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주는 기쁨
호주에서 먹었던 사워도우(Sourdough) 빵이 몹시도 그리웠다. 동네 빵집 여러 곳을 기웃거려도 사워도우를 파는 곳이 없었다. 급기야는 온라인으로 주문할 심산으로 ‘광주 사워도우’를 검색했다. 양림동의 ‘펭귄당’ 사워도우가 맛있다는 후기가 꽤 많이 보였다. 양림동 펭귄마을 옆에 있어서 그렇게 이름을 지었나 보다.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곧장 펭귄당에서 사워도우 2개를 샀다. 1개에 무려 7천 원. 휴직 중이라 수입이 없는 나에게 적지 않은 금액을 빵값에 지출했다. 생각보다 크기가 상당해서 서너 번에 걸쳐 나눠먹을 수 있어 좋았다. 냉동실에 밀봉해 두고 출출하고 허전할 때마다 꺼내 먹었다.
달군 팬에 올리브유를 붓고 튀기듯 구워 먹을 때 제일 맛있다. 튀긴 뒤 열기가 가시면 겉바속촉한 토스트가 되고 한 입 베어 물면 고기를 씹는 듯 감칠맛이 났다. 발뮤다 토스터기에 물을 조금 넣고 구운 뒤 발사믹을 곁들인 올리브유에 찍어먹으면 담백하다. 너무 질기지도 않고, 거북한 밀가루 향도 나지 않았다. 겉이 너무 두꺼우면 씹기 거북스러운데 펭귄당의 사워도우는 두께가 내 입맛에 적당했다. 마침내 완벽하게 마음에 쏙 드는 사워도우를 발견하 것이다. 유레카!
부지런히 먹고 남은 네 조각의 사워도우는 오늘 제 명을 다했다. 한 조각도 허투루 먹지 않았다. 오늘도 가장 맛있는 방법으로 조리하여 나를 호강시켰다. 그런데 더 이상 꺼내먹을 사워도우가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은 즉시 나를 공허하게 만들었다. ‘펭귄당’으로 향했다. 혹시나 헛걸음을 하고 싶지 않아 사워도우가 매장에 남아있는지 전화로 확인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사워도우 두 개 컷팅해서 포장해 주세요"
여직원은 건네받은 카드로 결제를 마치고 잠시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언뜻 보기에도 저 여직원이 빵을 만드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 사장님은 누굴까? 누가 빵을 굽는 걸까? 호기심이 들어 주방을 힐긋거렸다. 마른 체구에 안경을 쓴 아저씨가 나왔다. 다른 손님이 음료에 대해 물으니 여직원을 거들어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저분이 사장님이군.’
인생 사워도우를 맛보게 해 주신 분께 구름을 태워드리면 어떨까. 종이백에 포장된 사워도우를 건네받으며 사장님을 향해 힘주어 말했다.
사장님, 여기 사워도우가 정말 맛있네요.
제가 사워도우에 애정이 각별한데,
이렇게 맛있는 사워도우는 처음이에요.
실은 예전에 호주에서 맛본 사워도우가
너무 그리워서 파는 데를 찾다가
여기까지 왔는데 호주보다 더 맛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오죽 맛있었으면 집 앞 동네도 아닌
이렇게 먼 곳까지 차를 끌고
이 빵을 사러 왔겠어요?
장담하건대 사장님 사워도우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사워 도우에요!
이렇게 말한 것은 빠짐없이 진심이었다. 진심이 통했을까. 사장님의 표정이 밝아지는 것을 느꼈다. 빵쟁이에게 빵이 맛있다는 말보다 더 기쁜 말이 있을까. 그냥 맛있다는 말로는 싱겁다. 칭찬에 후추도 뿌리고 소금도 뿌리고 깨도 뿌렸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빵이라는 말은 구름이 되어 하늘로 떠올랐고, 구름 위에 올라탄 사장님이 보였다.
어쩔 줄 몰라하며 감사하다고 웃으셨다. 어떻게 조리해 먹냐고 묻길래 평소 먹는 방법을 말씀드렸다. 이렇게 먹는 게 맞나요? 되물으면서.
“정말 제대로 드실 줄 아시네요”
라며 고개를 끄덕이는 사장님은 내가 말한 방법을 가르쳐주려고 했던 모양이다. 사워도우 하나로 사장님과 나는 연결되었다. 더 가르칠 것이 없겠다는 표정으로, 구름에서 사뿐히 내려온 사장님은 빵 진열대를 살핀다.
저희 빵이 사워도우만 맛있는 건 아니거든요,
제 크루아상도 절대 세계적으로
밀리지 않을 겁니다.
이렇게 후한 칭찬을 받았으니
저도 보답을 해야겠는데요.
어느새 내 손에는 세계적으로 밀리지 않는 크루아상도 들려있었다. 이미 사장님은 스스로를 세계적인 무대 위에 올려놓으셨다. 사양할 이유는 없었다.
“어머, 그럼 꼭 맛봐야겠는데요? 너무 감사합니다. 그런데 크루아상은 어떻게 먹는 게 제일 맛있나요?"
크루아상은 내 분야가 아니라 진심으로 궁금한 마음에 물었다. 절대 칼로 자르지 말고 한 겹씩 벗겨먹으라고 비법처럼 알려주셨다. 칼로 잘라먹으면 맛없다고 재차 강조하시면서.
어쩌면 오늘 저녁 식사를 하며 사모님께 오늘 들은 칭찬을 전할지도 모른다. 내 칭찬은 사장님의 머릿속에 부유하며 한동안 ‘펭귄당’은 손님들에게 더욱 맛있고 건강한 빵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내 멋대로 상상해 본다.
오늘 사장님과 나, 두 사람에게 없던 것이 하나씩 생겼다. 나에게는 쿠르아상이 생겼고, 사장님에게는 자부심이 생겼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말이 ‘무’에서 ‘유’를 탄생시킨 것이다.
뻔한 말이지만 나는 말이 주는 기쁨을 각별히 의식하며 살고 있다. 말은 크게 비용을 들이 않고도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남편에게도, 자식에게도, 부모님께도 아낌없이 줘도 동나지 않는다.
내 앞의 상대가 가족이든지, 지인이든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끊임없이 상대가 멋진 이유를 찾는데 칼로리를 소모한다. 그 일은 통장에 돈이 쌓이는 것만큼 가치 있게 느껴진다. 나의 진심 어린 칭찬과 노력에 대한 격려는 상대에게 기쁨이 되고, 그 기쁨은 때로 하루종일 상대를 행복하게 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나 또한 작은 격려와 관심, 칭찬에 하루가 충만했던 경험이 차고도 넘친다.
오늘도 나는 칭찬거리를 찾는다. 오롯이 말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세상에 없던 행복을 탄생시키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