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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이버링 Jun 02. 2023

시간을 낼 마음만 있다면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

부모는 이러한 성장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동안에 도움을 줄 기회는 수없이 많이 생긴다. 자기 행동에 책임을 회피하려고 할 때 이를 지적해 줄 수도 있고,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그것이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거듭 확인시켜 줄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기회들을 놓치지 않으려면 앞에 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아이의 욕구에 민감해야 하며 귀찮더라도 시간을 내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노력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결국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아이의 성장을 격려하기 위해서 부모로서 적절한 책임을 지려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스캇 펙_ 아직도 가야 할 길 중


초등 고학년이 된 아들에게 수학학원을 보냈다. 으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고 보냈지만 지금이 '보내야 할 때'인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아들은 또래의 다른 아이들에 비해 다니는 학원의 개수가 현저히 적지만 수학학원을 다니고부터는 갖은 핑계로 피곤함을 호소했다. 학원 선생님의 능력과 학원의 질에 대한 의문도 품어보았으나 어쩐지 그보다 학원의 '필요'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먼저란 생각에 결국 학원을 멈추기로 결심했다.


학원을 멈추고 결과는 즉시 나타났다. 처음 학원을 다니고 100점 맞았던 정기고사 수학 점수가 80점대로 내려왔다. 처음엔 적잖게 놀랐으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런 마음이 들었다.


'학원을 다니면 100점, 안 다니면 80점이다. 아이의 실력이 학원에 의해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맞을까?'


인생이 모두 그렇게 이분법적이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아직 세상을 나만큼 살지 않은 아들에게 이런 잣대를 들이밀기는 싫었다. 학원이 감당할만한 것이었다면 이런 고민도 안 했겠지. 아이는 확실히 피곤을 호소했다. 아이의 컨디션을 무시하면서까지 학원을 다니라고 종용하고 떠미는 엄마는 되기 싫었다. 영양분이 풍부한 음식을 먹으라고 독촉하는 엄마는 좀 되어도 괜찮지만, 학원 숙제를 하라고 재촉하고 이를 가지고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아들과 다투는 엄마는 되기 싫었다. 왜냐하면 음식은 위에 들어가기만 하면 성공이지만 공부는 떠먹여 줄 수 있는 분야가 아니기 때문이다. 건강한 음식은 '필요'지만 공부는 '선택'이다.


핑계가 길었지만 결론은 수학학원을 그만두게 된 결정적인 한 마디는 학원 선생님과 상담 중 듣게 되었다.


"선생님,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두어 시간씩 머무는데, 학원에서 그렇게 긴 시간을 집중하나요?"

"아.. 어머니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이들이 학원에 있는 시간의 절반도 집중하기 어렵죠, 그나마 두어 시간 앉아 있어야 한 시간은 공부를 하니까 그거라도 하려고 학원에 오는 거예요, 다른 유명한 수학학원에서도 6시간씩 아이들이 수학학원에 있다지만 많이 해 봐야 세 시간 정도 집중해요. 아이들 집중 시간이 그리 길지 못하죠, 특히 남학생들은 더 산만해요."

"아 그럼 저희 아들은 어떤가요?"

"아드님은 사실 두 시간 앉아 있어도 풀다가 먼 산 보다가 화장실 다녀오고 공상에 빠졌다가.. 제대로 집중하는 건 40분 정도 되려나요? 사실 채점하고 점검하는 것 말고 제가 해줄 게 별로 없어요, 숙제도 많이 해 오고 어려운 문제도 풀어야 가르쳐줄 게 있거든요."


솔직한 수학선생님이 날 구했다. 차라리 좀 더 상업적인 수학선생님이었다면 담당 선생님의 수업력과 지도력을 포장하며 아이가 잘하고 있고 앞으로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말했다면 내가 조금 서글펐을지도 모른다. 훌륭한 선생님 밑에서 힘들어하는 아들을 떠올리는 건 엄마로서 괴로운 일이지 않나.


그러나 상담을 통해 현실을 직시하고 아이들의 고충에 공감할 수 있었다. 약간 고민하다가 다시 연락드려 솔직한 심정을 전했다.


"40분 집중하는데 일주일에 세 번 두 시간을 가는 것조차 아이가 힘들어해서 제가 방법을 바꿔볼까 해요, 학원 선생님은 잘 지도해 주려고 고생하시는데, 아이의 공부체력이 받쳐주지 않아 속상하네요, 일단 제가 집에서 습관을 좀 들이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때까지 당분간 학원은 쉴게요."


이후 선생님과 풀던 문제집을 집에서 평일에는 두 장, 주말에는 세 장을 풀게 했다. 독해력에 대한 고민도 생기니 <독해력 비타민>이라는 교재도 사서 하루에 한 지문씩만 풀게 했다. 합치고 보면 많은 양은 아니지만 꾸준히 풀리다 보니 한 달이 지나 어느새 많은 양을 풀었다. 처음에는 잘 되지 않았다. 집은 쉬는 곳이니 공부가 싫었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달리 해보기로 했다.


매일 조금씩 하는 습관을 내가 이제까지 들여줬던가? 나는 이 습관을 들여주기 위해 시간을 들였던가? 사실 나조차도 매일 조금씩 하는 습관이 없는 엄마가 아니었던가?


그렇다. 나도 매일 아이에게 숙제를 지도하고, 잘 풀었는지 점검하는 엄마는 못 되었다. 시간을 들여 노력하는 것을 학원에 미루고 남에게 맡길 궁리만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황금 같은 육아휴직 기간이다. 아이들에게 오롯이 집중해도, 집중해야만 하는 공식적인 시기가 아닌가. 마음의 여유를 갖고 매일 시간을 들여 모든 것을 스톱하고 아이의 교재를 체크한다. '정답보다 오답을 다시 보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은 학창 시절부터 나의 철학이었고 반드시 채점은 내가 하고 오답체크를 하도록 시켰다.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지만 한 달이 지난 지금, 많은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생각이 밀려와 글을 쓰고 있다.


시간을 들인다는 것은 진정성이다. 아이가 잘하길 바라는 것이나 내가 잘하길 바라는 것 모두 시간을 들이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어째서 이 중요한 진리를 이제야 의식하고 깨달은 걸까? 요행을 바라면서 살아온 내 삶 속에서도 진정성은 은근히 숨어있었겠지. 그러나 이제는 안다. 내가 노력을 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보는 눈이 생겼다. 자아성찰을 통해 나를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이 올바르게 성장하기를 바란다면, 부족한 아이들만 탓할 게 아니라 나를 되돌아볼 줄 아는 시간을 갖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그리고 나를 바꾸어 아이들을 성장시킬 수 있는 골든 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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