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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의 심야식당_덴뿌라는 없어요. 밥술집 '덴뿌라'

오래된 사진엔 이야기가, 작은 주방엔 원하는 음식이 마법처럼 나오는 술집

늦은 시간에 음식 프로그램을 보는 것은 참으로 위험하다. 어제 밤에도 그랬다. 채널을 돌리다 본 유명 음식 프로그램에서 '김치찌개'를 주제로 다루고 있었다. 이미 10시가 넘었으나 허기가 몰려왔다. 마침 남편이 귀가했다. 남편에게 우는 소리로 '배가 고파' '김치찌개가 먹고 싶어' 라고 했더니 남편이 내려가잖다. 예의상 한번 쯤 거절하고 옷을 챙겨입었다.

집에서 뭐든 먹을 수 있었지만 김치찌개를 주제로 한 프로그램을 봤으니 그런 자극적인 음식에 끌려 도저히 집에선 해결할 수 없었다.

집에서 나올 땐 늘 사람이 많은 국수집으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시계를 보니 어느새 밤 11시에 가까웠다.

"국수집에 가긴 너무 늦었어. 덴뿌라 가자."라고 제안했고, 남편은 좋다고 했다.

밤에 더 빛나는 덴뿌라외 그 벽을 가득 메운 옛 사진


덴뿌라는 성북동 신한은행 옆에 있는 작은 음식점이다. 왠만한 식당이 문을 닫은 시간에도 문이 열려있는, 그래서 2차도 아니고 3차 쯤에 찾아도 되는 그런 곳이다. 이 집을 처음 안내해 준 이는 우리 집 근처에 사는 친구 혜나였다.

어디선가 약간 부족한 듯 술을 마셨는데 동네 대부분 술집이 문을 닫았다. 그 때 혜나가 "언니 덴뿌라는 열려 있을 거야. 거기로 가요."라고 했고 우린 그곳으로 갔다. 아마도 12시가 넘은 시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덴뿌라의 문을 열었다. 테레비를 보시던 주인 아저씨 그리고 5개 밖에 안되는 테이블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늦은 밤 술을 마시고 있었고 우리도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 술을 마셨다. 그 뒤로도 늦은 시간 술 생각이 나면 성북동 친구들과 덴뿌라를 찾았다. 어제 밤처럼.


'덴뿌라'라는 상호로 봐선 뭔가 일본스런 튀김이 메뉴로 있어야할 거 같지만 이곳의 메뉴는 지극히 한국스럽다. 과메기, 문어, 홍어삼합 그리고 오므라이스 등...

덴뿌라란 상호는 현재 사장님 내외분께서 이 곳에 터를 잡으며 굳이 간판을 바꾸지 않고 이전 상호를 그대로 사용해 붙은 상호라고 하셨다  


점심부터 저녁 식사시간까지, 대략 저녁 8시까지는 여자 사장님께서 운영을 하시고, 2차 술자리를 찾는 사람들이 어슬렁거릴 시간부터는 남자 사장님께서 맡아서 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이 곳을 드나든지 3년이 넘었음에도 딱 한번 여자 사장님을 뵈었을 뿐, 언제나 남자 사장님께서 해주신 안주로 술을 마셨다.


처음엔 메뉴판의 메뉴를 주문하다. 그런데 술을 마시다 보면 꼭 먹고 싶은 음식이 생기기 마련이다. 내 경우는 계란말이다. 메뉴에 계란말이는 없다. 그래도 주문한다. 그럼 아주 담백한 계란말이가 딱 나타난다.

돼지고기 알러지가 있는 혜나는 김치볶음밥에 햄이나 돼지고기를 빼달라고 한다. 그럼 또 그렇게 해주신다. 밥 반찬으로 주문하는 고등어 구이도 술안주로 내주신다. 이러니 이 집을 멀리할 수 없다.

홍어삼합과 케첩 통

간만에 남편과 단둘이 덴뿌라에 방문했다. 5개의 테이블이 모두 차 있었다. 혼술하는 동네 아저씨들이 둘이나 있었고 나머지 테이블도 두세분이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들어서긴 했는데 술집에서 합석을 하는 예는 흔치 않아 그냥 서있었다. 그랬더니 남자 사장님께서 합석을 하라며 자리를 정리해 주셨고 혼술을 하시던 남자 손님도 흔쾌히 앉으라 하셨다.

우린 홍어삼합을 주문했다. 그랬더니 곧 압력솥 추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삼합용 고기가 익는 소리였다.


술을 마시던 중 마침 아저씨가 보시던 골프 중계도 끝이 나고, 두세분 씩 앉아계시던 손님이 나가자 혼술을 하시던 동네 분이 사장님께 술을 권했고, 사장님은 된장으로 무쳐 볶은 꼬막을 내놓으시면서 자리에 앉으셨다. 마감 시간이 가까운 동네 술집의 풍경이 그대로 연출되었고, 우린 사장님께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덴뿌라 벽엔 오래된 사진이 빼곡하게 붙어있다. 들여다 보면 알만한 얼굴이 참 많다. 그도 그럴것이 성북동에는 배우들이 많이 사는데 그 배우들이 한잔하러 들어와 사장님 카메라를 바라보며 포즈를 취해준 것이다. 오래된 사진에서 사진이 찍혔을 때보다 훨씬 더 유명해진 배우들을 찾는 일은 매우 재미있다.


이야기가 있고 정이 있고 무엇보다 걸어 가서 찾을 수 있는 덴뿌라, 지난 밤 더 많은 이야기를 사장님께 들었지만 그런 이야기는 우리만 알고 있고 싶다. 잘생긴 멋쟁이 사장님의 원래 직업은 재단사로 이십여 년 전까지 명동에서 제법 솜씨를 발휘하셨다고 한다.

잠시 휴식중이신 미인 사장님과 밋있는 제육볶음

아, 음식맛? 김치를 먹어보면 답이 나온다. 좋다. 그런데 사진이 왜 이러냐고? 동네 술집 가서 각잡고 사진 찍는 사람은 흔치 않다. 휴대폰 앨범을 아무리 뒤져도 이 것밖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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