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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연고로의 지방 생활

by 소행성 쌔비Savvy


그러니까 1년 전 보령 이주를 결정할 때 나는 보령에 아주 작은 연고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연고라고 생각한 인연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때 그는 우리 부부에게 ‘언제 보령을 떠날지 모르는 당신들에게 내가 왜?’라며 우리를 밀어냈다. 웃는 낯으로 정확하게 우리 밀어내는 그에게 ‘말해줘 고맙다’고 했다. 당시에 난 매우 큰 상처를 입었고 몇 달 동안은 화가 나 마음이 덜커덩거렸다. 속도를 내어 마음을 주는 사람을 경계해야 하는 것을 내가 또 잊었던 것이다.


얼마 전 영화 ‘헤어질 결심’을 보았다. 이포의 시장에서 해준을 다시 만난 서래는 해준의 아내가 이포에 연고가 있냐 묻자 연고가 없어 이포를 택했다고 했다. 그 대사를 듣는 순간 무연고가 참 자유롭고 떳떳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철저히 무연고로 보령에서 천천히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나쁘지 않다. 어차피 삶이란 공수래공수거 아닌가. 그러나 누군가 보령으로 이주한다면 나는 기꺼이 연고가 되어 줄 것이다. 보령을 살 만한 곳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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