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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OO Jan 26. 2022

모르는 길에 익숙해진다는 것과 경력직에 대한 상념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해 계신다. 벌써 한 달 하고도 열흘 정도.

서울에 중환자실이 없어 간신히 인천에 있는 모 대학병원으로 가야 했다. 지방으로도 가거나 중환자실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니 그나마도 다행이다 하고 있다.

태어나 인천공항에나 가봤지 낯선 도시, 운전을 못해 여길 어떻게 다니나 처음엔 좀 막막했었다.


출처: 핀터레스트


보통 주치의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아침 회진 직후이므로 오전 7시 30분쯤부터 대기실에서 기다린다. 그럼 최소 집에서 새벽 6시쯤 나간다. 병원은 인근에 지하철역이 세 개가 있다. 검암역, 석남역, 서구청역.

검암과 석남역은 도보 이동은 어렵고 대중교통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 택시를 타야 하는데 약 15분 정도 걸린다. 서구청역에서는 도보로 15분 정도.

처음엔 택시를 탔는데 6시쯤 탑승해도 족히 50분 정도 걸린다. 그러나 인천에 도착할 즈음부터 꽤 차가 많고 조금만 늦게 출발해도 시간이 확 늘어나더라. 10분 단위로 쪼개어 타보고 가장 무난히 가려면 6시에는 타야겠다 했다.

하지만 눈이 많이 온 날, 끝도 없이 막히고 위험하다고도 느낀 이후 지하철도 이용해 보았다. 세 역을 다양한 갈아타기 루트로, 다양한 시간대에 이용해 본 결과 그나마 최적 경로를 찾은 상태다.

그래서 요즘은 되도록 지하철을 탄다. 그나마 예측 가능한 시간에 별 탈 없이 도착하기 때문에.


모든 루트가 처음이던 초반과 달리 오가는 길이 덜 고단하다. 갈아타는 지하철 배차 시간이나 환승 거리, 택시 호출 수월성, 하다못해 지하철 역에선 몇 번 출구로 나가야 편한지 등을 알게 되고 적어도 병원 인근이 눈에 익숙해진 이후다. 생전 처음 간 낯선 동네, 모르는 곳이고 막연히 먼 곳이란 심리적 부담감이 아는 동네, 아는 길, 가보니 어떤 변수들이 있더라는 걸 얼추 경험하고 계산 가능하다 보니 버리는 시간 없이 시간을 쓸 수도 있게 되었다. 원래 길을 모를 때 먼 것이지, 아는 길이 되면 갈만 해 지는 거 아닌가.




병원을 오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가운전일 거다. 그다음은 운전할 수 있는 누군가와 늘 함께 하는 것. 그다음은 택시일 거고, 또는 병원 근처로 이사 가는 거. 그러나 나는 운전을 못하고, 혼자 살고 있으며 택시는 자주 활용하지만 특정 시간대엔 지하철이 훨씬 나은 데다 병원은 시술별 동의서를 써야 할 때 말고는 코로나 시국인지라 면회도 간병도 불가능하기에 매일 가는 것도 아니다. 이런 여러 제약 속에서 최적 경로를 찾아야 하는 것. 지금은 부담 없이 가볍게 오가는 이 길을 찾는 데엔 3주 정도 걸렸다. 같은 경로도 시간대에 따라 또 달랐기 때문에 한 경로를 몇 번씩 다녀본 후에야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득 모르는 길에 익숙해진다는 것이
경험치가 쌓인다는 것,
경력자와 다를 바 없단 생각이 들었다.
최적의 방안을 찾는 것은
최적의 인재를 뽑아
활용하는 것과도 같다는 생각도.


경력자와 초심자를 가르는 결정적 차이 중 하나는 '리소스 산정 가능 여부'다. 방법론에 대한 지식은 물론 실제 부딪혀 가며 다양한 경우의 수를 예상 가능해 버퍼를 포함한 리소스 산정을 할 수 있는 거 말이다.


경력자를 쓴다는 건 이런 거다.

가보지 않은 길, 남들이 어떻든 내겐 낯선 길을 이미 그 길을 가보거나 유사한 길을 다녀 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이때 주의할 건 인천 살았다 해서 내가 가야 하는 그 병원을 잘 아는 게 아니라는 것이고, 운전만 해보거나(A) 지하철만 타보거나(B) 택시만 타 본(C), 어느 하나에 치중된 사람에겐 목적지를 가는 각각의 경로엔 익숙하되 다른 경로는 헤맬 수 있다는 것. 조직은 애초에 목적지로 가는 경로를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을 원했는지, 목적지에 가는 최적 경로를 알려줄 사람을 원하는지가 채용 전에 혹은 채용 과정 중에라도 선명해져야 한다. 후자인데 전자를 채용했다면 '일단 운전으로 간다'는 조직의 합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아닌 상태에서 전자를 채용해놓고 B, C를 모른다 뭐라 하고 있진 않은지.

