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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지현 Jul 04. 2019

1 - 5 캘리포니아 - 만자나, 앨래배마 힐


Manzanar National Historic Site 


그렇게 남쪽으로 쭉 달리는 도중 찾아가게 된 공원.       

난 처음이름이 만자나(Manzanar)길래 라틴 아메리카 관련 공원이라고 생각했다. 막상 가보니 전에는 생각해 보지 못했던, 생각해 보니 참 당연하고도 아픈, 2차 세계 대전에 관련한 역사적 사건들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후에 New Orleans에 있는 2차 세계 대전 박물관에 갔을 때도 이 곳이 다시 생각났다. 

하나의 캠프, 만 명의 삶. 

하나의 캠프, 만 개의 이야기.

"만자나 국립 역사 보존 지역

1942년 미국 정부는 11만명이 넘는 남자, 여자, 아이들을 외딴 곳에 떨어진 군사 시설에 수용했다. 3분의 2가 넘는 사람들은 미국 출생이었다. 그 사람들이 스파이 행위를 했다고 밝혀진 사례는 없다. 그 중 1만명이 만자나에 수용되었다."

범죄 행위가 없는데 조상이 누구였냐에 따라 수용소에 가둔 셈이다. 독일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도 비슷한 원칙으로 이루어졌다. 


"십대인 나에게는 처음에는 모험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아버지가 가게도 집도 잃게 되는 걸 보게 되었다. 아버지는 또 정말 열심히 일해서 사신 새 차도 잃게 되셨다. 마침내 수용소에 도착했을 때 나는 뭔가 잘 못 됐다는 것 깨달았다" - 마리 스즈키 이치노


정부는 일본인과 일본계 미국인들에게 1주의 기한을 주고 수용소로 데려갔다. 짧은 시간에 집, 가게, 차 등을 정리해야 했던 사람들은 헐값에 팔아 넘겨야 했다. 그리고 일본인이 없어진 일본 동네에는 흑인들이 들어와서 정착하게 된다. 

칸막이가 없는 화장실



복도에 캠프 수용자의 초상화와 한 말이 전시 되어 있다. 

"난 아직도 미국이 세계에서 최고의 나라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최고의 나라로 머물 수 있는 것은 모두에게 달려 있다."


"난 그 일이 잘 못되었다고 생각하지만, 그 광기(히스테리)를 이해한다." 

"난 항상 이 나라의 원칙과 약속을 믿어 왔다."

"난 더 이상 우리의 지도자가 하는 말을 그대로 믿지 않는다." 


"난 그 때 아기였고 4살 때 수용소를 떠났다. 난 좋은 기억밖에 없다."

"인간다움이 시험당하는 것보다 나쁜 일은 없는 것 같다."


당시 사진. 잽스는 일본인을 비하하는 말. 조센징 같은 느낌이랄까. 

"잽스는 떠나라. 여기는 백인 동네다."


"세상에는 항상 잘못됨(악)이 존재하고, 만약 아무도 반대하거나 저항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잘못은 영원히 지속된다."



열악한 수용소 생활에 견디다 못한 사람들은 항의를 하게 되고, 결국 폭동으로 번지게 된다. 


"여러분은 적 뿐만이 아니라 편견하고도 싸웠습니다. 그리고 승리했습니다."

미국 군대에 자원해서 싸운 일본계 미국인 부대. 애국심을 증명하기 위해 용맹하게 싸웠고, 이탈리아 등지에서 많은 전과를 올렸다고 한다. 그 와중에 전사한 사람도 많다.


이 마음씨 푸근해 보이는 옆집 아저씨 같은 사람의 이름은 조셉 쿠리하라.

1차 대전 참전 용사 (War Veteran)로서 2차 대전이 발발하자 군에 지원하지만 일본인이란 이유로 군입대를 거부당하고, 수용소에 결국 끌려가게 된다. 그에 따른 분노로 한 말:  "차라리 난 100프로 일본인이 되어서 이 나라 (미국)를 돕는 일을 다시 하지 않겠다 맹세한다" 

수용소 생활 중에는 미국에 협조하는 사람들을 멸시했고, 전쟁이 끝나자 미국 시민권을 버리고 일본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다시는 미국에 돌아오지 않았다.


이 아저씨의 심정도 이해가 간다. 일본계란 이유로 차별을 받았던 이 상황은 (뉴올린언스 2차 대전 박물관에서 알게된) 2차 대전 태평양 전쟁의 해군 주역 체스터 니미츠 제독, 육군 아이젠하워 장군등의 독일계 미국인들과의 운명이 대비된다. 


수용소에서도 사람들은 결혼하고 얘도 낳았다.


일본 정원. 수용소라는 상황에서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려는 필사적인 노력.



위령탑


만자나 수용소 표시판. 


한국에서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에 기초한 역사 교육을 받은 나는, 많은 한국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일제 강점기 역사를 배우면서 일본에 대한 분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일본은 하나의 개념이라기 보다는 다양한 일본 사람으로 이루어진 국가이다. 

우리 나라도 자유 한국당도 있고, 민주당도 있고, 대통령도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같이 다양하고, 촛불 시위도 있고 어버이 연합도 있다. 재벌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다. 

경계해야 할 건 잘못된 일을 하는 일본 정부가 아닐까. 물론 그런 정부를 가지게 된 일본 사람에게도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을 뽑은 한국 사람들에게도 결과에 따른 일차적인 책임이 있는 것처럼.


떠오른 짧은 생각들

그래도 미국 수용소는 최소한의 인권은 있었다. 노동과 학대, 그리고 죽음이 일상이던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하고는 큰 차이가 있다. 

당시 콜로라도 주지사 Ralph Carr는 일본계 미국인의 차별이 인권에 반하고 미국 자유 정신에 반한다며 반대했다. 결국 다음 주지사 선거에 패배하고, 촉망받던 정치 인생도 막을 내린다. 1994년 일본 천황 아키히토는 콜로라도 방문에 Ralph를 추대(honor)한다. 

미국 정부는 후에 수용소 정책에 대해 공식 사과를 한다. 

아무리 개인의 능력이 출중해도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기는 너무 어렵다. 

미국에서 만난 일본인 직장 동료들은 대부분 예의바르고 착한 사람들이었다.

우리 나라나 일본이 미국하고 전쟁이 일어날 일은 없겠지. 근데 혹시 중국하고 미국하고 전쟁이 일어나면 미국에 있는 많은 중국인들은 어떻게 될까? 그 많은 수를 수용소로 끌고 가려고 하진 않겠지? 과연 미국에 있는 일본인들은 자신이 경험해 봤으니 그 일이 잘 못된 일이라고 앞장 서서 변호할까? 아니면 자기 일이 아니니 슬쩍 물러날까? 한국 사람들은 어떡할까?



앨래배마 힐 Alabama Hills


남쪽에 있는 앨래배마 힐에서 옮겨가며 며칠 야영을 했다. 영화 장고와 아이언맨 촬영지가 있다.

아이언맨 - 미사일 실험 장소


타란티노 감독의 장고: 언체인드 - 도입부 


오후 늦게 도착했더니 빈 자리 찾기 힘들어서 노부부 옆에서 캠핑하기로 한다. 


아침 6시 반


하이킹 하려고 아침 일찍 오는 사람들


아침에 조용한 곳으로 옮겼다. 

자연이 아름다워서 마냥 걷고 걸었다. 이 산도 올라가보고 저 산도 올라가봤다. 

걷는다. 마냥 걷는다.

차 에서 바라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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