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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리 Jul 17. 2021

'무지' 무서워 / 우드수탁

무서운 사람

  요즘 몇 가지 질문으로 성향을 파악해주는 심리테스트가 기승이다. 대부분 MBTI를 기반으로 한 결과물인 듯 멘트가 거의 비슷비슷하다. 사람이 어떻게 겨우 손가락으로 접을 수 있게 구분되냐 하면서도, 친구들이 공유해주는 테스트에 열심히 참여하고 결과를 공유했다. 나는 사탕으로 치면 ‘포도사탕’, 퍼스널 컬러는 ‘오션딥스’, 어울리는(?) 핫플레이스는 ‘한남동’이라고 한다. 이게 또 마냥 외면하기 어려운 것이 은근 실제로 좋아하는 것들이라 불신의 싹을 움켜쥐면서도 또 고개를 끄덕인다. 


  그 중 애착 성향을 세 가지로 나눠주는 테스트가 있었다. ‘불안형’, ‘안정형’, ‘회피형’이 그것인데,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어떤 느낌인지 바로 와 닿는다. 물론 연애라는 건 상대나 상황에 따른 상호작용의 결과물이므로 단 한 개의 모습으로 일반화한다는 것은 억지에 가깝지만, 나는 문제가 일어났을 때 대처하는 모습으로 이입했다. 


  나의 애착 성향은 ‘불안형’인데 단어만으로도 유추할 수 있듯이, 쉬이 믿지 못하는 스타일이다. 좋게 포장하면 문제가 있을 때 바로, 그러니까 ‘그 자리에서 바로, 정말 바로’ 해결하고 싶어 하고, 가끔은 감정적으로 표현해버린다. 상대에게는 가끔 피곤한 집착이나 애정을 향한 지나친 어리광에 가까울 수 있다. ‘불안형’ 애착 성향을 가져서인지 반대 성향인 ‘회피형’은 이해의 범위를 넘어서 두려움의 존재다. 일명 ‘회피형’이라고 하는 친구들에게 들어본 바로는 문제를 수면에 드러내 불편한 상황을 만드는 것을 매우 꺼린다고 한다. 하긴 누구나 가라앉은 분위기나 싫은 소리를 하거나 혹은 심지어 들어야 하는 상황은 싫기 마련이다. 


  사고의 흐름을 이해하면서도 끝내 두려운 이유는 ‘무지’에서 온다. ‘불안형’은 싫든 좋든 일단 표현 하고 지금 문제가 되는 감정이나 상황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한다. 반대로 ‘회피형’은 표현하기보다는 참고 가라앉히는 경우가 많은 듯 하다. 사실 상대가 잘못했을 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반대로 내가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거나 잘못했을 때, 하지만 정작 나는 모르고 있을 때 ‘무지’의 두려움이 나타난다. ‘회피형’은 상처를 받았을 수도 혹은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 기분이 나빴을 수도 있지만 우선 표현하지 않고 참고 넘어가려 노력한다. 


  하지만 본디 사람이란 결국 끝까지 참을 수 만은 없는 존재라, 결국 한계가 오고 인지하지 못한 채 상처를 주고 있던 본인은 어느 순간 죄인이 되어 있다. 이후에 대화나 사과로 관계가 회복될 수 있지만 본의 아니게 지속적으로 상처를 주고 있던 상황은 나에게 다시 화살로 돌아와 자책감에 사로잡혔다. ‘몰랐다’는 이유가 되지 않고, 상처를 받은 그 감정이 중요해 사려 깊지 못했던 마음을 원망하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만약 상대가 사과를 받아주지 않고 단절되는 상황은 생각만해도 속상하다.


  결국 감정이 흘러가고 있지만, 그 흐름을 캐치하지 못하고 혼자 고여 누군가에게 지속적으로 상처를 주고 있던 본인. 결국 해결되지 못한 채 단절되고 마는 관계는 큰 상처로 다가오기에 손 쓸 수 없어지는 그 ‘무지’의 과정이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이전에는 진심이 있다면 끝내 놓치지 않았을 거라 여겼지만 이제 다름을 알기에 진심과는 별개가 아닐까 싶다. 누군가는 ‘반대에게 끌린다’고들 한다. 실제로 그 ‘무지’를 캐고 싶은 관심이 ‘끌림’과 헷갈린 적도 있지만 이윽고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무지’의 공포에 사로잡힌 밤을 보내게 됐었다. 


  누군가를 상처 주고 있음에도 알지 못하는 ‘무지’, 끝내 놓쳐질 손을 붙들게 되는 ‘무지’는 한 여름 극장가보다 더 서늘한 상처로 다가온다. 나이가 먹어가면서 괜시리 ‘인연’이란 단어를 들먹이며 결국은 그리 됐을 일이라고 자위하곤 하지만 아직도 ‘무지’하고 또 ‘무력’하게 서있는 어느 날의 내 모습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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