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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nameisanger Dec 20. 2020

'나만이 없는 거리'로 본 아동학대 -2

어떤 어머니는 영원히 무정함의 대명사다



두 번째는, 카요와 카요의 어머니, 그리고 카요의 할머니가 등장하는 장면이다.

가해자의 사정에 대해서도 잠시 나온다. 카요의 어머니는 가정폭력 및 이혼을 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로 카요를 학대하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는 듯한 말을 하면서 자신의 어머니이자 카요의 할머니에게 매달린다.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카요와 어머니만큼 부서져 있지는 않다는 증거였다. 카요는 이를 보지 못하고 눈을 돌려버린다.


물론, <나만이 없는 거리>는 허구이기 때문에, 카요는 여러 가지 사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행복해진다. 이는 목숨 걸고 그녀를 보호해주려던 단 한 사람, 주인공 사토루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보인다. 몇 연구에 의하면, 아무리 가난하고 폭력적이며 힘든 환경에서 자라더라도 자신을 믿어주는 어른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었던 아이들은 강하고 다정하게 자랐다고 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영화나 드라마, 소설이나 만화의 주인공이 아닌 현실의 아동학대 피해자들에게 있어서 꽤 아픈 사실 중 하나는 그들이 ‘어머니’나 ‘아버지’, 혹은 둘 다를 영원히 잃어버렸다는 사실이다. 극중에서 행복해진 카요도 마찬가지다. 그녀의 세계에 어머니란 존재는 없다. 우리가 따스하고 온화하고 사랑을 주는 존재를 어머니로 지칭한다면, 그녀의 세계에서 어머니란 무관심과 박정함과 서글픔과 고통의 대명사였고, 앞으로도 그러하다.


이를 은유하는 장면이 극중에도 나온다. 한 곳에 모여서 카요와 어머니를 영원히 떼어 놓을 계획을 하는 아이들. 그들은 묻는다. ‘어머니와 헤어지는 것 괜찮겠어? 나라면 정말 서글플 것 같은데.’ 그러나 카요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건 어머니와 돈독한 정을 쌓은 아이들과 카요 간의 인식의 차이를 보여준다. 아이들은 카요를 아끼고, 카요의 표현을 이해하려고 애쓰지만, 결국 침묵하는 것 말고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아예 어머니란 단어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않는 나라에 살고 있다면 모르겠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머니라는 단어를 다양하게 활용한다. 시나 소설, 드라마, 영화를 봐도 거리감을 느껴진다. 방송을 보라, 부모님께 보일러를 놔 드리고 명절 선물로는 이것과 저것을 추천한다고 한다. 사람들과 친해져서 이야기하면 어느 순간부터는 자기 가족들 이야기가 나온다. 소소한 갈등을 풀어놓으면서 네 갈등은 무엇이냐고 한다. 하다못해 미 해군이 모선을 지칭하는 단어는 ‘마더’다. 어머니라는 글자만 봐도 눈물이 나온다는 사람,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유대인 속담,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죽어가던 군인이 부르는 이름, ‘엄마는 항상 자식 걱정 뿐입니다’라는 컨셉의 방송, 힘든 현실에 괴로워하던 주인공이 소주를 한 사발 마시고는 ‘엄마~’하며 우는 드라마 장면,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했다’는 말로 어머니의 사랑을 눈물로 호소하는 유명 그룹의 노래…. 예는 끝이 없다. 그렇다는 것은 우리의 삶이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을 은유하고 시어로 표현하고 광고에 사용하고 드라마에 등장시킬 정도로, 사소한 부분부터 집요할 정도로 깊은 감정의 뿌리 부분은 물론 생활 곳곳에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어머니에게 학대를 당했던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를 부르면서 울어야 한단 말인가?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대체할 것이 생길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비슷한 것을 못 찾았다. 힘들 때 기대거나 생각나는 존재라니, 상상해 보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다. 그런데 힘들 때 어머니를 찾는다는 것은 그 사람들의 어머니는 그들이 어렸을 때 울고 있으면 와서 위로해주고 달래주고 눈물을 닦아주고 ‘괜찮아, 아프지 않아, 별 것 아니야, 나아질 거야’라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줬다는 뜻일까? 경험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상상과 짐작은 얄팍하고, 광고에서 나온 이미지를 합친 조악한 것에 불과하다. 나는 그것이 도대체 어떤 경험인지 알 길이 없다. 


종종 힘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땐 얼굴의 근육을 찌푸러뜨리면서 울기 시작하지만, 그럴 때 어머니를 떠올린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장점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생의 마지막까지 졸업하지 못하는 것을 이미 어렸을 때 졸업해 버렸다는 점이다. 


그것은 서글프기도 하고, 우월한 점도 있으며, 부족한 점도 있고, 아쉬운 점도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라리 낫다 싶은 점도 있다. 가치평가 하기 복잡하다. 하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아쉬운 점은, 그것은 다른 사람과 관계를 쌓는데 벽으로 작용한다. 그것만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그들이 말하는 것에 공감할 수 없으며, 내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를 스스럼없이 드러낼 수 없으니.


그러니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아동학대 피해를 입은 사람이 자신이 피해자라는 것을 말해도 낙인찍히지 않고, 친해지지 않더라도 말할 수 있고, 그렇더라도 사회적 관계에서 손해를 보지 않을만큼 너그러운 사회적 토양이 마련되어야 한다.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숨기고 살아야 하고, 사람 잘못 보고 얘기했다가 '왜 그런 무거운 이야기를 하지?' 라는 반문을 듣고, '그런 배경을 가진 사람은 좀...'이라며 거리감을 느껴서 멀어지고 하는 일이 반복된다. 아동학대 피해에 대해서 얘기하지 말라는 공식적인 강요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입막음 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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