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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리 Jan 11. 2021

어느 끄트머리에서 / 박브이

2020을 보내며

 작년 이맘때 즈음만 해도 계획이 다 있었다. 해보고 싶었던 공부를 하는 낮과 몸 담고 싶었던 현장에서 일을 하는 밤이 있는 일상. 어느 주말에는 음악으로 가득 찬 잔디밭에서 맥주를 들이키고, 또 다른 어느 날에는 큰 화면이 있는 술집에 모여 누군가의 금메달을 응원 했겠지. 오랜만에 찾은 도쿄에서 회포를 풀며 그 이야기를 하게 될 지도 몰랐다. 몇 번인가는 누군가의 결혼을 축하하고 집들이 선물을 고민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게 쌓은 하루 하루 끝에 다시 찾아 온 연말을 기념하며 다음 해를 계획하고 있을 예정이었다.


  아쉽게도 너무나 많은 것을 미룰 수 밖에 없는 해였다. 개인의 계획과 일정이 아닌, 세상 그 자체가 미뤄지는 느낌. 내 시간은 이전과 같은 속도로, 또는 더 빠르게 흘러가고 있는데, 진작에 왔어야 할 2020년이 오지 않은 위화감. 그렇게 나와 세계 사이에는 1년 이상의 시차가 생겨버렸고, 다 해두었던 계획은 어느 평행 세계에서의 일이 되고 말았다.  개개인의 사정이 아닌 세상의 사정 때문에 어딘가에 갈 수 없고, 누군가와 만날 수 없고, 어떤 것을 할 수 없다는 현실은 여전히 낯설다.


  기약없는 기다림이란 언제인지 모를 그 때에 닿을 때까지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피로를 동반하는 법이다. 무언가를 탓해야 하는 일상은 생각보다 너무 오래 갔고, 채우고 싶지 않은 것으로 채워진 시간이 각자의 일상에 고여 버렸다. 1년이 넘는 긴 시간을 고작 한 단어로 요약해버릴 수 있다는 것은 무섭다. 그것에 얽매여 그 외의 다른 부분을 바라 볼 여유를 자주 잃어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연말은 왔다. 추억과 반성과 기대를 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이 시기가 가진 특유의 힘이다. 끄트머리에 와서야 한가운데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이는 탓일테다. 계획과는 조금 달라졌지만 비슷한 낮과 밤을 손에 넣었다. 틈틈이 사람들을 만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적당히 가까워지고 적절하게 멀어졌다. 새로 산 자전거를 타고 이곳 저곳을 누비며 일상을 여행했다. 안 해 본 것들을 해 보자는 다짐을 완벽히는 아니지만 더 해봐도 괜찮겠다 싶을 정도로는 지켰다. 마스크에 가려져 있었지만, 여느 해처럼 다양한 표정으로 채워진 1년이었다.


  앞으로도 한동안은 하고 싶고, 만나고 싶고, 나누고 싶은 것을 언젠가로 미뤄야 하는 비일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일상을 이어나가게 하는 것은 무언가를 했다, 누군가와 만났다, 어떤 것을 나누었다는 결과가 아니라, 그러고 싶다는 바람이 깃든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다. 무언가를 하지 못했고, 누군가와 만나지 못했고, 어떤 것을 나누지 못했다는 것에마저도 그 바람은 담겨있기 마련이다. 어떤 모습으로든 내년에도 연말은 제때에 올 것이다. 분명 지금 그리고 있는 한 해와는 다른 한 해를 보냈을 것이다. 그럼에도 다시 못 한 것을 하고 싶어 할 것이고, 만나지 못한 누군가들을 그리워 하면서, 나누지 못한 이야기들을 궁금해 할 것이다. 늘 그래왔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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