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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니 저러니 해도 다리품의 가치

by SSOO

10년 전 리더십 담당자로 일할 때 도입 했던 게 '맞춤형 리더십 개발 제안'이었다. LG의 경우 LG Way 리더십 평가라는 걸 매년 한다. 문항도 많고, 공은 꽤 들였지만 그래서 이게 리더십 개발에 도움을 주었냐 하면 그렇지 못했다. HR에서 하는 대부분의 노력이 그러하듯. 어쨌든 리포트까지가 그룹 공통. 여기서 끝날 수도 있고 평가 기반 다양한 인터벤션이나 리더 임면 반영 등으로 활용이나 후속 작업은 계열사 별 차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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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리더십 평가에 있어 내가 가장 문제라고 생각한 것 중 하나는 리포팅과 피드백이었다.


전사/부문 내 고-저 범위와 평균 대비 각 항목별 나의 점수를 보여 주는 게 리포트 기본 형식. 이걸 당사자에게 리포트로 발송한다는 거고, 상위 임원도 그 리포트를 받는다.


불행히도 그 직속 임원이란 사람들도 세련되고 성숙한 리더십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 많고, 리더십 중요하다 말은 해도 코칭은커녕 피드백도 제대로 못할 때가 부지기수. HR에서도 레드 시그널 뜨는 사람을 어떻게 할 거냐에 집중했다.


이때 시도했던 게 '맞춤형 리더십 개발 피드백'이다. 리포트를 기반으로 각 조직의 인적 구성, 리더의 스타일, 조직 목표와 상황, 조직 분위기, 리더의 커리어 경로 등을 모두 파일링했다. 같은 리더라도 어떤 환경에서 어떤 멤버들과 조합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평가될 수 있기 때문.


이 사람의 리더십에서 가장 핵심적인 특성, 그 원인, 드러나는 모습, 전부가 아닌 이번엔 이것만큼은 이렇게라는 개발 제안을 두 장 짜리 개발 제안서로 만들었다. 너무 구체적이고 상세한 리포트는 때론 독이 된다. 메시지가 너무 많으면 질려 버리고 초점을 잃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종 제안은 최대한 간략하게 핵심만 남기는 작업을 했다.


그런 후 이걸 직속 임원과 리뷰한다.


먼저 설명한 후 임원이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는 부분을 듣고(HR이 모르는 내부 속사정 등) 조율한다. 그리고 이 제안서를 기반으로 임원이 코멘트를 가감한다. 필요하면 장황한 워딩을 명료하게 정리해 드리기도 하고. 세부 피드백은 임원에게 맞추는 것이다. 기본적인 초안 덕에 임원의 피드백이 정제되고, 임원 자신의 언어로 팀장들에게 리더십 코칭을 할 수 있게 한 것.


숫자와 키워드만 던져진 리포트는 피평가자에게 자기 성찰이 아니라 거부감만 준다. 트레이닝 안 된 임원은 레드가 뜬 팀장을 챌린지 하고 결과가 좋은 리더는 스킵하며 코칭의 사각지대로 방치된다. 그린 시그널이라 해도 실제로는 문제 있는 리더도 있음에도. 단순히 평가 항목으론 사이사이 맥락 속 사정이 반영되기 어렵다. 그래서 리포팅을 임원의 육성 코칭과 함께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이 과정에서 임원의 리더십 육성도 되는 기회라 생각했고.


본사만 해도 30명 정도의 실팀장이 있었고, 임원만도 7~9명 정도 될 때였으니 임원과 1:1로 이 과정을 진행하는 것만도 공수 꽤나 드는 일이었다.


이 정도 했으니 전보다 나았냐, 여기서 마치면 별 의미가 없다. 임원이 논의한 대로 안 하거나, 바쁘다고 피드백 자체도 안 하는 게 비일비재해서다. 이런 건 시간이 너무 지나 버리면 안 하니만 못하다. 그래서 임원의 직속 리더 1:1 코칭 기간을 한 달 내로 한정하고 임원 면담이 끝나면 비서와 바로 산하 리더들의 1:1 코칭 일정부터 박아 버렸다. 그리고 그 스케줄대로 진행이 되었는지 계속 트래킹 했고.


그럼 이제 정말 끝났을까?


기한 말미로 싹 미루는 임원도 있다. 그럼 닥쳐서 날림으로 진행될 때가 많다. 그래서 최대한 빠르게 진행되도록 다시 설득하고, 조정했다. 부득이하게 임원 일정이 도저히 안 되어 텀이 생기면 리마인드 하고, 임원에게 다시 설명하기도 했다. 뻔한 얘기 같아도 막상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기 때문. 그리고 말미에 몰아넣는 일정을 보면 다시 조율해 최대한 분산시켰다.


그럼 정말 끝났나?


그럴 리가. 실제 진행 했는지 확인했고, 리더들에게 임원의 피드백과 코칭 내용이 어땠는지 확인했다. 그다음 뭐가 아쉬웠고 좋았는지 정리하고 임원에게 피드백드렸다. 물론 직속 리더들에 대한 개발 제안서를 들고 논의할 때 임원의 평소 리더십, 분위기, 말투나 성향도 감안해 임원이 실수할 수 있는 부분, 잘하는 부분을 피드백하며 그래서 이렇게 하시면 좋겠다까지 포함했다.


이제 진짜 끝났나?


아니! 그다음은 레드인 팀장과 1:1 면담을 했고, 고민이 뭔지, 조직 내 이슈가 있는지, 뭘 도와주면 되는지, 혹은 지원이 뭐가 필요한지 등을 논의했다. 필요하면 워크숍도 진행해 주고, 심지어 A팀과 B팀 갈등이 극심할 때 두 팀 회식 자리도 주선해 가서 진행하고 풀어주고 한 적도 있다.


++++++++++++++


그래서 되게 잘했다, 나 잘났다냐. 물론 아니다.


저렇게까지 해서 리더십이 확 달라졌느냐. 더더더 아니다.


저렇게까지 해도 어려운 게 변화란 거다.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운영할 때 잘 만드는 노력 한다. 그러나 프로그램의 정교함과 퀄리티에 집중하기 쉽다. 보통은 프로그램 이후의 팔로업이 얼마나 촘촘하고 집요한가가 몇 배 더 중요하다.


아무리 감동받고 반성하고 결심해도, 강의장 밖으로 나오면 이 모든 게 너무 쉽게 휘발된다. 프로그램 이후는 목표와 성과평가에 반영되지도 않고, 그걸 열심히 한다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으니 소홀히 한다.


조직과 리더, 담당자가 목표와 업무의 범위, 그리고 종료 시점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느냐에 따라 뒷단의 집요하고 성실한 팔로업이 달라질 거다. 정교화와 새로운 것을 계속 도입하기보다 하나라도 집요하게 지속되는 걸 고민해야 한다.


10년쯤 지속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 드는 일들이 많다. 그쯤 해야 뭐라도 뿌리내리지 않을까.


저 프로그램도 담당자가 바뀌고, 형식적이 되다가 결국 흐지부지 사라졌다. 제도나 프로그램은 그런 거다. 도입과 개발의 의욕 대비 팔로업과 지속성은 매우 초라한 거. 늘 관건은 콘텐츠 자체보다 집요한 실행이더라는.


아무리 효율이니 데이터 기반이니 해도 난 HR의 진가는 다리품만 한 게 없다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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