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무언가를, 어딘가를 통과해야 하는 청춘의 기록

연극 <얼떨결에 종언>

by 소행성 쌔비Savvy



청춘에겐 단 한시도 만만하고 쉬운 순간이 없다. 그래서 더 깊게 기억으로 남는다.


지은 지 100년 된 대학의 기숙사, 이번 봄 100주년을 맞이하지만 너무 낡아서 철거를 앞두고 있다. 기숙사에서 짧게는 2년 길게는 10년을 지낸 학생들은 퇴소해야만 한다. 매일 퇴소자가 있고 그 퇴소자를 위해 기숙사 왕선배 사나코는 어떻게든 추억을 만들어 주려한다. '신타로'의 방에 모인 '사나코, 카나에, '츄키치', '미츠키. 이들 다섯 역시 퇴소일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저렴하고 추억이 가득한 기숙사가 사라지는 것이 싫지만 그렇다고 대단한 각오로 투쟁을 하는 것도, 무작정 결정에 순응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자신들에게 닥친 상황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얼떨결에’ 마주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결국 기숙사를 떠나며 자신을 흔들었던 ‘메시지’를 벽에 적는다.


청춘을 보낸 기숙사에서의 마지막 날엔 어떤 말을, 어떤 표정을,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 어떤 모습으로 헤어져야 할까. 이별에 정석은 있을까? 그리고 벽에는 무슨 메시지를 남길까.


‘얼떨결에 종언’은 1988년생 동갑내기 직장 선후배 사이인 데구치 메이와 오오타 유우시가 공동 작업하여 무대에 올렸다. 작품은 2017년 일본극작가협회 신인희곡상을 수상했다. 당시 20대 후반이었던 작가들은 또래의 이야기를 친근하게 들려주었고 이 망설임과 설렘 그리고 막연한 불안은 여전히 청춘의 마음을 대변한다.


나이가 들어 20대를 떠올리면 그때 나는 어렸고 어리석었고 무모했고 지나치게 심각했다. 하지만 찬란했고 아름다웠고 슬펐고 동시에 행복했다. 작품은 이런 우리의 청춘의 한 모습을 왁자하게 재연한다.


극단 ‘불의 전차’가 일본의 희곡을 발굴해 변영진 연출이 숨을 불어넣었고 배우들이 찰떡처럼 소화해 냈다. 다소 왁자하고 유머러스하며 무심하게 디테일을 살리는 변영진의 연출 스타일은 청춘의 부유성을 표현하는 데 그만이다.


송영미, 전하영 배우는 매우 색이 다른 연기로 극의 분위기를 쥐락펴락한다. 송영미 배우의 연기가 시원한 소나기 같다면 전하영 배우의 연기는 이슬비 같다. 이 두 배우가 한 무대에서 자신의 스타일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며 무대를 채우는 게 참 좋았다.


나이가 들며 나는 자연스럽게 사소한 청춘의 이야기와 감정에서 멀어졌고 그때를 떠올리려 하지 않는다. ‘얼떨결에 종언’ 덕분에 찬란하고 동시에 수많은 시행착오로 힘들었던 20대의 나를 잠시 만났다.


데구치 메이 오오타 유우시 작

변영진 연출

송영미 전하영 황두현 곽다인 김보민 탁승민 출연

불의 전차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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