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04_음식점의 본질은 맛인가 비주얼인가?
원래는 춘천에 갈 예정였다. 그런데 춘천 최주영 선생님께 아침에 급하게 문자가 왔다. 아이 반 학생 중 한 명이 코로나 확진이라 등교했던 아이들을 모두 하교 조치했다며 아이들을 데려가라는 문자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와 권민정 선생님은 졸지에 춘천행 일정을 파기해야 했다. 우린 춘천행 대신 서울서 만나기로 했다. 권민정 선생님은 시각디자이너인데 음식에 관심이 높아 지속적으로 음식을 공부하고 카페를 하고 요리 클래스도 운영했다. 그래서 권 선생님이 인도하는 음식점에 가면 실패가 없다.
권 선생님도 오랜만에 서울에 나왔고 나 역시 최근에 외식다운 외식을 못했던지라 좋은 곳에 가기로 했다. 명동에서 만난 우리는 일단 내 생일 인양 내가 좋아하는 <명동교자>에 가서 칼국수를 먹고 에스프레소 바 <리 사르>에서 커피를 마신 후 피크닉에 갔다. 그리고 서울로를 걸어 충무로로 발을 옮겨 요즘 무척 핫하다는 곳에 가기로 했다. 권 선생님은 평소 궁금하고 가보고 싶었던 음식점이나 카페를 지도 앱에 빼곡히 저장해 두었고 그곳에서 한두 것을 오픈한 것이다.
첫 방문처는 디저트 카페 <원형들>. 충무로 인쇄소와 제본소 종이집 많이 있던 옛날 빌딩 4층에 자리한 카페의 손님 90프로는 20대와 30대 초반의 젊은 여성들 였다. 이곳의 인기 메뉴이며 인스타그램에 엄청난 수의 해시태그를 남긴 ‘핑크 딜’이라는 케이크와 ‘고수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딜과 고수의 맛과 향을 알기에 사실 조금 새로운 맛을 기대했다. 결과는 실망였다. 케이크는 크림만 분홍색였고 달을 케이크에 꽂았을 뿐 맛은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오로지 시선을 끌기 위한 음식였다. 주변을 살펴보니 손님들은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다양한 각도에서 사진을 찍을 뿐 열심히 먹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심지어 아이스크림이 반 이상 녹도록 먹진 않고 촬영만 하는 사람도 많았다. 바로 옆 테이블에 앉은 두 명의 여성은 소르베와 칵테일 그리고 케이크까지 총 5개의 메뉴를 동시에 시켜 역시 먹지 않고 촬영만 했다.
요즘 핫한 음식점은 맛보다 비주얼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왜 이렇게 먹는 것을 찍어 전시하는 것일까? 힙하고 핫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힙함과 핫함을 경험하지 않거나 못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난 정말 궁금하다.
이런 궁금증을 안고 두 번째 장소로 이동했다. 을지로 공구 골목의 오래된 점포를 레스토랑으로 바꾼 ‘을지로 남작’였다. 음식점을 하기엔 무척 불편한 구조를 한 곳이었다. 그럼에도 여기 역시 예약이 쉽지 않은 곳이라고 했다. 일본식 이자카야였다. 음식점에서 준비한 음식을 주는 대로 먹는 ‘오마카세’로 음식 값이 저렴한 대신 술을 반드시 주문해야 한다. 선택 장애가 있는 이들에겐 너무 좋은 시스템였다. 음식은 비용을 지불한 수준였으나 왜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그 이유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남작에서 술을 마시는데 친구 정미 부부가 서울, 그것도 을지로에 있다고 하여 권 선생님과 충무로 <태국수>에서 같이 만나기로 했다. 하루 동안 카페 두 곳 음식점 네 곳을 방문하는 기염을 토했다. 태국수에서 쏨땀을 안주 삼아 이야기를 나누다 정미 부부의 제안으로 그들이 머무는 호텔로 가서 정미와 같이 자기로 하고 희관 씨는 방을 하나 더 구했다. 정말 오랜만에(정마 결혼 이후 처음) 정미와 둘이 자는 것이었다. 정미와 여행도 종종 같이 다닐 만큼 가까운 사이다. 누가 물어도 지체 없이 내 베스트 프렌드는 정미하고 할 것이다. 그런데 정미도 정미 남편도 술이 많이 약해졌다. 속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