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서재 결혼 시키기>
성주의 아내 해원이 자살한 지 일 년이 지났다. 성주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은 해원이 죽었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않는다고 말한다. 차라리 해원이 혼자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는 느낌에 가까울 것이라고 설명한다. 심리상담을 전공한 수영은 성주에게 감정을 외면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성주는 자신은 부정하는 것보다 실감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라고 설명한다. 성주는 괜찮다고 말하지만 흔들리는 중이다. 어떤 밤에는 과거에 두 사람이 합친 서재 안으로 죽은 해원이 찾아오기 때문이다.(프로그램이 요약한 줄거리)
연극은 앤 패디먼의 동명의 에세이에서 제목을 가져왔다. 극 중 성주와 해원은 독서 동아리를 통해 만나 결혼했고 둘 다 상당한 애서가로 결혼 후에도 일정 기간 서로의 서재를 따로 갖고 생활했다. 책을 읽으며 그곳에 자신의 느낌과 감정을 마음껏 표현하는 해원에게 그가 읽은 책은 은밀한 일기장과 같다. 성주는 도서관에서 일하는 문화평론가로 확고한 기준에 따라 책을 분류하고 책을 통해 세상과 만나는 인물이다. 이 둘이 서재를 합한다는 것은 물리적인 결합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결혼하며 책을 합하고 정리해 본 사람은 이것의 의미를 알 것이다. 독서는 눈에 띄지 않는 개인의 매우 깊은 내면 세상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성주와 해원은 가까스로 서재를 합했지만 마음의 거리를 좁히지 못했던 것이다. 어쩌면 그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더 나은 결과를 낳았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남들 눈엔 전혀 문제가 없는 부부였다. 토론은 그들에게 일상이었고 이를 통해 마음을 모아간다고 여겼다. 실은 곤고한 각자의 세상을 지키려는 몸 부림였을지도 모른다.
작품은 매우 자세하게 텍스트로 감정을 이야기하고 표현한다. 주인공 성주 역의 이강우 배우는 지루해질 수 있는 작품을 감정선을 조심스럽게 옮기며 연기한다. 과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게. 해원 역을 맡은 김희연 배우 역시 그랬다. 심리상담사이며 성주의 친구 수영을 맡은 장세환 배우가 극의 웃음 코드였지만 성공적이진 않다. 극 자체가 워낙 진지하기 때문이다.
작품은 전형적인 막 구조로 진행된다. 네 명의 등장인물이 무대에 동시에 오르는 장면은 없고 대부분은 이중 두 명만 무대에 올라 대사를 주고받는다. 배우들의 감정과 움직임이 크지 않은 반면 대사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설명적이며 모든 사건은 성주와 해원의 서재에서만 진행된다. 이런 작품을 3시간 가까이 좁고 불편한 의자에 앉아 보는 것은 고문에 가까웠다.
극 막바지엔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성주가 아내를 제대로 애도하고 떠나보낸 것이다. 드러내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자살과 그로 인해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할 남겨진 사람들을 잘 다뤘다. 트리거워닝은 필요해 보였다. 내 옆 자리 관객은 매우 힘들어하며 보다 인터미션 때 나가 들어오지 않았다.
이경헌 작
신명민 연출
이강우 김희연 장세환 한수림 출연
창작집단 LAS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