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을 돌아 누워보니 하얀 먼지가 낀 이불이 보인다.
배가 고파 냉장고를 열어보니 막상 먹을만 한 것이 없다.
뒤적거려보니 씹을만한 오징어 다리는 있더라, 일주일전 맥주랑 먹으려고 산 오징어 다리다.
그런데 전자레인지에 돌리려하니 쓸만한 접시가 없다.
“그 많던 접시가 다 어디갔지?” 옆을보니
모든 접시는 설거지가 되지 않은채 싱크대에 마구잡이로 놓여있다.
시켜먹을까하고 배달 어플을 뒤지니 막상 시켜먹기엔 최소금액이 차지 않는다.
“모르겠다 두 개 시키고 남은건 내일 먹지 뭐”
배달을 시키고 남는 시간에 샤워를 하고나오니 닦을 수건과 갈아입을 속옷이 없다.
모두 빨래통에 있었다.
“씨발” 욕을 읊조리며 전에 닦았던 수건으로 대충 물기를 닦고 바로 빨래를 돌린다.
그렇게 월말엔 냉장고엔 곰팡이가 핀 남은 배달음식과 마이너스가된 통장 잔고 뿐이다.
삶의 균형이 무너진다.
쓰나미처럼 갑작스럽게 모든걸 붕괴시키진 않는다.
작은것 하나둘씩 소홀히하다보니 어느순간 무너져있더라.
부모님과 함께 살던 때를 생각해보면, 내 방은 항상 깨끗했다.
이불엔 먼지하나 없었다.
샤워를 하고나와 섬유유연제 냄새가 나는 수건으로 물기를 닦았고
깨끗한 속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따뜻한 밥을 먹었다.
특별한 날엔 갈비찜이나 동태탕같은 음식 냄새가 집안에 가득했다
그땐 옷에 음식냄새 벤다고 방문 닫고 음식하는건 어떠냐며 엄마한테 핀잔을 놓았더랬다.
배가 불렀던 거지
혼자살아보니 사는게 쉽지 않더라
아니 생활하는게 쉽지 않더라
뭐가 이렇게 손이 가는게 많은지
밥을 먹으려면 쌀을 씻고 얹히고 약 20분간 기다려야 되고
그 사이에 간단한 국같은걸 준비하고
그러려면 재료 손질을 해야하고
그렇게 어영부영 먹으면 설거지가 한더미다
귀찮다고 배달을 시키거나 식사를 거르는 일이 많아졌다.
빨래도 그렇다
속옷 한두개, 양말 한두개.
‘좀 더 쌓이면 하지’ 하고 애써 미루다보면
어느순간 입을 속옷조차 없다
정말 웃긴건 밥할 시간, 빨래할 시간, 집 청소할 시간은 없는데
술먹을 시간은 많다는 거다
주말에 해야지 미뤄놓은게
토요일 오전엔 좀 쉬다가 밤에 술 먹으러나가고
일요일엔 숙취로 괴로워하며 해야할 일을 건너뛰는 주가 많아진다
미뤄진 모든 일들이 엉망이 되어 돌아올땐
스스로 화가나 견딜 수가 없었다.
‘이따위것도 못하는데 너가 뭘할 수 있어?’
스스로를 혐오하는 시간도 많아졌다
스스로 책임지는 삶은 자유롭다. 엄마의 잔소리가 없고 내가 무얼하든 누구도 신경쓰지도 않기때문이다.
그만큼 독립적인 삶을 즐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지만, 가끔은 자유가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다.
나이가 들어보니 잔소리만큼 절절하고 직설적인 사랑의 표현이 어디있나 하고 생각해본다
자유로운 삶 속에서 진정한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책임지고,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고 있다.
이전에야 부모님이 나 대신 그 책임을 지며 나의 삶을 소중히 여겨줬지만,
혼자나오니 나 밖에 소중히 여겨줄 사람이 없더라.
그 시작은 바쁘다며 무시한 아주 작은 곳에서 부터 시작된다.
아침에 일어나 이부자리를 정리해보기도 하고,
먹은 음식은 바로 치우고 설거지를 하며
바로바로 청소와 빨래를 하거나,
바닥에 벗어놓은 옷가지를 정리정돈을 하는 것 부터 말이다.
이게 참 웃긴게
무너진건 티가나는데 정돈된건 당연한것 같아 하나 둘씩 건너뛰니 무너지기 쉽더라.
붕괴된 삶을 깨닫고 이제는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이제는 나를 탓하지 않는다.
작은 것부터 하나씩 실천하며 내 삶을, 내 의식을 조금씩 변화시키는게 중요하다.
그 작은 과정에서조차 성장과 배움, 자신에 대한 믿음거리는 항상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