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모아서 쓰임새를 보겠다는?
다양하게 겪은 조직적 상황들 중에서도 사진처럼 남는 장면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문득 생각나 끄적여본다.
사업 경쟁력에 대한 의구심, 실제 닥친 위기,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
이쯤 되면 크게 두 갈래로 나뉘곤 했다.
정리하든가, 쥐어짜든가.
보통은 후자에 시간과 노력을 꽤나 들이다 결국 정리로 귀결되곤 했는데 여기서 '쥐어짠다'란 돌파구에 대한 묘안 없이 어떻게 이 상황을 타개할지 지리한 회의, 보고가 반복된다. 극히 드물게 타개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말 그대로 극히 드문 일.
굴지의 대기업 계열사였다가 중소기업에 매각된 사업부가 있다. 딱히 국내에선 해당 제품과 기술력으로 선택지가 좁은 사업, 그나마 대기업 중엔 우리 회사가 유일했다. 입사 당시 최고 기업이었기에 실력 있는 엔지니어들이 모여 있었고 매각 후 불만이 많으니 흔들기 쉬운 상황.
'쥐어짜는' 상황이었던 당시, 자사에서는 기술력이 문제라며 그 인력들을 흡수하고자 채용을 강행했다. 이미 사업부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가운데에서.
당시 면접관 중 하나였던 나도 그들에게 어떤 메리트가 있는지, 무엇을 이곳에서 취할 수 있을지를 설명하며 열심히 설득했다. 면접 내내 "뽑아도 되나.."를 고민하면서도.
사실 기술력보단 중국의 물량공세와 넘기 어려운 가격경쟁력이, 더 나아가 시장 자체의 매력도가 낮음을 다 알고 있던 터 아닌가.
당시 인상 깊었던 그들의 이야기 중 일부.
"입사할 때만 해도 XX 다니는 사위라고 자랑하시던 장모님이 부끄러워하신다", "연애나 결혼해야 해야 하는데 그래서 대기업에 오고 싶다", "XX맨에서 하루아침에 중소기업 직원이 되었다"..
세대차이인가 싶은 정도로 면접장에서 솔직한 그들에게 당황하기도 했지만 당시 우리에게 필요한 기술력이 있었고, 다른 부분에서도 괜찮았기에 그들은 모두 채용되었다.
그러고 반년 후, 해당 사업부는 결국 정리되었다.
다른 중소기업에 매각 논의가 오고 가고 사업부 인력 재배치가 진행되며 그들은 또 다른 대기업을 찾아 퇴사했다.
면접에서 만났던 그들을 이동면담이나 퇴직면담에서 만나며 그 민망함과 부끄러움 그리고 미안함은 이루 말하기 어려웠다. 개중엔 비아냥을, 또 다른 이는 원망을 한가득 내게 쏟아내기도.
결과적으로 조직은, 이래도 되나 확신 없던 나 역시도 그들에게 사기 친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사람을 통해 조직문화를 만들고 때론 사람으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좋은 인재'를 영입하려 다들 노력한다.
하지만 '인재 수집'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실패하더라도 이렇게 해보자란 명확한 비전과 전략을 두고, 그에 대한 책임은 조직이, 그 과정에서 영입된 인재에게 조바심 내지 않고 우선은 신뢰를 주어 소프트랜딩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바탕은 깔아주어야 하지 않나 싶다.
물론 전문가라더니 별 거 없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애초에 조직의 깜냥이 부족했던 것을 바로 전력화 되지 않는다고, 전문가라더니 별 거 없네라며 '까대기'부터 하고 있진 않은지.
사람을 적재적소에 쓰는 것도 조직의 역량이고 실력이다.
쓰임새에 따라 적합한 사람을 찾는 게 기본.
사람을 놓고 쓰임새를 찾는 건
그의 역량과 성향과 조직의 리더십이 탁월할 때,
무엇보다 여유가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좋은 인재를 보면 '일단' 쟁여두고 싶은 거, 당연하면서도 가장 경계해야 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
'좋은 인재'에 모든 관심이 집중된 요즘, 경영진과 인사 모두가 유의해야 할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