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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리 Nov 03. 2020

나의 일년은 언제나 가을 겨울 봄 여름 / 이루시엔

가을, 타시나요?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9월 가을 공기를 들이켜서인지 가을은 내게 편안한 계절이다. 유달리 덥지도 춥지도 않고, 봄이나 여름처럼 들뜨지도 겨울 한파처럼 냉소적이지도 않다. 덤으로 추석 연휴까지 껴있는 계절이니 이 얼마나 관대한가. 8월 끝자락에서 갑자기 비가 내리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면 가을을 맞을 생각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가을을 탄다며 트렌치코트를 입고 단풍이 떨어지고 있는 나무에 기대고 있는, 그런 울적하고 스산한 이미지는 적어도 내겐 없다.


  의미는 부여하기 나름이라고 하지만, 여름과 겨울 사이에 끼어있다는 공통점이 있는 봄이 내게 징크스 같은 계절이라면 가을은 내게 안식처 같은 계절이다. 나를 포함해 유달리 가을 생일이 많은 친구 덕에 가을은 바쁜 와중에도 주변인을 살뜰히 챙길 수 있는 시간이며 다치고 힘들었던 마음을 차분하게 돌이켜볼 수 있는 기간이다. 올해는 무언가를 거창히 해내리라고 다짐했던 봄, 계획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던 여름을 지나 가을 쯤되면 포기할 건 포기하게 되는 덕이려나 싶다.


  이렇게 별 이유를 붙여서라도 가을에 애정이 많은 편이다. 그런데 가을을 전면에 내세운 인디 가수가 등장했으니 이건 무조건적인 팬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쯤이면 누구나 다 아는 ‘가을방학’이다. 계피의 청아한 목소리와 정바비의 그림 그려지듯 하는 서정적인 가사 조합은 바로 가을에 홀려 들어가게 만든다.


  가을방학을 이름으로 내건 만큼 가을에 관한 상념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노랫말이 많은데 그중 하나가 ‘가을방학’을 제목으로도 하는 노래다. ‘넌 어렸을 때부터 가을이 좋았었다고 말했지/여름도 겨울도 넌 싫었고/봄날이란 녀석도 도무지 네 맘 같진 않았었다며/하지만 가을만 방학이 없어/그게 너무 이상했었다며/어린 맘에 분했었다며 웃었지’ 매우 공감하는 부분이라 친한 사람들 누구라도 붙잡고 꼭 들어보라고 강권 아닌 강권을 했더랬다. 가장 좋아하는 계절인 가을에 방학이 없어서 분노한 정바비도 9월 가을생이라는 걸 알고 ‘가을 사람끼리는 뭔가 통하는 게 있나’ 하며 또 의미 한 조각을 붙이곤 했다.


  무엇보다 가을이 내게 안식처라는 걸 일깨워준 가을방학의 노래가 있다. 가을방학의 ‘가을겨울봄여름’이다. ‘그리고 난 9월에 태어났다고 해요/그러니 나의 일 년은 언제나 가을 겨울 봄 여름/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함께 하여도/우린 모두 조금씩 다른 주기를 돌잖아요/문득 둘러보면 꽃들도 새들도/다들 자기만의 일 년을 사는 것/반바지를 입은 호주의 산타클로스처럼’


  여러 필기, 면접에서 우수수 떨어졌을 때 문득 조바심이 났다. 일찍 취업 준비를 시작한 만큼 일찍 취업에 보란 듯이 성공하고 싶었다. 실제로 그런 친구들도 여럿 있었다. 그런데 현실은 마음 같지 않았다. 연이은 낙방에 예민해지고 성급해질 무렵 플레이리스트 저 밑에서 잠자고 있던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별생각 없이 듣고 있는데 ‘그러니 나의 일 년은 언제나 가을 겨울 봄 여름. 우린 모두 조금씩 다른 주기를 돌잖아요’라는 노랫말이 흘러나왔고 그 순간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괜찮다 다 괜찮다, 괜찮을 거다’하며 심호흡을 절로 했다. ‘나는 내 공전주기로 돌아간다, 조바짐 내지 말자’ 싶었다.


  다시 가을이 돌아왔다. 예고도 없이 매서운 바람이 가을을 짧은 시일 안에 앗아가겠지만, 가을이라는 한 마디로 묘하게 평온함이 느껴져서 좋다. 태어난 날짜에 따라 누구든 한 계절에 속하게 되는데, 내가 속한 계절이 가을이라 무척 마음에 든다. 이 짧은 가을을 붙잡기 위해, 가을로 범벅돼있는 노래를 찾아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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