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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달 april moon Oct 24. 2021

책이 키운 아이 ‘마틸다’

『마틸다』| 로알드 달 | 시공주니어


“아빠 저한테 책을 사 주실 수 있겠어요?” 
“책? 책 나부랭이는 뭐에 쓰려고?” 
“읽으려고요, 아빠.” 


2020년 가을. 일본에서 항공우편이 도착했다. 외국에서 편지를 받은 것은 난생 처음이었다. 일 년 동안 매월 시를 읽는 모임에서 만난 그는 열 명 정도의 모든 회원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편지는 『안녕, 반짝이는 나의 친구들』이란 책에서 비롯됐다. 삐삐, 마틸다, 앨리스, 메리 등 ‘스물두 명의 전설적인 소녀들을 만나는 시간’이라는 부제가 달린 그 책에서 회원들에게 어울리는 캐릭터를 대입해 마음을 전달했던 것이다. 


나와 닮았다는 캐릭터는 ‘마틸다’였다. “특별하지 않은 세상에서 특별한 존재로 태어나 살다 가는 마틸다의 이야기에서 사월님이 떠올랐어요.”로 시작하는 편지에는 그가 일본으로 언제 어떻게 가게 되었는지, 무라카미 하루키에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가 담겨 있었다. 편지는 “아무리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오뚝이 인형 같은 비상함을 가지고 절대 포기하지 않는 마틸다를 저는 사월님께 선물해요!”로 마무리 됐다. 그런데 정작 나는 마틸다를 몰랐다. 그래서 당장 책을 구입했다. 


그렇게 『마틸다』를 만났다. 


-


도서관에서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을 찾는 마틸다를 보고 사서는 ‘내가 미친 게 분명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위대한 유산』은 만 4살짜리 아이가 찾을 책은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틸다는 일주일 만에 『위대한 유산』을 독파하고 『오만과 편견』, 『노인과 바다』, 『동물농장』 등을 읽어나갔다. 


웬만한 부모라면 그런 천재성을 띤 아이를 자랑스러워하면서 물심양면으로 지지해줄 것 같은데, 마틸다의 부모는 그 반대였다. 아버지는 사기꾼이었고, 엄마는 빙고게임에 미쳐있었다. 『마틸다』의 제1 빌런은 부모(와 오빠)였다! 무엇이든 궁금하고, 배우고 싶은 욕구로 가득한 마틸다를 건망증 때문에 학교에 늦게 보내다니. 요즘이라면 아동학대로 신고 당하기 딱 좋은 부모에게서 어떻게 마틸다 같은 아이가 나왔을까. 


마틸다의 유년기에 도서관 사서 선생님이 있었다면, 학교에는 하니 선생님이 있었다. 하니 선생님은 마틸다의 천재성을 알아봤다. 하지만 마틸다가 평범한 아이였다 하더라도 선생님은 마틸다를 충분히 존중해줄 만한 어른이었다. 반면 학교에도 악역이 존재했다. 바로 트런치블 교장선생님이었다. 교장이라는 제2 빌런으로 인해 마틸다와 하니 선생님은 깊이 연대하게 된다. 


-


아이는 『마틸다』를 보자마자 흥미롭게 읽어나갔다. 다 읽었다고 하더니 어느 날엔가 또 읽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되어 몇 번을 읽는 거냐고 물으니 다섯 번 정도 읽은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1988년 출간된 『마틸다』는 로알드 달이 죽기 2년 전에 쓴 그의 마지막 작품이다. 로알드 달의 작품에 (우리 집 아이를 포함해) 많은 어린이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이야기 속의 해결사가 바로 어린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틸다의 부모님이나 교장선생님처럼 악당은 대개 어른들이다. 그들은 극악무도하고, 무지하고, 전혀 어른스럽지 못하다. 그런 어른들에 대항하는 아이들이 영웅으로 그려지는 이야기. 어떤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특히 아이가 『마틸다』를 좋아하는 이유는 주인공이 소녀이기 때문일 것이다. 로알드 달의 다른 유명작 『제임스와 슈퍼복숭아』라든지 『찰리와 초콜릿 공장』 같은 경우는 소년이 주인공이고 배경 자체도 비현실적이다. 확실히 사람이 들어갈만 한 커다란 복숭아라든가, 난쟁이가 사는 초콜릿 공장은 세상 어디에도 없으니까. 하지만 『마틸다』는 집과 학교를 오갈 뿐이다. 특별한 점은 마틸다 본인이 초능력을 갖게 된다는 것. 일명 ‘염력’으로 물건을 손대지 않고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아이도 이런 초능력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마틸다는 자신처럼 책을 좋아하니까 더 친근하게 느껴졌겠지. 


마틸다는 책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여행했고, 아주 흥미로운 삶을 사는 놀라운 사람들을 만났다. 마틸다는 조지프 콘래드와 돛단배를 타고 항해를 떠났고, 어니스트 헤밍웨이와는 아프리카로 떠났으며, 러드야드 키플링과는 인도를 탐험했다. 마틸다는 영국 어느 작은 마을에 있는 자신의 작은 방에 앉아서 세계 곳곳을 여행했다. (p.25) 


언젠가 아이가 조지프 콘래드와 어니스트 헤밍웨이, 러드야드 키플링의 작품을 만나게 된다면 마틸다를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로알드 달 작품에는 유독 찰스 디킨스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오니까 디킨스의 작품을 가장 먼저 접하게 될지도. 『크리스마스 캐럴』이라면 가까운 시일 내에 만남이 성사될 듯도 하다. 


-


“엄마, 나는 로알드 달 작가님이 제일 좋아.” 

“어떤 점이?” 

“이야기를 너무 재밌게 쓰는 것 같아. 로알드 달 작가님 책을 더 사줘.” 


아이는 『제임스와 슈퍼복숭아』, 『찰리와 초콜릿 공장』까지도 무척 좋아했다. 앞으로도 『내 친구 꼬마 거인』이나 『아북거, 아북거』 등 로알드 달 작품 모으기에 돌입할 기세다. 사실 이런 작품들은 수차례 영화로 만들어지고, 뮤지컬로 각색되어 무대에 오르는 수작이다. 이미 로알드 달의 원작 영화를 몇 편이나 봤고, 뮤지컬도 보러 가기로 약속했다. 


로알드 달은 비행기 조종사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부상을 당한 뒤 작가가 됐다. 이력만 보자면 『어린 왕자』의 작가 생텍쥐페리와 비슷한데 작품의 결은 많이 다르다. 생텍쥐페리가 드라마 쪽이라면 로알드 달은 블랙 코미디 쪽이니까. 하지만 인간과 삶에 대한 철학이 담겼다는 면에서 둘 모두 좋은 작가로 평가된다. 물론 우리 집 아이는 블랙 코미디가 훨씬 좋은 모양이지만. 


로알드 달의 작품을 논할 때 그림 작가 퀀틴 블레이크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몇 가닥 안 되는 머리카락과 점을 찍은 듯한 눈, 날카로운 콧날 등으로 인물을 표현하는 것이 특징적인 퀀틴 블레이크의 그림은 신비한 마법이 일어나거나 황당한 유머로 가득한 로알드 달의 이야기 세계를 훨씬 구체화시켜준다. 로알드 달의 거의 모든 동화에 그림 작업을 했던 그는 동화 삽화 뿐 아니라 『앵무새 열 마리』, 『내 이름은 자가주』 등의 그림책 작업도 활발히 하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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