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뻔한 박제라도 안 하면... 우리는 또 얼마나 쉽게, 빨리 잊게 될까
대전동물원의 퓨마 '뽀롱이'가 떠났다. 녀석이 우리에게 남기고 간 것은 무엇일까?
지난 18일, 대전동물원에서 퓨마 한 개체가 탈출해 4시간 30분 만에 사살되는 일이 있었다. 이에 현재까지도 해당 개체(이라 '뽀롱이')에 대한 안타까움과 추모, 분노에 대한 공감대가 널리 퍼져있다. 녀석의 이름은 '뽀롱이' 2010년에 태어나 약 9년간 좁은 동물원의 계류공간에서 살아가다 끝내 총을 맞아 숨을 거두었다. 이 사고가 특정 개인이 범한 실수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사실상 이건 열악한 구조상의 문제, 시스템과 매뉴얼의 부재에서 기인했을 가능성이 높다.
동물을 인위적인 공간에 계류시킨 다는 것은 항상 윤리적인 충돌을 마주하기 마련이다. 인위적인 공간에 머물면서 야생동물이 자유와 권리를 박탈당하고, 필연적으로 복지가 저하될 수밖에 없으니 동물원의 존재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물원과 같은 공간에서 기대할 수 있는 긍정적 역할이 있기에 필요하다는 주장이 어지럽게 엉켜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동물원은 여러 기능을 한다.
첫 번째, 대중에게 동물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즐거움을 제공하는 '위락'의 기능.
두 번째, 멸종위기 동물의 유전자원을 확보하고, 다양한 연구를 통해 효과적인 생태계 보전에 이바지하는 '보전'과 '연구'의 기능.
세 번째, 대중에게 쉽게 만날 수 없는 야생동물을 소개해 관심을 환기하고, 보호와 생태계 보전의 중요성을 알리는 '교육'의 기능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국내 대부분의 동물원의 기능은 철저하게 유희와 즐거움을 제공하는 '위락'의 기능 외에는 사실상 다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종 보전의 노력이나 동물원에서만 할 수 있는 다각도의 연구를 수행하는 동물원은 정말이지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쯤 되면 동물원이 비판받는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윤리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는, 소위 동물을 가둬 이용하는 것에 준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물원이 스스로 기능에 충실할 수 없다면, 그럴 수 있도록 법과 제도적 장치로 다스려야 한다. 하지만 국내 동물원은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아무나, 아무렇게나 동물원을 만들어 운영해도 법의 제재를 받지 않는다. 그 덕분에 동물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학대 시설이 체험형 동물원이란 이름으로 난립하고 규제 없이 운영되다 문을 닫는다. 그렇게 폐쇄된 동물원 한 구석에는 폐사한 동물이 한가득 쌓여있는 상태로 발견되기도 한다.
지난 2013년 19대 국회에서의 장하나 의원이 21명의 국회의원과 함께 ‘동물원법’을 발의했다. 동물원의 설립과 운영에 관한 기준, 동물의 복지를 고려한 사육환경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이 법은 최소한의 기준도 없이 열악한 환경에서 고통받던 동물원 동물들에게 한 줄기 빛과 같은 것이었다. 이후 약 3년이 흘러 법이 통과되었지만 기나긴 시간이 지나면서 법의 세부조항이 이해관계에 따라 빠지고 조정되어 너덜너덜한 누더기처럼 변해갔다. 오죽하면 '동물복지'가 빠진 동물원법이라는 비아냥까지 받았을까.
여전히 그 한 줄기 빛 마저 동물원의 동물들에게는 온전하게 허락되지 않는다. 지금의 동물원은 여전히 무척이나 춥고 어둡다. 그 한 줄기 빛마저 스며들 틈이 없다는 것이 서글프다. 그들도 따뜻한 빛을 끌어안을, 행복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그 시작일지 모른다.
