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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술의 정서

2022.06.30

아침부터 비가 무척 내렸다. 비는 종일 이어졌다. 이런 날씨엔 조미료가 잔뜩 들어간 김치찌개에 라면 사리를 넣고 그 라면이 퉁퉁 불어 우동 면발이 되도록 낮술을 마셔야 한다.


낮술을 마시기 시작한 것은 서른이 넘으면 서다. 서른한 살에 경력직 기자로 들어간 잡지사는 국내 일류 일간지에서 발간했다. 나는 그 잡지사의 경력직 기자로 정당한 단계를 밟고 들어갔지만 편집장과 몇 선배는 나를 노골적으로 무시했다. 특히 편집장의 무시는 도를 넘어 사사건건 나에게 모욕을 주었다. 후에 이 편집장 유모 씨는 무능함으로 후배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할 일이 없이 책상만 지켰다. 그 모습이 보기 딱했는지 사장은 그에게 무크지를 만들어 보라 했고 누구도 그와 일하고 싶지 않다 하여 내가 그를 도와 무크지를 만들었다. 물론 그럼에도 이 편집장은 나를 무시했고 내게도 그런 인간을 존중할 어떤 마음도 없다. (그 보다 도 싫은 인간은 나를 위로하는 척하며 무시한 선배 고모 씨다)


아무튼 주간지에 특성상 기자들은 기사를 마감하고 편집장의 편집이 끝나 자신의 기사를 교정하기 위해 할 일 없이 기다리는 시간이 있다. 그런 시간에 낮술을 했다. 점심시간에 밥을 먹으며 낮술을 몇 잔 하고 약간 몽롱한 상태로 서핑을 하고 아이템 구상을 하던 그 기분은 내가 느낀 사회인으로의 나이듦이었다. 그게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남편과 종종 낮술을 마신다. 주로 비가 내리는 날엔 묘하게 낮술이 당긴다.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남편도 나도 특별한 약속이 없었다. 그래서 마음이 시키는 대로 남편을 꼬드겼다. 그런데 아쉽게 동네에서 괜찮은 김치찌개 집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지난해 3월 이후 처음으로 부대찌개를 먹으러 갔다. 오랜만에 갔더니 주인께서 반색을 하며 반기셨다. 그 사이 부대찌개는 천 원이 올랐다. 소주 한 병을 시켜 사이좋게 나눠 마시고 나오는 길에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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