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과 그녀는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차로 10시간이 넘게 걸리는 뉴욕으로 출발했다. 그녀가 살았던 곳은 버지니아였지만, 코로나로 인해, 그 당시 한국 직행이 몇 번 없었고, 가격은 정말 터무니없이 비싸 그녀는 뉴욕-인천행 티켓을 구매했다.
마지막으로, 버지니아 시골집에서 자던 날, 그녀의 큰 아이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우는 아이를 달래 물으니,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와 못 만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눈물이 난다고 했다. 그 다음부터 우리는 큰 아이를 기쁘게 해 주려고 큰 아이의 절친과 거의 매일 화상채팅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큰 아이의 친구는 그녀 또한 매우 마음에 들어한다. 그 작은 시골마을에서, 백인이 주가 되는 마을에서, 처음으로 그녀에게 인사를 해 준 아이들의 친구였다. 그래서 그녀는 특히, 그 아이를 좋아한다. 그녀는 큰 아이가 한국에서도 그런 친구를 만나기를 바랬다.
하지만, 그것은 욕심이였을까? 그녀의 큰 아이는 힘들어 보인다. 누군가에게 잘 다가가지 않고, 마음이 잘 맞는 한 명의 친구와만 지내려는 경향이 강한 큰 아이는 교우관계가 걱정이 된다. 어느 날, 큰 아이는 남편에게 자신은 한국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한국인이 되고 싶다고? 남편은 너는 완전한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니지만, 이미 두 국적을 다 가지고, 두 나라에서 살았고, 두 나라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던 일요일, 큰 아이를 샤워 시키는데, 그녀에게 말했다. "엄마, 내가 학교에서 집으로 혼자 걸어올 때, 다른 아이들이 나보고 외국인이래". 그녀는 순간 당황하였지만, "네가 한국어도 하고 영어도 하고, 버지니아에서도 살았고, 한국에서도 살아서 아이들이 부러워 하는 거야. 아이들이 네가 두바이에서 태어난 걸 알면 더 놀랄 껄?"이라며, 달래주는 것인지, 풀어주려는 것인지의 말을 해 주었다.
(그녀의 큰 아이는 한국에 온 이후로, 혼자서 하교 하는 것을 원해, 그렇게 해 주고 있다.)
실제로 아이들이 그녀의 큰 아이가 신기하여 그랬는지, 놀리려고 그랬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아이가 최소한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미사어구 아닌 미사어구를 하였다. 담임 선생님께도 도움을 요청하였지만, 방학이 시작되는 바람에, 그녀가 전화를 놓치는 바람에 제대로 연락을 할 수 없었다.
그 이후로 큰 아이와 이야기를 하였고, 아직 큰 문제를 발견하지는 못 했는데, 아이의 자존감을 더 키워 주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의 행복을 위해 선택한 한국행은 과연 옳았던 것일까? 아이들에게 혼란을 너무 많이 주는 것 같은데, 자신의 선택이 맞았던 것인지 그녀는 자신에게 계속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