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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OO Jul 06. 2023

무제

일은 잘하지만 큰 잘못을 한 직원과 면담했던 장면 중 하나. 


다양한 상황이 맞물려 하루를 꼬박 고민했더랬다. 뭐가 어떻든 잘못을 덮을 수는 없었기에. 그래서 고민하고 이야기하겠다고 한 후 시작한 면담.


1. 이해하기 어렵고 실망스럽다. 그러나 입사부터 지금까지 일하는 OOO는 깔 게 없다. 막말로 어딜 가서 범죄를 저지른 들 XXX 담당자 OOO에 대한 평가는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2. 기회를 주어 고맙다고 하지만 나뿐만 아니라 당신을 함께 본 다른 면접관도, 함께 일하는 당신의 선배도 당신이 괜찮기에 함께 하려 했던 거고 앞으로도 그러고 싶은 거다. 여러 사람의 보는 눈이 동일하다는 것은 본인이 괜찮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간의 맘처럼 풀리지 않은 인생에 지나치게 주눅 들고 위축되지 않기 바란다.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다 당신은.


3. 본인은 내게 고맙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당신이 이렇게 일을 잘해주는 것이 더 고맙다. 혹여나 하는 내 판단에 대한 불안과 책임감을 덜어준 점에서 진심으로 내가 더 감사하다. 


4. 이런 당신이기에 더 잘할 수 있고 앞으로 더 잘할 거라 믿는다. 때문에 이번 일이 너무나 안타깝다. 업무적인 것도 아니고, 말도 안 되는 일들로 당신의 성장을 발목 잡으면 안 된다.        


5. 그럼에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애초에 넘어갈 일이 아닐뿐더러 함께 한다 해도 조직이란 어떤 선례를 남기느냐와 명분이 중요하다. 그래서 중한 책임 묻기는 불가피하다. 회사는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도망가고 싶겠지만 벌 달게 받고 정신 똑바로 차려 마음 다잡기를 권한다. 한창 커리어를 쌓아가야 하는 시기에 또 한 번의 좌절로 마무리 말고 당차게 부딪히기 바란다. 당신과 당신의 인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https://youtube.com/shorts/qXD00iB7NFE?feature=share


극단의 말을 듣고 혼이 크게 날 거라 예상하고 들어왔다는 그는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불과 몇 년 전의 나였다면 호되게 질책했을 거고 한쪽에 치우쳐 불같이 화를 냈을 거다. 잘한 건 잘한 거고 잘못된 건 잘못된 건데 대체 왜 그러냐 했을 거다. 난 대체로 까칠하고 욕먹어도 할 말을 거침없이 하는 편이다. 하지만 메시지를 희석시키지 않으면서도 전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고, 때로는 논리보다 상대에 대한 인간적 진심과 애정이 필요할 때가 있다. 벌어진 상황만큼 원칙을 지키면서도 사람 그 자체에 집중해야 할 때도 있다. 그렇지 않으면 자질을 가진 이들의 가능성을 무시하고 누군가의 인생 자체를 흔들게 될 수도 있다. 마흔을 훌쩍 넘기며 이전보다 성숙해졌다면 못한 건 못한 거고 잘하는 건 잘하는 거로 관점이 바뀐 거라 하겠다. 이게 내가 보고 배운 나의 좋은 리더들의 모습이었고 나도 그 수혜를 받았다. 그들의 진심과 애정을. 


좋은 리더와 일한다는 건 정말 소중하고 감사해야 하는 일이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 배운 모습 이상의 것을 기대할 수는 있어도 실천해 내긴 어렵다. 그래서 과거와 현재에 불만족하면서도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일이 매우 어렵고. 때문에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게 힘들면 불만족스러운 과거와 현재임에도 그 안에서 편안했던 걸 합리화하며 회귀하곤 한다. 그리고 어느 쪽에 치우치든 상황을 객관화하고 감정을 분리하기 어렵다. 나는 여전히 이 모든 게 자연스러운 수준은 못되고 단지 끓어오르는 화나 짜증을 참을 때가 훨씬 많지만.. 새삼 보고 배울 게 많은 모습으로 곁에서 끌어준 옛 리더들에게 감사함을 느끼는 날이다.     


사람이 커진다는 건 조직이 커지는 것보다 백 배는 어려운 것 같다. 사람이 커진다는 건, 성숙해진다는 건 격을 담아가는 과정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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