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는 일이 HR이다 보니 자주 받는 질문들이 있다.
본인 커리어 고민, 이직 상담, 이슈 직원 대응 방안, 리더십 고민.. 특히나 커리어나 이직상담 관련해 인사담당자에게 물으면 뭔가 답이 있다 생각하는 경향도 있는 듯하다. 정작 인사담당자들이 모이면 본인 전문성에 대해 가장 많이 고민할 걸?
여하튼 이 외에도 요즘 대표님들이 물어오는 게 시니어 채용 시 연봉 책정에 대한 것.
스타트업씬에서 보상담당자의 전문성이 과연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 이후 10년 훌쩍 넘는 기간 동안 가지고 있던 평가보상의 개념과 관점이 꽤 바뀌었다. 여전히 가끔은 울컥하기도 하고, 처우 협상 시 상대의 요구나 태도에 목구멍까지 차오른 육두문자를 삼킬 때가 있긴 하지만..
개발자를 필두로 데이터, 마케팅의 천정부지로 솟은 연봉은 그렇다 치고 가장 애매한 게 인사, 재무 같은 스태프 부서. 하나같이 "우리도 전문가, 좋은 인재"라 하지만 실상은 CFO 정도 외엔 고만고만한 경우가 태반이다. 스타트업에서 인사가 그리 중요하고 여기저기에서 좋은 인사담당자 없냐 묻지만 지난 시간 인사담당자 이력서를 보고 귀동냥하며 내린 결론은 여전히 멀었구나 싶다.
보통 스타트업 인사에서 2년 정도 경력이면 정부지원금, 온갖 어드민 성 행정 업무 + 총무 업무를 경험하는데 문제는 5년, 6년 차 인사담당자들의 이력서를 받아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거. 일의 가짓수는 많아질지 몰라도 사실상 경력의 성장 없이 수평이동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본다. 결국 커리어 확장이나 성장이 아닌 능숙도 향상에 머무른다랄까.
이력서를 빼곡히 채운 이들의 흔한 인사업무 내용은 이런 거다.
채용(공고 게시, 일정 조율, 면접 진행, 채용전략 수립, 채용 채널 확대), 인사 데이터 분석(입, 퇴사자 업데이트), 노무(연차사용촉진, 연차 관리, 근태 관리), 인사정보 관리 및 대응(경력증명서 등 대응), 정부 인건비 지원사업 진행, 채용 브랜딩(노션 관리), 조직문화 전략 수립 및 운영(사내 이벤트, 복지제도 기획 운영), 평가제도 설계, 보상 전략 수립....
그런데 이 업무들 중 태반은 그냥 누구나 하면 하는 일이다. 누가 할 지 정하면 되는 거지 그게 인사이거나 전문가일 필요가 전혀 없다는 거다. 예를 들어 채용채널 확대라 해봐야 원티드 하나 올릴 걸 사람인, 잡코리아처럼 채용 플랫폼 여기저기, 서치펌도 여기저기 많이 동원했단 얘기다. 단순한 일들을 있어보이게 이력서에 빼곡히 채운 걸 걸러내기 어려운 건 인사 실무에 대한 경험이나 변별력이 없기 때문.
예를 들어 채용담당자가 아닌 채용 전문가가 뽑고 싶다면 실제 아웃바운드 채용을 얼마나 했는지, 어떻게 했는지, 어떤 급에서 주로 했는지가 점적으로 체크해야 할 포인트여야 한다. 여기에 인재상, 채용 브랜딩 및 전략을 세우고 면접 구조화를 했다는 사람들은 정말 흔치 않다고 봐야 한다. 대기업 출신들 조차 주로 컨설팅펌을 끼고 면접평가방법을 개선하기 때문이고 스타트업에서도 채용담당자는 주로 리크루터 역할이기 때문에 이걸 정밀히 측정하고 개선하는 일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이건 사람을 서칭하고 영입단까지 끌고오는 리크루터 보다는 조직문화나 제도설계자의 영역에 더 가깝다. 더구나 뭘 해볼 수는 있지만 장기간 데이터가 쌓이며 입/퇴사자, 고/저성과자 분석이 되었을 때 최소 검증도 가능하기에 이걸 짧은 재직 기간(몇 개월에서 1~2년 단위)에 했다 하면.. 그분 정말 만나고 싶습니다!
더구나 우리도 평가 측정을 하겠다 의욕 높은 회사도 있는데 이게 가능하려면 평가방법론과 기본 분석 스킬, 꽤 디테일한 트래킹 자료가 있어야 한다. 아니면 그저 현재 누가 일을 잘하고 누가 못하더라, 면접 때 뭐가 걸렸는데 역시나 문제더라 같은 감과 눈에 보이는 것에 치중해 판단하는 걸 데이터니 뭐니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무조건 이론적으로, 대단히 체계적으로 뭘 하자는 사람도 문제이겠지만 (이럼 몇 년이고 일 못함) 그렇다고 뚝딱뚝딱 검증 툴이 마악~ 신뢰도 높게 나올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설명하다 입을 다물게 된다. 대단한 수준의 전문가일 필요도 없고, 그냥 지식과 경험 차이가 큰 것만으로도 설명이 무효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어제도 채용 담당자를 뽑는 JD를 봐달라는 지인의 요청에 공고를 보니 제목은 채용담당자인데 채용부터 인사행정, 성과관리, 조직문화까지 인사의 전 부문이 다 들어가 있었다. 이렇게 써두고 사람이 안 뽑힌다며.. 얕고 넓게 이것저것 다 해달라 하면 몰라도 'OO전문가'를 붙이질 말든가.. 그런데 채용 플랫폼 공고들을 보면 별반 다르지 않다.
