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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월동 전순이

by 새이버링

주이는 어릴 때부터 전을 잘 부쳤다. 손이 빨라 재료준비는 단숨에 해치우고, 프라이팬 위에서 반죽을 부치는 손놀림이 수준급이었다. 뒤지개와 숟가락만 있으면 팬 위의 반죽을 납작하고 먹음직스럽게 잘 펼쳤다. 뜨거운 기름에 튀기듯 부치다가 신속하게 뒤집어 더 바삭해지도록 꾸욱 누른다. 고기만 ‘마이야르 반응’이 있는 게 아니다. 김치전도 먹음직스럽게 그을리면 바삭하고 고소하다. 어릴 적 주이는 살던 동네 이름을 딴 ‘진월동 전순이’라는 별명이 있었다. 주이의 엄마는 딸이 시집갈 때 명절에 전 부칠 사람을 빼앗겼다며 눈물을 훔쳤고, 주이의 시어머니는 전을 뚝딱 부치는 며느리를 얻었다며 아주 흡족해했다.


육아와 일에만 매진했던 지난 15년 동안 힘들게 모은 적금과 비상금을 몽땅 털어 마음에 품었던 꿈을 이뤄보기로 마음먹었다. 시드니에는 전집이 없고, 이것은 호주살이와 부자 되기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는 것이라고 진혁을 졸랐다. Chat GPT를 활용해 적금과 비상금을 밑천으로 구체적인 투자 계획안을 작성해 왔다. 현지에서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면 한국에서보다 교육비가 훨씬 덜 들 것이며 투자금은 한 푼도 손 벌리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겠다고 선언했다. 진혁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돈을 달라는 것도 아니었고 같이 가자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주이가 아이들을 데리고 1년 동안 시드니에서 전집을 차려볼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 유일한 요구였다. 아이들의 안전과 불안정한 사업 계획을 핑계로 반대했지만 결국 고소하게 부친 김치전을 들이밀며 어릴 적 꿈이었다는 ‘시드니 전집’을 간절히 조르는 아내를 이기지 못했다.


둘째 민서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15년 간 다녔던 직장에서 1년 동안 육아휴직을 냈다. 최대 3년까지 낼 수 있는 휴직이었지만 일단 1년 동안 시드니 전집을 운영해 보고 연장을 결정하기로 했다. 제일 먼저 시장조사가 급선무였다. Chat GPT가 찾아 준 정보로는 부족했다. 현장에서 상가와 살 집을 알아보고 아이들이 다닐 학교도 알아봐야 했다. Sky scanner 앱을 통해 출국 날짜가 임박한 50만 원짜리 땡처리 항공권을 발견했다. 시작부터 예감이 좋다. 주이는 이렇게 다급한 이끌림을 갖고 적극적으로 움직인 적이 없었다. 시드니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으니 온 우주가 자신을 돕는 것 같았다. 어쩌면 이건 운명일까? 주이는 자신의 운명이 어딘가에 쓰여 있다면, 시드니에 전집을 차리는 스토리가 반드시 있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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