점차적으로 동물원은 줄어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뚜렷하고 엄격한 기준으로 동물을 계류시킬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해 지금처럼 통제가 불가능하리만큼 저속한 동물원이 생겨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이미 생겨나 있는 동물원 역시 계류시키는 동물 종과 개체수를 줄여나가면서 적은 수의 동물에게 선택과 집중을 쏟아 동물 복지를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동물원 내부에서부터, 그게 어렵다면 외부의 압력을 빌어서라도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라도 변화의 노력을 하지 않는 동물원이라면 최대한 빨리 사라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뽀롱이가 사살된 이틀 후, 언론은 앞 다투어 뽀롱이를 박제할 것이라는 동물원 측의 입장을 보도했다. 인터넷은 또다시 들끓었다. 평생을 감옥과 같은 동물원에서 지낸 녀석이 죽어서야 자유를 되찾았는데, 박제를 통해 또다시 가둬두려는 것이 아니냐는 공분을 산 것이다. 이후 다시 흘러나온 보도에서는 박제 계획이 철회되었거나, 애초에 없었다는 식의 해명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애초에 박제를 검토한 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들끓는 여론을 고려해 박제 계획은 철회된 것으로 보인다. 동물원에서 평생을 살다가 죽음으로 자유를 되찾은 녀석에 대한 연민과 감정이입, 과거 박제를 소유와 과시의 수단 정도로 여기던 시절의 편견이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뽀롱이를 박제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나 정서는 충분히 공감하는 바이다. 하지만 지나친 감정적 판단을 조금 배제해본다면, 박제를 무작정 배척해야 하는가, 박제를 통해 우리 혹은 떠나간 뽀롱이가 살아생전 이루고자 했던 소망에 일말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진 않을까 아쉬움도 남는다.
박제가 그저 구경거리일 뿐일까? 누군가 뽀롱이를 기억할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이 되진 않을까?
뽀롱이의 박제를 통해 누군가는 이 날의 문제를 두고두고 상기시킬 수 있고, 그로 인해 같은 문제가 되풀이되는 것을 줄여나가는 노력의 원동력이 될지 모른다. 또, 동물원을 다녀가는 대중에게 동물원을 다녀감에서 느껴야 할 일말의 죄책감과 책임감을 조금이나마 전달할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그 뻔한 박제라도 안 하면... 우리는 또 얼마나 쉽게, 빨리 녀석을 잊게 될까 하는 노파심이 든다.
물론 그런 역할을 기대하려면 한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박제된 녀석의 옆에 정말 가감 없이 뽀롱이가 겪었던 그날의 비극적인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낱낱이 고해야 한다는 점이다. 어디서 어떻게 태어났고 어떤 관리를 받았으며, 언제 무슨 문제로 인해 탈출해 어떤 과정에서 사살까지 이르렀는지, 그 결과 동물원은 이런 문제가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했는지 혹을 할 것인지를... 녀석의 넋을 위로하는 위문과 함께 말이다. 물론 꼭 박제를 해야 위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추모비나 추모공간 등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어쨌든 박제가 되었건, 추모공간이 되었건 뭐라도 하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닐까. 단 한 사람이라도 녀석을 더 오래 기억할 수 있으려면 그게 어떤 것이 되었건 뭐라도 만드는 게 녀석을 잊지 않기 위한 노력일 테니까.
뽀롱이가 떠난 것은 비통한 일이지만, 그 이후 녀석을 추모하는 분위기는 매우 긍정적이다. 해시태그에 동물원에 가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동물원의 폐쇄를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오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으로 동물원이 사라지고 야생동물이 자유를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동물원이 각성하고 대중의 윤리적 시선과 기대를 고려해 보다 나은 동물원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을 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하지만 왜 이런 관심과 열기를 사고가 발생하기 이전엔 정말이지 찾아보기 어려웠는지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이다. 문제가 터진 후 슬퍼하고 비판하는 것보다, 문제가 터지기 전에 변화를 이끌어나갈 수 있는 그 원동력, 대중의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가 결여된 것 말이다.
어쨌든 지금의 관심 역시 동물원에 남겨진 훨씬 많은 동물들에겐 무척이나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관심이 너무 쉽게 꺼질까 걱정이다. 어떠한 사회적 문제가 뜨겁게 불타 올랐다가 금세 식어버려 그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것을 우리는 수없이 겪어왔다. 잊혀지기 전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회귀해 잘못을 되풀이하기 전에 우리는 끊임없이 이야기해야 한다. 동물복지가 실종된 동물원은 가지 않겠다고, 사라져야 마땅하다고 말이다. 더불어 동물원의 발전을 위해 어떤 사람들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살피고, 법과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피해를 예방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사람들은 그동안 무얼 했는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철저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 무엇보다 앞으로의 시대에서 요구할 변화의 시작은 필자와 여러분을 포함해 우리 모두 공범 혹은 방관자임을 자각하고 반성하는 것에서 비롯할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자.
그런 의미에서 미안함과 죄책감을 담아 감히 떠나간 뽀롱이에게 감정이입을 해보고자 한다.
"부디, 단 한 사람이라도 절 오래 기억해주세요. 그게 저와 같은 처지에 놓인 채 남겨진 수많은 동물원 동물이 보다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첫걸음이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