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하고 책에 나오는 어떻게 일해야 한다는 것들대로 일하는데도 리더십 평판이 최악인 분들이 있다. 대부분은 본인도 전에 본인이 어땠다 모르진 않지만 다는 모른다. 동료들의 솔직한 평판이 어느 정도인지. 왜냐하면 대놓고 다 말하진 않으니까.
예전에 후배들이 내게 “가혹하다, 상처받았다” 익명으로 썼던 리더십 평가도 그나마 그들이 할 수 있는 완곡한 표현이었을 거다. 시간이 흐른 후 훨씬 편해진 후에야 그때 정말 기분 나빴다 하지만 재수 없었어란 말까진 안 했듯.
그런 그들도 이런 피드백은 준다.
일은 잘하는데, 배우는 건 많은 데라고. 이 말을 동력으로 먹고사는 이들에겐 때론 쥐약 같을 수도.
이런 부류는 맞는 말을 한다. 들었을 때 딱히 깔 게 없는 당연한 말을 심지어 논리적으로까지 한다. 그래서 그 말을 뭐라 할 수도 없다. 이게 더 열받는 포인트다. 일이나 말 가지고 뭐라 할 순 없는데 비호감인 거.
이런 상황은 보통 이들의 계획과 언행으로 변화해야 하고 뼈 맞는 사람들의 감정적 대응일 때가 많다. 이건 불가피하기도 하고.
하지만 수준 낮음을 한심해하고 질타하며 다 바꾸라 하든, 정말 일이 잘 되게 하려는 마음이 진심이고 같이 잘 되고 싶은 마음이든 변화의 대상자들에겐 어쨌든 지금은 부족하다, 잘 되려 하는 방향과 상에 대비하면 모자라다는 메시지라는 건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일 잘하는데 비호감인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변화는 늘 어렵고 불편하다. 내가 불편한 말을 하니 싫은 게 당연하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을 한다. 이 역시 맞는 말이니 뭐라 하기 어렵다.
* 김창옥 강사가 사사건건 지적하고 잔소리 많은 아내나 엄마들의 공통점 중 하나가 이런 말을 한다는 거였다. “그래서 내가 틀린 말 해? 난 틀린 말은 안 해! 난 할 말은 하는 사람이야,”. (세상에.. 나 사찰당한 줄?)
일 잘러에 추진력도 좋은데 칼잡이까지 하는 사람들의 재수 없어지는 포인트다. 딱 잡아 꼬집긴 어려워도 싫은 건 싫은 거, 비판을 하고 싶은데 말하기 어려워지게 만들기 때문.
사람이 못나지거나 재수 없어지는 데엔 꼭 폭언을 퍼붓고 야비해져야 하는 건 아니다. 아무리 성심성의를 다한다 해서 폭력적이지 않은 것도 아니고. 난 열려 있다, 다른 사람의 말도 다 일리가 있고 내가 정답은 아니라 말하지만 글쎄. 나만 해도 정답이라 생각 않는 게 진심이지만 누군가를 어디선가 불편하게 만들고 나와 다른 의견을 인정한다 해서 마음이 전혀 안 쓰이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나 같은 사람들을 아주 많이 본다.
입장이 분명한 글을 쓰다 보면 다양한 메시지를 받는데 보통은 내게 설명을 한다. 의견의 다름보다 본인의 의도를 설명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건 본인이 인식하든 못하든 상대가 내 의도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단 전제, 나와 다른 의견을 불편해하는 마음이 깔려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거. 강한 주장, 일방적 주입이 아니라 해도 그건 '설득'과 다름없다.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분들은 자신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나는 이런데 너는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셨냐, 이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냔 식으로 호기심을 가지고 질문을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내가 너무 미성숙했다, 내가 생각해도 별로였을 거다 하는 말도 그렇다. 지금은 아닌 것처럼? 이전보단 훨씬 나아졌지만 여전할 가능성이 훨씬 높을 거다. 그러니 그땐 그랬다, 지금은 좀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내가 어떤지 궁금해하는 게 더 중요할 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잡다단한 나와 타인의 마음까지야 어쩔까 싶지만.
겸손이란 내가 정말 별게 아니구나가 아니라 내 마음 근저엔 이런 욕망과 불안이 있구나를 직시해 인정하는 게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