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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by 새이버링

“여기서 이런 사업하시려면 돈이 꽤 많이 들었죠?”

“네? 아... 뭐, 그렇죠.”


파전을 그 자리에 서서 쩝쩝대는 한상무가 밑도 끝도 없이 질문을 던졌을 때 주이는 대답을 얼버무렸다. 전집을 차리는 데 드는 돈을 전부 다 셈한다 한들 난생처음 보는 아저씨에게 돈 얘기를 하긴 싫었기 때문이다. 주이의 표정을 눈치챈 고대리는 한상무의 눈치를 보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계란 부스러기와 튄 기름을 키친타월로 닦고 있는 주이의 손길과 전집의 실내를 번갈아 쳐다보던 한상무가 전을 쥔 손을 올리며 또 한 번 물었다.


“이거 팔아서 여기서 먹고 살만 합니까?”


주이는 고개를 번쩍 들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색하며 한상무를 쳐다봤다. 한상무는 질문만 던져놓고 답은 들을 생각도 없다는 듯 호주머니 속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메시지를 확인했다. 주이는 들고 있던 뒤지개로 삿대질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오늘따라 부쩍 날이 습해서 끈적끈적한 등에 땀이 났다.

‘이보세요, 당신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모르겠는데, 나도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기업에도 다녔고 돈도 쓸 만큼 쓴 사람이에요. 먹고살기 힘들어서 시드니까지 와 근근이 입에 풀칠하는 사람은 아니란 말이에요.’

주이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지만 이런 사람과 입씨름해 봐야 얻을 게 없으니 차라리 능청을 좀 떨어보기로 했다. 무례한 사람에게는 오히려 침착하게 뻔뻔해야 한다고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났다. 이 사람과 얼굴 붉혀 봐야 얻을 게 없다는 것쯤은 주이도 잘 알고 있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입꼬리를 쭉 올렸다. 인위적인 미소였다.


“이걸로 먹고 살기엔 택도 없죠, 손님 같은 분들이 많이 사 주셔야 입에 풀칠이라도 하겠네요.”


주이는 넉살 좋게 말하면 한상무가 호의를 베풀어 한 개라도 더 사 먹을 줄 알았으나 한상무는 그녀의 말을 어쭙잖은 웃음으로 가볍게 무시하고 고대리에게 독촉하듯 물었다.


“거, 물티슈는 없나?”

“상무님, 여기 그냥 티슈는 있는데 물티슈는 없...”


고대리는 언제 넣었는지 모를 구겨진 티슈를 호주머니에서 주섬주섬 꺼냈다. 헝그리잭스 패스트푸드점 로고가 인쇄돼 있었다. 주이는 고대리가 ‘상무님’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직장상사를 모시고 출장 온 부하 직원쯤으로 둘의 관계를 어림잡았다. 천국 같은 시드니지만 상사를 모시고 온 해외출장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의 표정이 ‘여행 중’이 아니라 ‘일하는 중’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여기요.”


주이는 일회용 물티슈 두 장을 내밀었다. 한상무를 생각하면 주기 싫었지만 고대리의 어리숙한 표정을 보니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주이가 건넨 물티슈를 받고는 물 만난 물고기 마냥 눈이 번쩍 떠진 한상무는 느끼한 미소로 갑자기 주이에게 통사정을 했다.


“아, 돌아다니다 보니 물티슈 쓸 일이 참 많더라고요. 한 대여섯 개만 더 챙겨 주면 안 될까요? 같은 한국 사람을 만나니 이런 부탁도 하고, 참 좋고만요, 허허!”


한상무의 머리가 벗어진 것은 유전 탓만은 아니겠지 생각한 주이는 선심 쓰듯 물티슈 여섯 장을 건넸다. 한상무는 주이의 손에 든 물티슈 여섯 개를 낚아채듯 주머니에 눌러 넣고는 가격을 물었다.


“다해서 얼만가요?”

“파전 두 개, 김치전 한 개 하셔서 총 26불입니다.”


한상무는 고대리가 지갑에서 꺼낸 현금 30불을 받아 기름 묻은 유산지와 함께 주이에게 내밀었다.


“손님,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버려 주세요.”


주이는 엄지와 검지로 집게를 만들어 현금만 쏙 뺐다. 한 상무는 손에 든 쓰레기와 고대리를 번갈아 쳐다봤다. 고대리는 “주십시오.”라는 말과 함께 서둘러 그의 손에서 쓰레기를 훔쳤다. 주이가 잔돈으로 2불짜리 동전 두 개를 내밀자 한상무가 아까 물티슈를 달라고 통사정할 때와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기 메뉴판에 콜라가 4.5불인데 4불에 주면 안 돼요? 한국 사람끼리 서비스, 좋잖아요?”


주이는 진상 손님을 한시바삐 보내버리고 싶은 마음과 그를 응징하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찰나를 고민했으나 “그러세요.”라고 말하며 냉장고에서 콜라를 꺼내 왔다. 어릴 적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다.’고 했던 친정 오빠의 충고가 반사적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횡재한 듯 기뻐하는 한상무는 물티슈 두 개를 꺼내 손과 입을 거칠게 닦았다. 고대리에게 물티슈가 필요하냐고 묻지도 않았다. 신고 온 구두 위 먼지까지 마저 훔친 물티슈를 바닥에 툭 버리고 몸을 일으켜 허리를 쭉 늘렸다.


“잘 먹었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자주 여행을 와 줘야 이 나라도 먹고살지, 안 그래요? 사장님, 번창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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