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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OO Apr 09. 2023

그럼에도 해야 하는 일 & 하지 않아도 되는 일

스타트업씬으로 나온 지 다음 달이면 3년이다. 17년 직장생활 중 고작 3년인데 몸이 적응하는 만큼이나 생각도 맘도 간사해 뭐 얼마나 일했다고 변한 게 많음에 가끔씩 재밌다.


이전 회사에서 내가 담당한 조직 중 가장 작은 규모가 CTO에 있을 당시 560명 정도였다. 나중에 조직개편을 하면서 400명 정도로 줄었지만 암튼 그 정도. CTO HR 팀원의 수가 팀장 포함 8명이었다. 이 중 사무지원과 상담실장을 제외하면 6명. 새벽 출근에 야근이 일상이긴 했지만 어쨌든 그 일을 다 했고 심지어 나는 CTO 인원 전수 원온원을 했고 거의 모든 직원의 프로필이나 이름을 외우고 있었다. 팀원들이 다 그랬기에 이게 당연했고.


스타트업에 나온 후 인원이 얼마냐 물었을 때 100명이라고 하면 '엄청' 많네요라고 하는 말을 많이 듣는다. 40~50명이 넘어가면 조직 관리가 안 된다는 말도 너무 많이 듣고. 대체 왜 안 된다는 거지가 끊임없이 물음표였는데 이젠 알겠다. 절대적인 인원수가 많아서가 아니라 조직관리 역량이 축적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렵다는 걸.


내가 정작 이해하기 어려운 건 영업이익은 커녕 매출도 미미한 조직에 인원이 수 십 명에서 200명까지 가는 경우다. 나는 단연코 이 이유가 조직구조나 시스템, 인력 최적화를 하지 못해 해야 하는 일을 인력을 넣어 메꾸기 때문이라 말한다. 경험상 인원이 한 명 더 투입되었을 때 일이 x2가 되는 일은 거의 없다. 대부분은 1/n이 되거나 1.5배도 간당간당하다. 구조와 인력 최적화를 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일이 일을 만들고, 사람이 일을 나누는 데에 그친다. 이런저런 비판과 한계가 있다고는 하나 대기업, 중견, 좀 체계가 있다고 하는 알짜 중소기업들의 인원이나 인건비가 스타트업보다 훨씬 적은 건 그 나름의 예산 하에서 돌아가는 구조가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근간에는 벌어서 남는 돈으로 운영한다는 전제가 강력히 작동한다.


스타트업에서 이게 어려운 건 짧은 업력과 생존 상황에서 조직문화나 채용 등의 중요성은 설파하나 정작 경험은 적고 구조화할 리더급이 탄탄치 않은 상황이기 때문. 이걸 하겠다고 임원이나 팀장급을 채용하는데 그럼 이 리더들이 일이 되려면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팀을 확 늘려버린다. 그래서 해야 하는 일을 엮어 최적화하는 단계를 스킵하고 to do list처럼 일을 세워 거기에 사람을 다 넣어버리게 되는 거.


스타트업은 원래 그런 것, 빠른 스케일업이 가장 중요한 것, 일단 의도된 적자란 말을 많이 듣지만 '원래' 이렇게 인력을 운용하면 어려워지는 법이다. 사람 뽑는 걸 어려워하는 것과 무서워하지 않는 건 전혀 다른 얘기다. 인력 늘리는 건 필요해 늘리더라도 두려워해야 한다. 또한 뽑는 것만큼 중요한 건 잘 빼는 거다. 어차피 아무리 핵심가치 기반으로 채용을 빡시게 한다고 한 들 늘 채용 실패는 있기 마련이고 변화에 따라 헤어져야 하는 이는 늘 있기 마련. 때문에 되려 잘 빼고 헤어지는 게 정말 중요하다.


작은 회사의 소수 인원이기에 사람이 너무 중요하다며 컬처덱을 만들고 핵심가치니 조직문화를 외치지만 초기엔 그냥 지금은 뭘 해야 하고 그러려면 이렇게 일해야 한다는 '일하는 원칙'을 손에 잡히게 하나씩 만들어 가는 게 더 낫다. 우리는 수평적이고 치열하게 토론하고 소통해요가 아니라 "일이 되게 하려면 해야 하는 말을 참지 말고 해!"라고 피드백하는 게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 참고로 나는 "남을 배려해서, 내가 욕먹을까 봐, 불편해지기 싫어서, 내가 하고 말지" 하느라 참았다는 이들에게 일하는 과정에서 해야 할 말을 않는 건 그냥 일을 안 하는 것이다라고 피드백한다.


작은 회사, 불확실한 미래, 열정과 몰입으로 빠르게 집중해야 한다는 스타트업이라 '대기업'처럼 체계니 프로세스니 다 따지면 물 덜 빠진 냥 폄하하는 경우도 많은데 유연하지 못하게 뻔한 소리 하자는 게 아니다. 스타트업이라서, 중소기업이라서 그러면 안 된다로 합리화하는 것들 중 스타트업이고 중소기업이어도 해야 할 건 해야 한다는 얘기. 여기에서 해야 하는 일 중 하나가 조직구조와 인력최적화에 관한 고민과 실행이다. 이게 병행되어야 사람이 가장 중요하단 스타트업에서 사람이 소모되지 않는다. 이 고민의 시작은 진짜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이냐, 안 해도 되는 일이 무엇이냐이다.


우리는 투명한 의사결정을 하고 정보를 공개해요가 아니라 실제 지금 이렇게 되고 있고, 이렇게 할 계획인데 이런 문제가 있어. 당신은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지 역시 보이면 좋겠어 같은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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