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이 구하는 세상, 연극 <고요한, 미행>

홍사빈 작, 홍단비 연출

by 소행성 쌔비Savvy

결론부터 말하자, 이 연극을 봐, 말어 망설인다면 얼른 예매하시라.

이 피드가 우연히 눈에 들어왔거든 역시 보시라.

연극 <고요한, 미행>은 홍사빈 작, 홍단비 연출 콤비의 작품이다. 드라마에서 작가 홍자매가 있다면 대학로엔 보석 같은 홍남매 듀오가 있다.

그들이 함께 만든 음악극 <붉은 머리, 안>도 그렇지만 밀도 높은 서사와 등장인물들의 따듯함이 관객을 행복하게 한다.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주지만 억지스럽지 않다.


살인죄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간 ‘고요한!

그는 감옥에서 말을 하는 것은 곧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사람들과 말하기를 거부한다. 말을 잊지 않기 위해 머릿속으로 연습한다.

사역 중 상처가 생긴 감옥에서의 어느 날. 그의 상처에 고여 있는 피는 굳지 않고 그 자리에서 풀이 자란다. 몸에서 풀이 자라게 되었을 때, 요한은 형, 후레쉬맨, 검은턱할미새, 칼과 조우한다.

존재들과의 머릿속 수다가 익숙해질 때 즈음, 15년을 복역한 ‘고요한이 가석방된다. 그는 투옥되면서 보육원에 맡긴 갓난쟁이 딸 ’ 미리‘의 흔적을 좇아 미리의 친구 ’ 새봄‘과 미행을 시작하게 되는데...


입으로 말하기를 잊은 사회성 0% 요한과 수다력 200% 영혼들. 그리고 새봄. 이 미행의 끝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요한은 미리와 만날 수 있을까?


무대는 삼면에 검은 커튼이 쳐졌고 바닥은 반투명의 하얀 아크릴 판이 있고 무대 주변에 작은 풀이 나있을 뿐 별다른 장치가 없다. 극이 시작되면 긴장하고 움츠린 요한이 ”몸의 마음은 말. 말의 마음은 몸. 마음의 몸은 말“이라며 반복하며 독백을 한다. 그 독백은 무척 슬프고 외롭다. 어디에서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이 우울함이 몸으로 표현된다.


전체적으로 배우들의 움직임 표현이 좋다. 작은 무대에 소품이나 무대 변환을 사용하지 않고 배우들이 신체 움직임을 이용해 채운다. 다소 신파적이고 뻔한 이야기는 억지스럽지 않고 마음을 토닥여준다. 모두 메말라 버석이는 것 같지만 누군가는 상처를 통해 새롭게 태어나고 여전히 대가를 바라지 않는 다정함으로 주변을 살핀다. 그리고 이 다정함이 세상을 구한다고 작품은 말한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에서 홍사빈 작가는 “말이 안 되는 상황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연극이다. 요한은 무덤 같지만 상처에 풀이 나며 생명을 갖는다. 이 풀은 치유다. 나는 언제나 ’ 위로하고 싶다 ‘는 동사를 품고 산다. 이 이야기는 극의 후반부인 요한이가 초인종을 누르고 ‘말할 시간이다’하는 장면부터 쓰기 시작하며 만들어 갔다. 궁극적으로 잘 살아가자 살아보자라는 이야기를 만들어 보고 싶다.”라고 자신의 작품 세계관을 털어놓았다.


배우들의 성의 있는 연기, 따뜻한 위트와 진중함이 공존하는 연출의 조화가 좋다. 권도균 배우는 내겐 첫인상인데 찰떡 캐스팅이었다. 정단비, 멀티를 맡은 최이레 배우는 내가 응원하는 배우다. 이 배우들의 성장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우리가 희망하고 꿈꾸는 세상, 연극에선 그 세상이 여전히 가능하다. <고요한, 미행>이 그렇다고 말한다. 따듯하고 사랑스럽게 세상에 외치는 작품이다. “제대로 살아보자 “고.


홍사빈 작 @hongxabin

홍단비 각색 연출

권도균 @piisiop 정단비 @sweet___rain____ 임진구 김학준 김기태 지민제 최이레 @321_01_271 박상준 출연

김주형 작곡 설예준 무대 곽태준 조명

디오티 제작 @team_d.o.t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연극 <몸 기울여>, 폭력을 담아낸 고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