이제 30~40명 되는 회사에서 무슨 인사담당자를 3~4명씩 두냐 하시면.. 일리는 있지만 팀빌딩은 현재가 아닌 향후 채용 규모를 고려해야 한다. 현재 30~40명이다 하더라도 투자를 받고 본격적으로 인력을 10~20명 이상 충원하려고 한다면 채용만 2명은 붙어야 팽팽 돌아간다. 이들이 루틴하고 매월 특정일에 대응하는 정부 인건비 지원 업무 등은 가져가면 되고.
우리도 인사팀장급, 리드급의 시니어 전문가를 뽑고 싶다 한다면 물론 이들도 채용업무야 해야겠지만 주로 리더 이상의 중량급을 중장기로 영입하는 데에 집중시켜야 한다. 일반 실무자까지 전부 다 개입하면 이들은 주구장창 면접만 보게 될 거다. 대표나 C-Level들이 가장 효과적인 영입맨이긴 하나 인사 리드가 중량급이라면 이들도 채용 브랜드와 협상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성실한 일꾼 말고 그 자체로 매력있는 사람인지도 중요하다. 밖에서 걸출한 이들에게 오퍼 날리고 말이라도 붙이며 회사에 대한 호기심이라도 일으킬 정도가 아니라면 팀장급의 자격은 없는 거다. 그냥 역할 상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니 주는 직책이 아닌 이상.
그리고 이들이 긴 호흡으로 조직 내 각종 노무(연차계산 같은 거 말고) 이슈를 풀어가고 제도나 프로세스를 만들어가는 데에 그나마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이들을 잘 뽑은 거고 잘 쓰는 거다. 여기서 '그나마'라 하는 건 이런 역할을 부여한다 해도 날마다 무수한 면담과 자잘한 행정 업무에 어떤 식으로든 관여되기 때문이다.
이때 대표님들이 묻는 게 이들의 연봉을 어떻게 책정해야 하는가이다.
그럼 전자라면 경력이나 여러 상황을 보고 말씀드리는데, 후자라면 백지수표(면 좋겠다..)나 다름없다 말씀드린다. 어떤 일을 잘 수행할 사람에 대한 연봉과는 조금 다른 접근을 해야 한다고. 후자의 역할이라면 기본적인 그의 연봉에 그를 통해 당신이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사업적 가치를 감안해 얹어줘야 한다고 말이다. 여기에 만약 그가 업계에서 인지도가 있다거나 인정받는 사람이라 하면.. 그가 선택하는 회사라는 것만으로도 권리금 마냥 회사 홍보 효과도 따라간다. 개발자 희소성으로 아직 역량 덜 무르익은 사람들에게 고액연봉을 지급하면서.. 이런 인사담당자는 더 희소합니다.
작은 회사에서 대표가 급여, 연차 관리, 인건비 지원 신청 등을 다 하다 이 일을 떼어준다는 건 그냥 내가 굳이 안 해도 되는 일을 하고 있다 떼어내는 거다. 하지만 후자의 수준이라면 더 큰 회사 가치 창출을 위한 나의 시간을 벌고 시너지를 내는 파트너를 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에 충분한 보상을 하시라 한다. 그리고 조직 내 운영에 대한 일정 부분의 책임까지 다 맡기시라고. 사업적, 재무적 COO와 구분되는 내부 프로세스 운영 측면의 COO 역할로 보시라고.
물론, 그에 흡족한 이들은 별로 없을 것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장기적으로 꾸준히 찾아보시고 전자 정도의 인사팀장으로 해서 그 밑에 손발을 같이 움직여줄 스탭을 붙여 뽑으시라 말씀드린다. 높은 연봉을 주는데 또 사람을 더 뽑아줘야 하냐, 스타트업에서 이것저것 다하는거지 무슨~이라 한다면 그냥 실무수행 팀장급을 뽑으면 된다. 인사가 매우 중요하다 하지 마시고. 중량급 인사담당자를 뽑아도 그들도 실무는 많이 할 수 밖에 없다. 일을 어떻게 잘 나누냐의 문제이지 일을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란 거다.
어차피 스타트업엔 '3개월 Rule'이 존재하고 실제로도 꽤나 활발히 운영되지 않나. 그리고 꽤나 높은 연봉과 책임을 주는 가지는 만큼 그에 대한 쌍방 텐션을 유지하면 되는 거다. (단, 이들의 일은 단기 성과를 낼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건 잊지 말자, 제발! 일하는 방식, 문제를 접근하는 방식을 관찰하자)
결론은 처우가 아니라 역할과 기대치를 먼저 명확히 하는 게 필요하다는 거!
* 이 글을 읽는 인담들도 "그 후자가 바로 나야, 대접해!"라고 섣불리 착각하진 말기를.
오늘도 모 회사의 인사담당자 이력서 검토를 하다 지원자들의 경력 수평이동과 필요로 하는 직무에 맞는 이들인지 아닌지를 구분하기 어려워하는 회사에 대한 안타까움에 끄적끄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