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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이버링 Oct 19. 2023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는 일

목적은 무엇인가?


나는 지금 아이를 쳐다보고 있다. 물끄러미 응시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1) 언제까지 그렇게 어질기만 할 거니?라고 물어보기 위해

2) 네가 엄마 딸이라는 게 믿기지 않아서

3) 얼굴에 뭐가 묻어서


정답) 2


아이를 관찰한 적이 있는가? 아이가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생길수록 부모는 아이의 얼굴보다는 행동으로 관심을 옮긴다. 요를 깔고 바닥에 누워서 엎치락뒤치락하던 시절만 해도 귀여운 아이의 얼굴을 관찰하는 일은 곧 부모의 행복이었으리라. 아이가 “나 좀 봐주세요. “라고 부모를 부르지 않아도 부모는 아이 얼굴이 보고 싶어 미치고, 만지고 싶다. 태어난 것만으로도 태어나할 효도를 다 했다는 그 시기 너머에, 아이는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생기는 순간 집을 어질고 다치기 시작한다. 이제 부모의 과업은 아이가 다치지 않고 아프지 않게 되는 것으로 옮긴다. 큰 의미에서 볼 때 십 대가 되어도 그 과업은 변함이 없다. 마음이 다치지 않길, 상처받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끝없이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이제 하루종일 아이에게 하는 말을 녹음해서 들어보자. 80% 이상 아이에게 하는 말은 ‘지시’와 ‘교정’ 일 것이다.


부모가 이렇게 변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변화이겠으나 아이가 받아들이는 것은 다르다. 왜 엄마는 나에게 자꾸 지시만 하는가. 왜 나를 자꾸 바꾸려 하는가. 이렇게 받아들이게 된다. 이것은 아이 입장에서 부모가 자기를 신뢰하지 않으며, 나는 고칠 것 투성이인 사람이다.라고 느끼게 만든다. 극단적으로는 내가 부모에게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 교정해야 할 대상으로서만 존재한다고 느낄 우려가 있다.


사실 인간은 아무리 어리더라도 내가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 어린아이도 안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얼굴이 빨개지는 이유가 뭔가? 지금 이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느낌. 내가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다는 부담감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부모의 과도한 교정과 지시는 내가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 고쳐져야 할 대상이라는 느낌밖에 안 든다. 그럼 아이는 ‘중요해지고 싶은 욕구’ 때문에 자기를 중요하게 대해주는 누군가를 찾게 된다. 그것은 친구와 자본주의일 수 있다.


칭찬에 인색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자기를 칭찬해 주는 누군가에 목마르다. 누군가 자기를 칭찬해 주면 금세 마음이 빼앗길 것이다. 아이들은 참으로 취약하다. 왜냐하면 아이들에게는 끊임없이 나침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를 완전하게 만들어 줄 누군가를 찾는다. 그 누군가와 부모의 가장 큰 차이점은 뭔지 아는가? 바로 ‘무조건적인 사랑’을 줄 수 있는가이다.


이제 다시 관찰로 돌아와 생각해 보자. 아이를 관찰하는 일이 왜 중요하냐면, 아무 요구도 없는 상황에서 부모가 아이에게 던지는 말은 값비싼 그 어떤 선물보다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저 혼자 뭔가를 하고 있는 아이를 향해 이렇게 말해보자.

“우리 딸, 여기서 보니까 더 예쁘네?”

“우리 딸, 언제 이렇게 컸지? 이제 곧 엄마보다 더 크면 엄마 잘 보살펴줘야 해!, 너만 믿는다! “

“우리 딸, 뭔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니 진짜 훌륭한 사람이 될 것 같은데?”


예상치 못한 칭찬과 애정이 느껴지는 엄마의 표정에 아이는 부모를 더 사랑하고 더 의지하게 된다.

반드시, 예상치 못한 순간이어야 한다. 아이에게 들키면 효과가 반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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