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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째보선창], 항구의 쓸쓸함 그리고 술 한잔

해산물모둠 등 제철 해산물 요리로 술이 술술 들어가는 작은 술집

술을 당기는 쓸쓸함 그리고 짠 맛의 도시, 군산     


잠깐이라도 짬이 생기면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못 가본 곳도 많고 아직 맛보지 못한 음식도 많으니 해야 할 일도 참으로 많은 바쁜 인생이다.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드는 어느 날 군산을 다녀왔다. 군산엔 별 기대가 없었다. 군산하면 십중팔구 이성당의 빵과 복성루의 짬뽕을 이야기하니 도대체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 영화 촬영덕분에 군산에서 두 어 달을 보낸 친구가 군산을 예찬했고, 그 예찬에 나는 동조했다.      


전라도 여행에서 맛없는 음식을 만나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았다. 그러나 블로그의 글만 믿었다가는 흔치 않은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선정한 몇몇 블로거의 맛집 소개 글을 제외하고는 블로거의 맛집 소개를 믿지 않는다. 아무튼, 실수를 줄이기 위해 군산 토박이인 게스트하우스 <다호>사장님께서 추천해 준 리스트를 꼼꼼히 살폈다. 이 게스트하우스의 음식점 리스트는 여행객에게 제법 인기가 높다. 리스트엔 여행자들이 좋아할만한 유명 음식점과 그렇지 않은 동네 식당이 적절히 들어있었다. 그 중 밥과 술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고, 아직 유명세를 타지 않은 순수한 집, 그리고 군산의 지역색을 담은 집이 목표였다. 여기 저기 기웃대다 발견한 집은 <째보선창>. 

깨끗하고 단정하면서 튀지 않는 외관과 상호가 눈길을 잡아끌었다. 들어가 메뉴판을 살폈다. 다양한 해산물 요리가 나열되어 있었고 ‘해산물모둠장’은 대표 선수였다.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 내게 해산물은 늘 반가운 음식이다. 대표 메뉴를 시켰다. 다양한 해산물이 과하게 짜지도 달지도 않은 장에서 잘 익어 내 앞에 놓였다. 새우는 먹기 좋게 껍질도 발라져 있었다. 주문을 받는 직원은 먹다 짜면 공기밥을 비벼 먹어도 좋다는 설명까지 친절하게 해주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생긴 지 얼마나 되었느냐 물으니 올 가을에 열었지만 요리를 하는 사장님이 이미 서울에서 솜씨를 갈고닦은 실력자라는 설명도 같이 해주었다. 

“호텔외식조리학과를 졸업하고 줄곧 외식업계에서 일했어요. 다양한 외식업체를 거쳐 신촌에서 꼬치집과 한과 브랜드를 창업했어요. 조금 더 탄탄하고 제대로 사업을 하고 싶어서 제가 어린 시절은 보내고 부모님이 계신 군산으로 내려왔죠. 도시재생사업에도 관심이 있었는데 군산이 맞춤한 도시였어요. 부모님과 같이 사니 생활비를 줄여 그 돈을 투자할 수 있으니 제겐 일석이조입니다. 그리고 이제 군산에서 더 많은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고 있습니다”라며 고상한 사장은 군산으로 내려온 자신의 판단이 꽤 성공적이었다고 말했다. 



째보선창은 군산의 여러 포구 중 하나인 죽성포의 옛 이름이다. 이름의 유래도 사뭇 해학적이다. Y자로 살짝 째진 강안에 석축을 쌓아 조성한 포구가 째보(언청이)처럼 생겼다고 해서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은 옛 명성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째보선창’이란 지명은 여전히 군산 사람들에게는 정겨운 이름이다. <째보선창>은 바로 이 이름에서 상호를 따왔다. 상호뿐만 아니라 내어 놓는 음식 역시 군산의 특색을 담았다. 

군산에서 가장 구하기 좋은 식재료인 해산물을 중심으로 메뉴를 구성하고, 이 음식에 공을 들였다. 해산물 모둠장이 그렇고, 계절에 따라 나오는 꼬막무침이나 어묵탕도 그렇다. 째보선창에서 십여 분 거리에 대규모 해산물 시장이 있고, 째보선창은 이 시장에서 매일 장을 본다. 해산물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료의 신선도이기 때문이다. 당연히<째보선창>에서 내놓는 모든 해산물 요리는 그야말로 탱글탱클 해산물의 탄력이 살아 있다. 문제는 이 맛이 술을 자꾸 잡아끈다는 것이다. 모둠장의 기본이 되는 장은 일정한 염도를 유지하기 위해 감에 의존하지 않고 염도계를 사용하며 맞추고, 담백하고 깨끗한 장 맛을 유지하기 위해 ‘씨육수(오랜 기간 사용한 깊은 맛이 나는 육수)’를 사용하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늦은 밤, 여행지에서 술 한 잔 마시고 싶다면 <째보선창>을 추천한다. 이 곳은 오후 5시에 문을 열고 새벽 2시에 닫는다. <전라북도 군산시 구영3길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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