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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가 나보다 나를 더 잘안다?

나를 정의하는 것들: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

by 세비지

우리는 하루에도 수만 번의 선택을 한다.

대부분의 선택은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며 그중 일부만을 의식적으로 인지할 뿐이다.

예컨대, 자판기에서 음료를 고를 때 우리는 '맛있어 보이는' 콜라를 선택하지만, 이는 맛있는 소리, 표정, 청량감이 있는 광고를 통해 '맛있겠다!'라는 생각이 만든 결과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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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무의식적인 선택들은 우리의 일상뿐만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를 정의하는 데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최근 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나에 대한 정의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생각해봤다.




나는 정말 나일까?

우리는 모두 독립적인 개체로서 고유한 존재 가치를 지니고 살아간다. 각자의 삶에는 스스로 만들어낸 수많은 선택과 경험이 녹아들어 있으며, 이는 우리만의 독특한 스토리를 형성한다. 입체적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입체도를 우리는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우리는 다양한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부모, 자식, 연인, 친구 그리고 나 자신과의 관계까지 다양한 형태의 관계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이해한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우리는 종종 서로를 단편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예를들어, 부모는 자식을 보호하고자 하는 마음에 때로는 엄격한 모습을 보일 수 있고, 자식은 부모의 사랑을 받고자 하는 마음에 착한 아이가 되려고 노력할 수 있다. 연인이나 친구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서로를 깊이 사랑하고 이해하려 노력하지만, 때로는 상대방의 일부만을 보고 그들을 판단하기도 한다.

관계 속에서 타인이 바라보는 나의 모습은 단편적일 수 있는 것이다.


나에게로 향하는 시선 또한 마찬가지다. 나는 나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내가 알지 못하는 나의 모습이 존재할 수 있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위의 예시의 콜라와 같이 나는 나의 의지로 선택했다고 생각하지만 무의식이 반영된 선택일 수 있다.


무의식적 선택

실험에 의하면 인간은 하루에 평균적으로 3만5천번의 선택을 한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내가 오늘 하루에 어떤 선택을 했는가에 대해 되집어보면 아무리 많아도 1천번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하루에만 3만4천번의 '알지못하는' 선택을 했다는 뜻이다.


이처럼 우리의 무의식은 생각보다 거대하게 존재한다. 그리고 그 무의식은 단순히 선택의 영역을 넘어 나라는 사람의 본질적인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재미있는 추론

어쩌면 유튜브가 날 더 잘 알지도?

유튜브가 나의 취향과 관심사를 파악하여 추천 영상을 제공하는 것을 보며,

'어쩌면 유투브가 나보다 나를 더 잘 알수도?' 라는 생각을 할때가 있다.

유튜브는 개인의 공간으로, 누군가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누군가가 내가 본 재생목록을 들추지도 않으며, 그 안에서 관계가 형성되어 페르소나를 가져야할 필요성도 없으니까. 그렇기에 우리는 무의식에 재밌어 보이는 영상을 시청하거나 좋아요를 누르고 또는 댓글을 달기도한다.

그러한 정보들이 쌓여 유튜브는 우리의 관심사를 추론한다.

나도 모르는 선택(행동)을 유튜브는 꿰고있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재밌는 상상이다.

아니 사실 나는 꽤 합리적인 추론이라고 생각한다.



무의식

최근 강원랜드 근처 모텔 사장님의 인터뷰 영상을 본적이 있는데, 그 분이 이렇게 말을 했다.

"내가 누군지 알고 싶으면 나갈 때 그 방의 모습을 보라"

이는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들이 진정한 우리 자신을 반영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렇기에 사람을 판단할 때 그 사람의 정제된 말보다는 무의식적으로 하는 습관이나 단어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편이다. 이는 사람의 내면을 더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전에 잠깐 만나던 친구가 '너 정도 급이면..(더 괜찮은 남자 만날 수 있을텐데..)'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사실 칭찬인 말이다. 안다. 하지만, 이 말은 나에게 그 사람이 사람들을 줄 세우고 평가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또한, 그 사람이 자신에 대해 어느 정도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짐작할 수 있었다.



결국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그 한계 속에서도 서로를 사랑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말고, 상대의 전체적인 모습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이는 나 스스로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끊임없이 자신을 탐구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며, 무의식적으로 쌓아가는 것들을 의식적으로 끌어올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우리는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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