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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OO Feb 12. 2023

HRer와 Operator

IMF에 봇물이 터지고 이후 몇 년 간 구조조정이 꽤 있었다. 쪼랩 시절 이런 프로젝트에 끼어 어깨너머로 일부 주워듣다 이후 직간접으로 이 일을 본격적으로 하며 본 공통점들이 있다. 재무나 전략 측면에서는 보고들은 바야 있지만 직접 참여도 아니고 속사정까지 아는 척하기 어렵다. 조직운영과 관리 측면에서만 보자면 HR이 우려를 하면서도 위에서 결정한 사안에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않았다(못했다?)였다.


조직의 비전과 전략에 맞는 조직문화 구축이란 거창한 롤은 일단 접어 두고(현실은 비전체계도를 만들고 계획을 세우고 조직문화니 건강도니 하는 진단을 돌리고 그걸 리포팅한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단 파생 계획을 세우고 각종 워크숍과 교육을 하는 등으로 진행 후 다시 그 결과를 리포팅 할 즈음엔 다시 다음 계획과 진단의 무한 반복 사이클이 돌아간다) 필요한 사람을 채용하고 평가하고 보상하고 내보내는 것이 주요 인사의 과정.


그럼 이 일련의 과정을 수행해 내면 되는 거 아니냐.


어떤 일을 할 때엔 문제를 정의하고 현상분석, 목표-현실 간 갭을 찾은 후 해결에 필요한 걸 찾아 협의를 거쳐 수행하는 거. 그런데 보통은 무리다 싶어도, 아니다 싶어도 “알겠습니다”로 지시에 맞춰 역으로 해야 할 일을 합리화시키는 추진 배경을 만들어 실행한다.


전통적으로 인사는 (기존 제조 중심의 대기업에서는 특히나) 권한 있고 핵심부서처럼 인식되는데 채용하고 평가를 진행하며 징계, 해고도 하는 부서여서가 아닐까. 하지만 그 과정에 인사의 선제안, 주도적 의사결정과 설득이 개입된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실행으로 노출되는 모습이 마치 모든 걸 판단하고 결정하는 권력부서로 포장시킨 건 아닌가.


적어도 내가 보아온 상황 속에서 인사가 위기 혹은 무리수를 감지 못한 적은 거의 없었다. 진작부터 더 채용을 하면 안 되는데라 하면서도 시키니 뽑고 저걸 잘라야 하는데 싶은 리더를 인지하면서도 면직시키지 못했으며 그 리더의 지위가 높을수록 수없이 들려오는 문제들을 외면했다. 그의 위치니, 회사망신이니, 현재 회사 내 권력이니, CEO의 오른팔이니 등등의 이유로.


HR의 미래에 대해 인사팀 자체가 사라질 거라느니 비즈니스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느니 DT화니 여러 말이 있다. (아무 권위 없는 일개 직장인이나) 나는 인사가 오퍼레이터로 진화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인사팀장의 다음 포지션은 CHRO가 아니라 COO여야 한다고. 경력이 오를 수록 전문가가 아니라 문제해결자가 되어 전문성이 목표가 아니라 조직기여자가 목표가 되어야 한다 생각한다.


