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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달 april moon Oct 24. 2021

‘이상한’이 품은 환상의 대환장파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럴 | 더스토리 (2020) 


앨리스는 대체 어떻게 다시 밖으로 나올지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채 
토끼를 쫓아 홀연히 토끼 굴로 내려갔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책으로도 만화영화로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늘 읽은 것 같은, 본 것 같은 기억의 조작이 일어났다. 그 유명한 ‘토끼’ 때문인 것 같다. “바쁘다 바빠”를 외치며 회중시계를 보던, 조끼를 입은 토끼 이미지 하나가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전부인 듯한 착각. 맞다, 착각이었다. 책을 읽고 나니 토끼는 수많은 등장인물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영화로 치면 짧은 등장만으로도 각인되는 신스틸러! 문구나 의류에서 흔히 만날 수 있었던 존 테니얼의 토끼 그림은 그만큼 강렬했다. 


책을 읽는 중의 복잡한 심경은 다 읽은 후에도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서 아이에게 물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어땠어?” 

“재밌던데?” 

“비밀의 화원보다 재밌었어?” 

“비밀의 화원은 읽다 말았지만 그것보다 재밌는 것 같아.” 


대체 어떤 부분이 어떻게 재밌었는지 자세히 좀 말해주면 좋으련만. 아이는 그저 재밌었다고만 했다. 그냥 다 재밌었다고. 


-


둑에서 책을 읽는 언니와 함께 있던 앨리스는 심심해 죽을 지경이다. 그러던 중 바로 그 토끼, 시계를 보며 너무 늦겠다고 허둥대는 토끼를 만나는 것이다. 앨리스는 대체 어떻게 다시 밖으로 나올지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채 토끼를 쫓아 홀연히 토끼 굴로 내려갔다. (p.12) 그렇게 진입한 이상한 나라는 갑자기 동물들과 대화가 가능했다. 앨리스의 몸집은 커졌다 작아졌다 했는데, 작아졌을 때는 자신이 흘린 눈물에 빠져 죽을 뻔하기도 했다. 


엘리스의 몸집뿐만 아니라 앨리스를 포함한 등장인물 대부분이 이랬다 저랬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행동과 말을 이어간다. 예를 들어 앨리스와 공작부인의 대화는 이렇다.   


“겨자는 채소에요. 채소처럼 생기지는 않았지만 채소에요.”
“네 말이 맞고 말고. 거기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 같은 사람이 되어라’야. 좀 더 간단히 말하면 ‘너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과 다른 사람일 것이라고 절대 생각하지 마라. 네가 다른 무엇이었거나 다른 무엇이 될 수 있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다른 무엇으로 보였을 테니까’란다.” 
“그 말을 받아 적어야 잘 이해할 수 있겠어요. 말로만 들어서는 도무지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 앨리스가 아주 공손하게 말했다. 
“마음만 먹으면 이것보다 훨씬 길게 말할 수도 있단다.” 공작부인은 흡족한 듯이 말했다. 
“부탁인데 더 길게 말하는 수고는 하지 마세요.” 
“수고는 무슨! 내가 지금까지 한 말을 전부 너에게 선물로 주마.” 
‘정말 성의 없는 선물이야! 그런 걸 생일 선물로 받지 않아서 다행이지 뭐야!’ (p.136~137) 


의식의 흐름대로 조각조각 조각보처럼 이어지는 이 이야기는 대체 제대로 끝날 수 있는 걸까? 하지만 이런 나의 노파심과 달리 아이는 책을 읽는 동안 배꼽을 잡기도 하고, 피식피식 웃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니 어쩐지 감상이 아니라 분석하고 있는 내가 이 책을 읽을 자격을 이미 상실해 버린 건 아닐까 싶었다. 동심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재미가 남아 있지 않다는 확인. 그걸 받아버린 듯 해서 씁쓸한 기분마저 들었다. 


하지만 동심과 관계없이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온전히 즐기기 어려웠던 데는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mine’이 ‘광산’과 ‘내 것’을 뜻하는 중의적 단어라는 것을 주석을 통해 보지 않는다면 문맥 파악이 어렵기 때문이다. 일명 언어유희로 알려진 ‘하이 개그’ 혹은 ‘아재 개그’를 무척 좋아하는데 자연스럽게 문장에 녹아든 유머를 읽어낼 수 없어서 안타까웠다. 뿐만 아니라 영국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노래나 시, 이야기 등을 패러디하는 부분도 역시 원문을 알지 못하니 답답했다. 풍자와 넌센스로 버무려진 이 동화를 온전히 이해하고 싶은 마음은 좀 더 일찍 먹었어야 했을까. 영어 공부를 등한시 한 것이 이럴 때 못내 후회된다. 


속편  『거울 나라의 앨리스』까지 나올 정도로 엄청났던 루이스 캐럴의 히트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그가 죽기 전까지 무려 16만 부가 팔렸다고 한다. 1865년에 세상에 나온 이 책이 150년이 넘도록 꾸준한 인기를 누릴 수 있는 이유는 우리 집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이가 ‘그냥 재밌다’고 느꼈던 부분은 내가 의아했던 바로 그 ‘맥락없음’이었다. 예측할 수 없는 재미, 그것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고전의 반열에 올려놓은 가장 큰 이유가 아닐는지. (물론 앞서 언급한 언어와 문화 이해도가 높다면 제곱으로 더 재밌을 책이고 말이다.) 


작가 정보에서 이름에 대한 에피소드를 보면서 ‘이 작가 꼭 한 번 만나봤음 좋으련만’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쩐지 책보다 훨씬 더 유쾌하고 재밌을 것 같아서 말이다.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의 본명은 찰스 럿위지 도지슨(Charles Ludwidge Dodgson)인데 이를 라틴어(Carolus Lodovicus)로 바꾼 뒤 다시 영어식으로 표기해 필명을 지었다고 한다. 이런 센스를 가진 사람이라면 분명 유쾌한 유머를 갖춘 이야기꾼일 텐데. 하지만 그는 어린 시절부터 말을 더듬었다고 한다. 아! 그래서 글에서만큼은 위대한 입담꾼이 되고 싶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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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제목을 다시금 눈으로 쓰다듬어본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 평범한 듯한 제목이 신의 한 수였구나! 우리가 흔히 접하는 소설이나 영화 속 환상의 세계에도 그럴 듯한 내러티브가 존재하기 마련인데 앨리스가 방문한 이상한 나라는 이유도, 맥락도, 이성도 없는 대환장파티였다. 그래서 아이는 재밌었고 나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던 바로 그 지점. 그것을 설명해줄 ‘이상한’이라는 형용사의 적절한 사용법이 바로 여기 있었던 것이다. ‘이상한’ 나라여서 참 다행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에는 이런 노래가 있는데.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나라. 방망이로 두드리면 무엇이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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