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있는 확신
어느 조직에 가도 ‘빌런’은 있다.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고, 부정적이며, 독단적이고 이기적이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런 사람이라는 걸 모른다. 그런 사람을 마주해도,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무던하게 상황을 풀어간다. 충분히 화가 날 만한 상황임에도 말 몇 마디로 유쾌한 분위기로 전환시키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곧 스스로에게 핑계를 댔다. ‘성격이 타고났으니까 저런 거지.’ ‘가정환경이 좋았으니까 가능한 거야.’
그리고 결론지었다. ‘나는 그렇게 될 수 없어.’
그럼에도 나를 바꿀 수 있는 확신
책들을 읽으며 깨달은 한 가지가 있다. 나는 유전적으로 긍정적인 성격을 타고나지도 않았고, 환경적으로 따뜻한 가정에서 자라지도 않았지만, 나 스스로에게 그런 환경을 후천적으로 만들어줄 수 있다는 것.
뇌과학 책들에서는 말한다. 우리의 뇌는 90세까지도 회로를 다시 만들 수 있고, 신경은 끊임없이 성장할 수 있다고.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이라는 단어가 그 사실을 증명해 준다. 우리 뇌가 90세까지도 새로운 회로를 만들고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놀라고 흥분되었다. 그러니 나이가 많으니 늦었다고 포기할 필요는 없다.
어머니는 한때 『더 시크릿』이라는 책에 감명받아 내 방 벽에 ‘너는 할 수 있다’는 문장을 붙여주셨다.
그리고 매일 아침, 그 말을 주문처럼 외우라고 하셨다. 나는 말 잘 듣는 아이였고, 그 말을 매일 되뇌며 하루를 시작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늘 의심하고 있었다. ‘내가 잘할 수 있다는 믿음도 없는데, 이런 말을 외운다고 정말 잘할 수 있을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나는 ‘왜 나는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근거가 먼저 필요했던 것이다.
자존감도 마찬가지다. “나는 자존감이 높아질 수 있다.”이 믿음 뒤에는 근거가 필요하다. 자존감이 낮을 때 거울을 보며 “너는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연습을 하면 된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하지만 매일 거울을 보며 그 말을 할 때마다 속으로는 묻고 있다. ‘정말 그런가? 난 괜찮은 사람이 아닌 거 같은데…’ 그 의심이 솟아오르는 순간, 그 어떤 사실도 내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더라도 그 사실은 거짓이 되어버린다.
자존감의 핵심은 멀리 있지 않다.
자존감의 핵심은,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미 아는 사실일 수 있지만 나에게 이 말을 실천하는 사람은 드물다. (이를 실천하고 있다면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우리가 떠올리는 자존감 높은 사람은 말에 쉽게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신념에 어긋난 상황에서도 단단하게 말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들이 특별해서가 아니다. 자신을 잘 알고, 감정을 섬세하게 인식하고,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단단함’을 가진다. 자존감 높은 삶은 곧, 행복한 삶과 맞닿아 있다.
그럼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자연스럽게 '무엇을 해야 하지?' ‘어떻게 하지?' '누가 해야 하지?' 이런 질문들로 이어졌고,
나는 매일 그 답을 찾아가고 있다. 그리고 자존감이 낮았던 나는 단단함을 채워가고 있다
공자의 말 중 ‘이립(而立)’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립은 서른 살은 자신의 가치관이나 인생관이 확고히 서서, 사회적으로도 한 사람으로서 제대로 서야 한다고 얘기한 것이다. 즉 정신적, 인격적으로 자기중심을 갖고 자립한 상태를 의미한다. 하지만 나이에 상관없이 요즘은 이립한 사람들이 드물게 느껴진다.
지금의 우리는 청소년기에는 시험과 입시준비, 대학 때는 학점과 스펙 취업 준비에, 직장에선 야근과 성과를 위해 늘 여유 없이 살아간다. 그러다보니 나의 가치관이나 인생관을 세울 시간이 부족하다.
외국인들이 한국을 방문하면 빠른 기술 발전과 문화에 감탄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너무 바빠 보이고 여유가 없어 보여요.”라는 말도 함께 따라온다. 맞다. 사실 우리는 나 자신을 들여다볼 여유조차 없이 살아가고 있다.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온전한 이립을 해나가는 방향이라면 여유도 행복도 따라올 것이다.
나를 위한 투자의 본질
그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이 굴레를 어떻게 끊어야 할까? 모든 것에는 투자가 필요하다. 돈이 목적이 되는 주식, 코인, 부동산의 투자는 아니다.
우리는 나의 자존감을 얻기 위한 투자가 필요하다.
투자의 핵심은 ‘작은 것부터 나를 이해해 보는 것'생각하는 것이다. 자존감은 타고나는 게 아니다. 부모가 영어를 못한다고, 자식이 영어를 못할 이유는 없다. 배우면 되는 것이다.
자존감도 그렇다. 내가 긍정적인 성격이 아니었더라도, 환경적으로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을 배워본 적 없더라도, 내가 배우면 얻게 되는 것이다. 이제는 근거를 갖고 시작한다면 당신은 정말로 '할 수 있다'
*정말 나를 위한 투자를 하고 싶다면 아래 미션을 실천해 보자.
(예시)
Q1. 왜 깨끗한 집이 좋아?
→ 정리된 공간이 마음을 차분하게 해 줘.
Q2. 왜 차분한 상태가 좋을까?
→ 혼란스럽고 짜증 나는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아.
Q3. 왜 혼란스러운 게 싫은 걸까?
→ 질서 있게 정리되어 있으면 안정감을 느끼면서 내가 이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져.
Q4. 왜 나는 그런 감정이 필요할까?
→ 어릴 적 가정환경이 예측하기 힘들고 불안정했기 때문일지도 몰라.
*정리) ‘깨끗한 공간 → 정돈된 마음 → 안심’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스스로를 보호하고 안정되게 만들고 싶어 했네?
Q1. 왜 무례한 사람이 싫지?
→ 불쾌하고 내 감정이 부정적으로 변하게 만들어.
Q2. 내가 느끼는 무례함은 뭐야?
→ 거칠고 예의 없으며,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태도.
Q3. 왜 불쾌하다고 느끼는 걸까?
→ 나를 존중하지 않고 무시받는 느낌이 들어서.
*정리) 무례한 사람은 내 감정을 직접적으로 상하게 하고, 내 존재 자체가 인정받지 못한다는 불안을 자극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존중과 이해가 있는 관계”를 원하고, 타인에게도 그렇게 대하려는 마음이 있었네?
※ Tip!
‘왜?’라는 답이 막힐 땐, 챗지피티에게 질문해 보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혼자 고민해 보면 더 좋지만 어렵다면 물어보는 것도 괜찮다.
챗지피티에 어떻게 질문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아래 양식을 토대로 질문해 보면 좋다.
[챗지피티 질문양식]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에 대해서 고민해 보고 이유를 알고 싶어.
나는 000을 좋아하고 그 이유는 000이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어떤 무의식에서 이것을 좋아하게 된 건지 알려줘.
처음에는 어렵고 힘들 수 있다.
'일주일 동안 고민해 봐도 내가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조급해하지 않고, 내가 나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후에는 점차 '내가 어떤 이유로 이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구나, 정말 그렇구나'하며 인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는 사람이 바뀔 수 없다 믿었던 사람이다. 그래서 부모탓 유전 탓 환경 탓을 해오며 내 삶을 괴롭게 만들었다. 당신은 행복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건강한 자존감이 후천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확실한 근거가 있기에 나 자신을 믿어주고 연습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