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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이버링 Nov 23. 2022

가족의 위로

팔순을 바라보는 아빠 노인의 한숨


오랜만에 나이가 팔순을 향해 가는 아버지의 차를 얻어 타고 출근을 했다. 내 아버지는 환갑에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한 위인이다. 얼굴마저도 동안인 아버지를 주위에서도 대단하다고 했다. 나를 내려주고 내 회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길 부동산'으로 아버지도 출근을 할 것이다.


딸아이가 유치원버스에 타는 것을 확인한 뒤, 유치원 버스 바로 앞에 주차한 아빠의 차에 빠르게 탑승했다. 아빠는 나에게 반갑게 인사한 뒤 주차한 차를 출발시키기 위해 잠시 후진했다. 그 순간 경고음이 빠르게 울리며 후방카메라를 통해 유치원버스의 번호판이 바짝 붙어 보였다.


"부딪혔어요?"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젓는 아빠를 뒤로 하고 급히 차에서 내렸다. 옆에서 보고있던 다른 학부모들에게 부딪혔냐고 물으니 번호판에 차가 닿았다고 했다. 나는 평소 친절하게 인사해주시던 기사님(딸아이는 '실장님'이라고 부르는)을 바라보았다. 차에서 내려보지도 않고 그냥 가라는 손짓을 하신다. 그건 도리가 아닌 것 같아 운전석 창문에 가까이 다가가니 창문을 내리고는 괜찮으니 그냥 가라고 손사래를 치신다.


"이따가 내려서 확인해보시고 혹시 비용이 들거나 문제가 있으면 꼭!! 연락 주세요!"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을 담아 인사드리고, 출근 시간이 빠듯해 하는 수 없이 아빠 차에 탔다. 아빠는 내려서 확인할 것도 없이 빠르게 차를 출발시켰다. 괜히 아빠에게 오늘 출근을 부탁해서 이런 일이 생긴 것은 아닌가 하고 속상한 마음이 밀려왔다. 평소에 차를 아끼는 아빠라는 것을 알기에 더욱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침에 아빠를 위해 만든 샌드위치와 미리 주문하고 픽업한 커피를 드렸는데 별로 달가워하시지 않았다. 불면증 때문에 커피는 절대 안 마신다 했고 먹을 게 많다며 샌드위치도 거절했지만, 그래도 기어코 내 성의니 받으라며 챙겨드렸다.


출근길은 차가 많이 막혔다. 아침의 사고(?)를 큰 사고는 아니니 됐다고 넘기려는데 아빠가 말했다.


"내가 나이를 많이 먹어서 이제 운전이 쉽지가 않은가 보다..."


이렇게 말씀하시더니 어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어제 퇴근하고 아파트 골목에서 좌회전을 하는데 갑자기 아이들이 튀어나와 급정거를 했다. 어둠 속에서 본 아이 두 명은 중학생쯤으로 보였고, 아빠가 창문을 내려 갑자기 뛰어오면 어떡하냐 아이들에게 호통을 쳤다. 아이들은 죄송하다며 사과를 했고 아빠에게 괜찮으시냐 묻고는 잽싸게 뛰어 돌아갔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 날 경찰서에서 연락이 와서 초등학생 뺑소니로 고발을 당했고 경찰에 출석을 하셨다. 비도 오는데 경찰서에 가니 기분이 매우 나빴다고 한다. 뺑소니라니, 상황인즉슨 아이들은 초등학생이었고 부모가 집에 온 아이들의 말을 듣고 CCTV를 확인한 뒤 이건 뺑소니라며 아빠를 고발한 것이다. 그날 아이들은 아빠에게 사과하고 되려 아빠가 괜찮냐고 묻고 사라졌는데 아빠 입장에서는 어안이 벙벙한 일이었다. 경찰서 교통과 직원은 벌금 700만 원 정도가 나온 비슷한 판례를 이야기하며 그렇게까지 돼서는 안 되니 잘 합의했으면 한다고 했단다. 나는 경찰서 직원이 아빠에게 공감하며 친절하게 잘 대해줬다는 말을 재차 확인하고 약간 안도했다.


하지만 뺑소니로 고발한 학부모의 입장에서도 생각해본다. 나라면 어땠을까. 내 아들이 그런 일을 당했더라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 같다. 일단 아이가 지금 아픈지 어쩐 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다. 혹시 불편한 기색이 보이면 일단 사실 확인을 해야 마음이 놓일 것이다. 아빠는 학부모와 통화를 했고 어쨌거나 사람이 중요한 것이니 미안하게 되었다고 사과를 했다. 아빠의 말투는 정중했을 것이다. 나라면 어땠을까? 팔순을 바라보는  우둔한 노인네의 실수려니 생각하고 아이가 크게 다치지 않았다면 적당한 선에서 넘어갔을 것이다. 그것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도리'같은 것이라 여겼을 것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관대한 것이 '덕'이라면 어떠한 형태로든 나에게 보상될 것이라 믿는 마음이 내게는 있다. 그래서 애 엄마의 반응이 어땠냐고 물으니 그냥 냉랭했다고 한다. 그렇게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는 것도 아니었지만 아빠의 잘못을 따박따박 따지고 짚었다고 했다. 경찰서 전화기에서 느껴지는 대화의 온도가 궁금했다. 그날 경찰서의 공기까지도. 일주일 뒤에나 한 번 더 통화해보라고, 지금은 상대가 화가 좀 나 있을 수 있으니 잘 합의해서 적당한 선에서 끝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는, 직원의 말에는 어떤 의도가 숨어있는지도 궁금했다. 상황 설명을 다 마친 아빠를 보며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꼈다. 더 이상 많은 것을 캐묻기에는 내가 걱정할까 봐 다소 감췄을 아빠의 마음도 헤아려야 했다. 늘 이런 식이다. 아빠에게는 좋은 일이라는 게 일어나기는 하는 걸까?

(일주일 뒤 그 아이의 부모는 300만 원을 받고 합의를 해줬다. 갑자기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제 아들이 다치지도 않았는데 노인네에게 뜯어낸 현금 300만 원을 어디에 썼을까?)



아빠와 헤어지고 사무실에 앉아 무거운 마음을 짓누르다가 문득 어제 오디오북으로 들었던 나미야 잡화점 이야기를 떠올렸다. 야반도주를 계획하는 부모님 때문에 고민하는 고스케에게 나미야가 보내 준 답장의 핵심은 '가족은 함께여야 하고, 부모님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뻔한 말이지만 내 마음에 와닿았던 것은 괴로운 상황에서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후일의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는 것이다. 즉시 아빠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빠, 별일이 있어도 다 필요 없고, 우린 아빠의 건강과 행복이 제일 중요해요,
우리가 다 건강하고 잘 사는데 그런 일쯤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한참 뒤 언제나처럼 아빠는 "알"이라고 답장을 보내왔다. 아빠에게 내 마음이 전해졌기를. 삶이 고통스럽고 고단하고 뜻대로 풀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우리 가족이 건강하고 함께이고 평안한 삶을 살고 있다. 그 사실을 잊지 말아 주기를. 위로가 되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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