현시장과 전개 흡입력의 괴리를 점검해봐야한다.



기획자는 프로 불편러다

객관성을 가지는 것에 팁이 있다면 희망보다는 좀 더 비판적인 사고가 문제를 볼 수 있게한다.

다른 사람들이 '잘되고 있어요.' 라고 말해도, 지표가 긍정적으로 보여도

기획자는 끊임없이 덩어리를 쪼개며 문제를 찾는다.

문제라니, 단어가 부정적인가? 하지만 문제가 기회다.

그렇기 때문에 기획자는 만족이 없고 불편한게 많을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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