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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깎이 Nov 06. 2016

독립은 언제쯤

부모님께 기대는 삶

미혼남녀에게 결혼은 독립이다.

특히 나처럼 자취, 하숙 한 번 안 해 본 사람한테 결혼은 그래서 더 설레는 일이기도 하다.

20대 혹은 30대까지 부모님의 집에서 부모님의 잔소리를 듣고 살아야 했기 때문에 내 집에서 내 맘대로 하며 살 수 있다는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

물론 밀려드는 집안일과 어설픈 집밥을 먹으면 옛집이 저절로 그리워지긴 하지만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자유란 게 그렇게 좋다.


애를 낳고 나면 사정이 달라진다.

초보 부부에서 초보 부모가 된 남녀는 당황한다.

아기를 돌보는 일은 매 순간이 힘들고 고달프고, 역할 분담을 하느라 배우자와 치열하게 싸우게 되고, 또 둘 중 한 사람은 당분간 일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므로 금전 사정도 나빠진다.

당분간 수입이 줄고 육체적으로 힘들다고 하더라도 엄마가 출산휴가 3개월을 쓰고 둘 중 한 사람이 육아휴직 1년(아직 대부분은 여자가 쓰지만)을 쓸 수 있다면, 그래서 다시 직장에 복귀할 수 있다면 우리나라에서 애를 키우기엔 정말 좋은 조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 같은 경우에는 육아휴직으로 3개월을 받았다.

출산 휴가를 예정일보다 1개월 일찍 들어갔으므로 계산상 아이를 낳고 5개월 만에 복귀해야 했다.

작은 회사고 물론 1년이 어려울 건 알았지만 막상 너무하단 생각이 안 든 건 아니었다. 한참 고민하다가 이참에 공부나 하자 싶어서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에 들어갔다. 공부와 육아를 병행할 생각으로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모님의 도움이 얼마나 절실한지.

육아로 지출되는 돈에 난데없이 등록금이 지출되고 수입은 반토막 난 상태다. 게다가 일주일에 15시간 이상, 수업을 들으러 학교에 가있는 시간 동안 애를 봐줄 사람이 필요해진다. 친정엄마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다. 이런저런 사정과 조건에 의해 나의 엄마가 나의 딸을 돌보게 됐다. 용돈을 드려도 모자랄 판에 시댁에선 딸아이 맛있는 거 사주라 하는 등 이런저런 명목으로 용돈을 쥐어 주신다. 양가에서 물심양면 딸의 육아와 나의 공부를 지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복이 없다. 육아에 공부까지 부모님들 덕에 하고 싶은 거 하고, 아이까지 키워가며 살고 있으니 어디 가서 힘들단 말은 못 한다. 그런데 그만큼 독립은 요원하다. 심리적, 물리적으로 여전히 부모님께 기대고 있는 것이다. 집만 따로 살고 있는 격이다.

웬 투정이냐는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되면 육아를 비롯해 기타 가정일에 대해서 부모님께 어느 정도 경계를 허물 수밖에 없다. 우리의 사정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므로, 또 부모 맘이란 게 자식 잘되라는 마음으로 잔소리를 끊임없이 하게 되므로.

따라서 양가와 우리 집을 가르던 선은 실선이었는데, 아이를 낳고 난 후는 점선이 되었다.


퇴직 후 매일 아이를 보러 우리 집으로 출근하는 엄마와는 거의 다시 한 집에 사는 느낌이다. 어디선가 자취의 장단점을 보았는데, 장점은 엄마가 없다는 것이고 단점은 엄마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의 경우 정확히 반대다. 장점은 엄마가 있다는 것이고 단점은 엄마가 있다는 것이다. 학교 가는 동안 아이를 봐주시는 엄마에게 한 없이 미안하고 감사하지만, 동시에 내 집이 내 집이 아니게 된다. 육아도 가사도 반쯤 엄마 것이 된다. 내가 자초한 일임에도, 그리고 너무나 행복한 조건의 육아임에도 독립 그게 뭐라고 마음이 많이 불편하다. 


서른이 넘어서도 부모님께 의존하는 삶은 부모님께 죄송하고, 스스로는 불만족스럽다.

선택의 여지없이 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부모님께 육아를 맡긴다. 직장을 잃을 순 없으므로 회사가 나오랄 때 빨리 회사로 복귀해야 하고, 그렇다고 아직 걷지도 못하고 말도 못 하는 애를 어린이집에 떨렁 맡기려니 마음이 편치 않아 결국 부모님께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노후가 고달프고, 우리 어린 부모들은 그들대로 심신이 지친다. 여기저기 빚지는 마음이 어떻게 편하겠는가.


나는 육아만 하면서 집에 있기는 싫다는 내 욕심대로 엄마와 학생을 동시에 하고 있고 그래서 친정 엄마의 부담을 좀 덜어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공부가 좀 힘들어지면서 낮시간의 육아에서 손을 거의 뗀 상태이다. 언제쯤 제대로 돈도 벌고 아이 봐줄 사람도 구하고(혹은 어린이집에 보내고)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아도 될지 모르겠다. 


언제쯤 내 일상을 나의 힘으로만 꾸릴지 모르겠다. 독립은 요원하고 부모님께 빚은 자꾸만 쌓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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