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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리고, 차려준 밥을 먹은 하루

2022.05.09


아침 준비를  시작했는데 가회동 유겸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언니 집에서 우노 선생님과 같이 밥을 먹자는 제안였다. 아침을 준비 중였지만 나는 생각할 것도 없이 좋다고 답했다. 만약 남편 혼자 식사를 해야 한다면 약간 망설였겠지만 오늘은 마침 임정희 목수님께서 우리 집 이것저것을 손보아 주시겠다고 오셨고, 나는 목수님께 식사를 같이 하자고 제안한 상태였다. 그러니 내가 없어도 남편과 목수님께서 사이좋게 식사를 같이   있는 상황이었다.  

곤드레 밥에 버섯을 듬뿍 넣어 밥을 짓고, 미역국을 끓이고, 엄나무순을 무치고, 두부를 지져서 상을 차렸다. 목수님은 별 반찬 없이 김치만 맛있어도 식사를 잘하신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손님에게 내기엔 약간 미안함이 드는 밥상였다. 그러나 목수님은 밥에 양념간장을 넣고 비벼서 맛있게 드셨다.


나는  사람이 밥을 먹는 것을   유겸 언니 집으로 갔다. 집에서 간장을 조금씩 챙겨 유리병에 담고 이에나에 들러 작은 꽃다발 두 개를 만들어 갔다. 누구 집에 방문할  빈손으로 가는 것은 속옷을 챙겨 입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가능하면 작아도 선물을 챙기는 편이다. 아니나 다를까 우노 선생님은 집에 들어온 선물을 나눔 하신다면 핸드크림과 프로폴리스 치약을 예쁘게 포장해 오셨다. 역시 나누는 것은 아름답다.


유겸 언니는 솥밥을 하고 봄나물 샐러드, 산초장아찌를 얹은 두부 부침, 콩나물 볶음을 해서 밥상을 차려 냈다. 남길 것도 버릴 것도 없는 채식 밥상이 너무 좋았다. 그릇은 또 어찌나 이쁜지. 단정하고 기품 있는 언니의 살림법은 언제 들여다봐도 질리지 않는다. 넘치는 것보다 치장이 빠진 것이 뭐든 더 마음에 남는다.

두 어른과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데 편안함을 느꼈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떤 이야기에도 가시가 없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점심을 먹고 커피와 차까지 먹고 우노 선생님께서 주신 선물까지 챙겨 받고 유겸 언니 집을 나섰다. 역시 누군가 정성을 다해 차려준 밥상을 받는 일은 기쁘고 그 밥상은 내가 차린 것보다 훨씬 맛있다.


오늘은 문재인 대통령 퇴임식이 있는 날이다. 5년 간 품위와 교양을 갖춘 분이 대통령이어서 참 좋았다. 한 나라의 지도자의 역할을 다시금 생각해 본 날이다. 내일부터를 생각하니 숨이 막혔다. 별일 없는 5년이었으면 하지만 내각이 꾸려지는 것을 보니 그냥 눈감고 귀 막고 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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