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인스타그램은 남의 인생을 엿볼 수 있는 도구다. 스마트폰에 대고 손가락을 까딱까딱 밀어 올리는 것만으로 수없이 많은 삶의 방식들을 관찰할 수 있다. 과거에는 베일에만 싸여 있던 '남의 삶'이 이제는 완벽하게 오픈됐다. 원한다면 누구나 자신의 삶을 공유하고, 남의 삶을 훔쳐보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우리는 인스타그램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을까?
나는 최근 '릴스 만들기'에 취미를 붙였다(릴스: 인스타그램에 게시하는 짧은 동영상). 영상 만들기 자체만으로 좋은 훈련이 될 거라 기대하며 일상 루틴, 여행, 책 서평 등 다양한 주제로 '자발적 릴스 50개 만들기 챌린지'를 시작했다. 한 달쯤 지나 30여 개를 완성했고, 50개 만들기 챌린지를 완수하니 마음속에 중요한 인사이트 5개가 떠올라 정리해 보았다.
1. 내 시간이 타인의 계좌로 입금되는 시대
릴스가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아는가? '릴스 50개 만들기 챌린지'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몰랐다. 릴스 조회수가 높으면 모회사인 META에서 수익금을 정산하고 일정 금액에 도달하면 계좌로 입금된다. 내가 만든 릴스를 누군가 조회하는 것만으로 수익이 된다는 이야기다. 릴스를 보는 데 사용하는 짧은 시간이 모여 차곡차곡 타인의 계좌로 입금된다.
2. 내 의식을 손쉽게 지배하는 콘텐츠
우리 중 대부분은 콘텐츠 소비자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10명 중 7명은 숏폼 시청자라고 한다(매일경제 2023. 3. 1. "10명 중 7명은 숏폼 시청… 이용률 1년 새 10% 넘게 늘어").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도 릴스를 만드는 사람이 나 외에 몇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유저가 '만드는(어렵고 번거로운) 일'보다 '보는(쉬운) 일'에 더 관심이 있다. 평균 30초 이내의 엄청난 시각 정보는 우리의 뇌로 쉽게 흘러 들어간다.
연예인이나 정치인 같은 유명인에 관한 편집된 정보, 사실에 감춰진 의혹, 어려운 지식을 제멋대로 풀어 설명한 콘텐츠는 전문가 검증이 안 된 누군가가 만든 콘텐츠다. 팩트체크가 전혀 안 된 내용일 수 있는데, 인스타그램을 통해 아이부터 노인까지, 누구라도 콘텐츠를 손쉽게 접할 수 있다. 지인을 만나 1시간만 수다를 떨어도 요즘 소셜미디어에 상위 노출되는 이야깃거리로 넘쳐난다. 그런데, 무심코 읽고 보는 콘텐츠들이 우리의 의식을 의도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 다들 알고 있을까?
3. 친절한 스토커의 불편한 배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 즉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신념으로만 정보를 취하고 그에 반하는 신념은 배척하는 성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AI는 우리의 검색성향을 분석해 확증편향을 부추긴다. 내가 '후드청소'광고 영상을 10초만 시청해도 이후부터 '후드청소'와 유사한 광고, 심지어 '욕실청소'같은 연관영상이 피드로 계속해서 노출된다. 이쯤 되면 우리 집 후드를 당장 청소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지경에 놓인다. 책을 주제로 릴스를 만들면, 한동안은 온통 책과 관련된 피드로 인스타그램이 도배된다.
인스타그램은 내가 무엇에 관심을 갖는지, 어떤 신념을 갖고 있는지, 콘텐츠 시청 시간이 1초인지 10초인지 매의 눈으로 감시한다. 뿐만 아니라 내가 하는 다음 행동까지 추적한다. 바로 다른 영상을 넘기는지, 그 영상을 반복재생 하는지 혹은 영상을 올린 사람의 프로필을 확인하고 팔로우를 누르는지까지 치밀하게 기록한다.
놀랍지 않은가? 세상에 누가 나의 작은 움직임까지 이렇게 치밀하게 분석한단 말인가. '당신이 좋아할 만한 것들로 내가 다 준비했어.' 친절한 스토커 인스타그램은 내 귀에 대고 불편하게 속삭인다. 일단 골라놨으니 마음에 드는 걸 얼마든지 고르라고 유혹한다. '나는 너의 시간만 있으면 돼'라고 하면서.
4.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콘텐츠, 알고리즘은 알고 있다.
릴스 재생시간이 최소 10초에서 30초 이상을 넘기면 소비자의 집중을 붙들기 힘들다고 한다. 시작부터 빠르게 사람들의 관심을 붙들어 매는 것이 관건이다. 그래야 결말이 궁금한 사람들이 끝까지 시청한다.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은 '끝까지 시청하게 되는 콘텐츠'를 상위 노출시킴으로써 조회수가 높아지고 이것은 즉시 수익화로 연결된다. 사람들이 보다가 재미없어서 넘겨버리는 릴스는 상위 노출에서 과감히 배제된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끝까지 시청하도록 만드는 릴스에는 어떤 비결이 숨어 있을까? 릴스 챌린지를 수행하면서 나는 이것을 진지하게 고민했고, 소비자가 최대 30초나 되는 시간을 릴스를 시청하는데 쏟으려면 '재미'가 있거나 '정보'가 되는 콘텐츠여야 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됐다. 질문으로 시작해 관심을 끌고, 영상의 마지막에 답을 하는 형식의 릴스가 알고리즘에게 간택된 릴스라는 점, 다들 알고 있을까?
5. 생산자 마인드
릴스챌린지를 하면서 처음에는 '오늘은 무슨 주제로 릴스를 만들어볼까?'였던 질문이 '사람들은 뭘 보고 싶어 할까?'로 바뀌었다. 내 뇌에 생산자적 마인드가 탑재된 것이다. 짧은 시간에 '재미'나 '정보'가 담긴 영상을 제작해야 하므로 '가장 짧고 효과적인 메시지로의 변환'을 목적으로 글을 요약하고 다듬는 작업을 반복했다. 어쩌면 이것이 카피라이터의 일일까?
생산자 마인드가 장착되면,
첫째, 짧은 시간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고민하게 되므로 기획력 상승을 꾀할 수 있다.
둘째, 사람들의 기호를 살피게 되니 공감능력이 상승한다.
셋째, 영상 제작 스킬이 향상된다.
넷째, 글쓰기 실력이 향상된다.
다섯째, 지식과 경험, 정보 등의 기록이 영상으로 쌓여 자연스럽게 라이프로깅(삶의 기록)이 된다.
여섯째, 요약을 통해 글에 대한 집중력과 문해력이 상승한다.
일곱째, 생산자적 마인드를 장착함으로써 양질의 콘텐츠를 가려낼 줄 아는 안목이 생긴다.
어디선가 누군가는 인스타그램에서 우리의 관심을 끌 콘텐츠를 열심히 생산하고 있다. 릴스챌린지를 마치고 나는 쉽게 얻을 수 없는 귀중한 깨달음을 얻었다. 무심코 소비하는 우리의 30초가 누군가의 계좌에 입금되는 오늘날, 콘텐츠 생산자가 되기로 결심하면 과거에는 보이지 않던 세상의 숨은 의도와, 소비자를 속이는 알고리즘이 구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어떤 콘텐츠가 우리의 시간을 빼앗아 돈으로 바꾸고 있는지, 또 우리의 확증편향을 부추겨 어떻게 숨은 권력의 배를 채우고 있는지를 알아채는, 깨어있는 콘텐츠 생산자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