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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리 Jun 27. 2021

누군가의 도재학에게 / 우드수탁

인생의 신스틸러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첫 방송이 어느새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시즌 1 마지막 화를 볼 때만 해도 어떻게 기다리냐며 투덜거렸는데 벌써 시즌 2를 시작한다고 하니 왠지 조급해졌다. 시즌 1이 어떻게 끝났는지 가물가물하고 관계선도 얇아진 느낌이었다. 그렇게 감정선을 이어나가겠다는 의지로 시즌 1 정주행을 시작했는데 의외로 스토리보다 캐릭터가 눈에 밟혔다. 그 중 가장 눈에 밟힌 캐릭터는 정문성 배우님이 연기하는 ‘도재학’이다. 


  ‘도재학’은 대학 4수, 사시 6년을 거쳐 현재 흉부외과 레지던트로 아내와 알뜰살뜰 돈을 모으느라 월 10만원으로 생활하는 파이팅 넘치는 짠돌이다. 처음 시즌 1을 볼 때는 아재개그 치는 나이 많은 레지던트로만 보였는데 이번엔 왠일인지 꽤 대단한 사람으로 비쳤다. 쌀쌀맞아 보이는 ‘김준완’에게 기죽지 않고, 대학 4수, 사시 6년도 실패보다 그저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해 부끄러워하지 않는 그릇이 큰 사람. 그렇게 성장하고 또 교수 ‘김준완’도 인간적으로 함께 성장시키는 모습에 오히려 현실적이라 와 닿고 마음이 가 닮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생각해보면 나에게도 꽤 많은 ‘도재학’이 있었다. 대단한 위인은 아닐지라도 작게는 행동 크게는 가치관에 영향을 주고 있는 사람들 말이다. 일주일 전에는 분리수거 마스터 친구가 ‘도재학’이었다. 그녀는 외출 중에 생긴 비닐을 유심히 보더니 가방에 주섬주섬 챙겨 넣었다. 뭐 담을 것이 있나 물었더니 그 비닐은 일반 쓰레기에 버리면 안되고 분리수거를 해야 한다며 집에 가져갈 거라고 답하는데 꽤나 놀랐다. 자주 만나지 않아 몰랐지만 그녀는 텀블러는 기본이요, 재활용 빨대를 소지하고 다녔다. 


  분리수거라는 게 멀리 보면 심플해 보이지만 가까이 보면 화학수업이 따로 없다. 종이로 알고 있던 것이 종이가 아니고, 비닐도 다 같은 비닐이 아니다. 사실 요즘 환경이 꽤 이슈인 만큼 중요한 생활 양식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철저히 지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친구는 귀찮음을 무릅쓰고 순수하게 환경에 도움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그 생활을 지켜나가고 있었다. 그 마음에 감명받아 이후로 완벽하지는 않지만 텀블러와 재활용 빨대를 들고 다니고, 일회용을 쓰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물론 여전히 일회용품을 쓰고 분리수거도 완벽하지는 못하다..) 


  어릴 적엔 ‘처칠’의 수려한 말빨을 배우고 싶었고, ‘신사임당’의 그 우아함을 본받고 싶었다. 하지만 어느새 대단한 업적을 가진 위인들보단 일상에서 작게라도 배울 점이 있는 사람이 대단해 보인다. 눈에 띄지 않고 아무도 알아 주지 않는 소소한 행동에 성의를 기울이는 마음, 어떤 위치에 있건 변함없는 태도나 자세가 나에게 울리는 진동이 꽤 거세졌다고나 할까. 살다 보니 그게 얼마나 어려운 지 몸소 느꼈기에 그럴 것이다. 내 인생에 꽤 가까운 주연이 아닌 퇴근길에 마주하는 더운 날에도 나와 야채를 파는 아주머니, 친절한 버스 기사님에게도 마음이 쓰여 감동 받게 된다. 


 누구에게나 ‘도재학’은 있다. 가끔은 스쳐가 알아차리지 못하더라도 마치 버스타기 직전 알아챈 놓고 온 지갑처럼 문득 뒤통수를 치며 마음 한 구석을 울리는 것이다. 멀리 보면 평범하고 가끔은 찌질해 보여도 그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가는 사람. 돌이켜보면 분명 작고 크게 영향을 미친 ‘도재학’들이 있을 것이다. 요즘 뉴스에 나오는 가당치도 않은 사건들에 머리가 띵하고 울화가 치밀어 오르다가도 어느새 ‘도재학’들을 떠올리며 한숨 돌린다.“그래, 아직 세상은 살만하구나, ‘도재학’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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