이론적으로는 CEO 대체가 언제든 가능한 석세서로 정의되나 실제 회사별로 COO의 역할은 천차만별이다. 애초에 대단히 정교하게 역할 정의가 되고 회사 구조를 분석해 포지션을 준다기보다는 채용 시 CSO냐 COO냐 하는 경우도 많다. 중량급을 채용하며 나중엔 CSO, COO, CBO, CFO, CMO 등으로 포지션을 붙여 가나 이 중 앞 3개는 중복되는 경우도 많다. 사업적, 재무적 의사결정을 디테일하게 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어차피 한 사람이 모든 걸 잘할 수도 없고 다 관할해서도 안 된다. 그럼 오퍼레이터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조직의 현황을 정확히 인지하고 문제를 발견해 정의해 내는 것, 조직이 하고자 하는 방향에 뭐가 필요하고 뭐가 부족한지를 파악해 내는 것, 조직의 리소스를 분석하고 어디에 있는 리소스의 선택과 집중을 시키고 어디에 새롭게 더 투입할지, 어떤 건 완급을 조절하게 할지를 판단해 치열하게 논의하고 조정하는 것, 기능과 기능을 연결해 시너지를 내게 하는 것. 이때 리소스의 정의는 인력현황(인력의 스킬, 능력, 성과 및 포텐셜 수준), 회사 자금 현황, 투자 계획, 조직별 리더십과 기능 등이다. 오퍼레이터는 전략과 리소스 파악을 기반으로 제대로 성과를 낼 수 있게 연결하고 채워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럼 왜 HR이 이 포지션에 있어야 하는가.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아니고, 기업이 커질수록 사업가이자 전략가가 이 포지션에 있는 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작은 조직, 한창 성장해야 하는 조직에서는 유효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단계의 조직은 리소스 자체가 부족한 경우가 태반이다. 하지만 생존과 급격한 성장이 주요 관심사이다 보면 지나치게 재무, 사업에 편중되곤 한다. 조직의 보유 리소스와 확보 가능한 리소스를 고려 않고 무리하게 추진만 하는 경우가 많다. 리소스를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쓰기 위해 HR 베이스의 사람이 유리할 수도 있다가 좀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그리고 작은 조직일 수록 CEO가 본인 강점에 집중하고 내부 관리에 신경쓰지 않아도 되게끔 역할을 수행해 주는 게 가치일 수도.


물론 HR의 여러 한계들은 있다. 조직문화니 채용 브랜딩이니 하면서 자칫 HR놀이에 그칠 수 있는 업무에 머무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전략적인 비즈니스 파트너를 강조한 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HRer가 수명업무의 실행자나 그들만의 놀이에 머물러 있다. 때문에 당장 HR이 오퍼레이터로 배치되는 것엔 동의하진 않는다. 다만 HRer들이 뭘 지향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인사업무를 잘하는 게 전문가가 아니고, 작은 조직에서의 HR은 인사쟁이가 아닌 조직의 문제 해결자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 어떤 조직이든 핵심 리소스는 자금과 사람이다. 비용 관점에서 사람을 보는 것과 자금을 고려해 인력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의 관점은 많은 차이가 있다. 때문에 HR이 오퍼레이터로 진화하는 게 필요하다. CFO 밑에 인사가 있는 조직의 한계가 뭔지 인사담당자들이라면 잘 알지 않나.


이상적이고 좋은 얘길 하는 게 아니라 (예를 들면 실체 없이 구성원이 행복한 회사 같은) 지극히 냉철하게 조직을 분석하고 인력을 운용하는 전략가가 HRer의 미래가 되어야 한다고 개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고 우리 팀원들에게도 이 피드백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HR이 COO에 자리에 있는 경우 포지션명만 그렇지 그냥 인사업무를 좀 더 권한을 가지고 하는 것에 불과할 때가 많다. 인사쟁이로서의 인사업무에 몰입할 때 그렇다. 완전히 동떨어질 수 없어도 '문제'에 집중하느냐 '인사'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전자는 '분석과 리소스의 연결, 시너지'가 중요해지고 후자는 빨리 잘 뽑는 것과 제도 정교화에 집중된다.


HRer들은 학습과 성장에 진심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스터디나 독서, 교육 참여도 열정적이다.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성취감, 기여도, 인정을 진정으로 찾고 싶다면 회사를 잘 아는 게 먼저다. 전략이 뭔지, 현황이 어떤지, 지금 당장 필요한 게 뭔지, 문제가 뭔지, JD 작성을 위한 직무 파악이 아니라 어떤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HRer들과의 네트워킹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우리 CEO, 리더, 구성원과 더 많이 이야기하고 파악해 가는 것이다.


조직운영이라는 건 너무 포괄적인 말이지만 기업의 성장이 지속가능하냐의 관건 중 하나는 조직구조와 운영의 충실성이 아닐까 한다. 개별화와 연결 모두를 균형있게 다루며 탄탄히 다져가는 일이 중요하고 이걸 HR이 오퍼레이터로 진화할 때 상당히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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