A, B, C를 두루 경험했다 해서 그가 최적이라 할 수도 없다. 나도 현 상황에서, 딱 내가 가는 시간대에 해당하는 최적 경로를 찾았을 뿐이고 다른 시간대에도 그렇다 확신할 수는 없다. 경력자가 주의해야 하는 건 A, B, C를 두루 경험했다 해서 그게 전부인 줄 착각하면 안 된다는 거다.


경력자를 잘 뽑아 잘 쓴다는 건 또 이런 거다.

전용 차 하나 굴릴 수 있는지, 그걸 운전할 사람은 있는지, 면허가 있다면 시키면 되는지, 이사를 갈 건지 등.. 우리 조직의 가용 자원과 환경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 그걸 먼저 가늠해 보고 제한 속에서 최적을 찾아 그에 맞는 사람을 뽑아야. 운전만 할 수 있으면 일단 차를 맡겨 보내겠다인지, 그래도 못 미더우니 베스트 드라이버, 최소 중급 드라이버는 구해야겠다 생각하는지 같은 거. 경력직의 채용은 좋은 인재를 모시기보단 자기 분석과 조직 깜냥에 성패가 달린 경우가 더 많다. 또한 인재 역시 본인이 운전자라면 합류하려는 조직이 지하철을 타야 하는 곳이거나 이사를 해야 하는 조직인 경우 그걸 기꺼이 다 하겠는지도 잘 생각해볼 문제다.


내 경우 처음엔 더 빨리 나가는 것만 생각했는데 막히지 않고는 갔다지만 그렇다고 더 빨리 가는 것도 아니었고, 대기실에서 대기해야 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졌다. 그래서 비슷한 소요 시간 내에 어떤 방법이 가장 효율적인지를 찾아다닌 거였고. 운전만 하던 이가 계속 시간만 당겨 출발하는 건 열심이고 성실 일지는 몰라도 효율 측면에서 본다면 되려 낭비가 많아지기에 다른 방법을 고민할 수도, 실행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출발 시간만 당기는 사람들이 꽤 많다. 경력직의 효용은 경험 자체가 바로 쓰일 수 있을 때 가장 극대화될 것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하나의 경험을 기반으로 다른 응용이나 방안을 찾아내가는 노력이 있을 때 그 빛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의 화려한 경력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영입되는 이들을 무수히 봐왔다. 그들의 중장기 조직 내 위상을 가르는 것은 과거의 자기 복제가 아니라 전문성을 바탕으로 T자형 확장이 가능할 때였다.


운전만 해서 다니던 사람이 지하철 노선도를 열심히 공부하고 인천 지역 정보를 파보았다 치자. 그리고 그걸 모여서 스터디하고, 다른 사람에게 이래라저래라 컨설팅하며 그 사람이 덕분에 잘 찾아갔다며 고마워하고, 그 사람이 다른 누군가가 또 그 경로를 헤매는 누군가를 보았을 때 운전자를 추천하고.. 이 순환 속에서 어느새 운전자는 지역 교통 전문가가 된다.


현실 속 조직, 인재(?)라는 이들에게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지식은 월등이 많지만 정작 직접적인 경험과 성공체험은 특정 지역 운전 말고는 없는 이들. 단순 경력직을 넘어 전문가라 자칭, 타칭 불리는 이들이 있다. 그들이 이런 운전자과일  문제가 생기곤 한다. 운전  다른 부분에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가르치고  번도  가본 이들이 다른  없는지, 혹은 그게 정말 맞을까 의심하면 "알지도 못하는 " 해버리는 사람들 말이다. 또는 면허 없는 조직에 운전해야 한다고,  사야 한다고 운전 못하는 동료들을 한심해하고 대중교통도  모르는 이들을 다그칠 때도.


때론 다른 참신함 보단 일단 이런 이들을 따라 빨리 어느 이상 길을 가두는 게 더 중요할 때도 있다. 중간쯤, 좀 더 가서 그때부터 다시 '요이땅'하며 자기만의 방식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도 방법이다. 하지만 이들이 자기가 정답인 양 몰아붙이고 스스로 취해버릴 때 조직이 휘둘릴 위험이 꽤나 크다. 때문에 조직이 뭘 원하는 지를 잘 생각하고 채용이 진행되어야 조직도, 인재도 서로 잘 쓰고 잘 쓰일 수 있다. 우린 면허 하나 없지만 운전해 가는 방법으로 전략을 정했다면 드라이버를 구하면 된다. 그리고 차도 사주고, 필요하면 보조 운전자도 붙여주고. 그러면서 서서히 다른 인력들도 면허를 따게 하거나 점점 더 그런 인력으로 채워가는 거. 그래야 드라이버도 자기 전문성을 한껏 발휘할 수 있고 일일이 서로를 설명하고 설득하는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만약 우리도 운전은 하고 싶지만 아직은 택시를 타거나 대중교통의 최적 경로를 찾아가겠다 한다면 드라이버부터 무작정 채용하기보단 덜 있어 보여도 다른 경로 경험이 많은 사람을 채용하는 게 낫다.


경력자를 채용할 때엔 무엇보다 조직이  사람을    있느냐를 냉철히 들여다보는  먼저다.  하고 싶다 전에 말이다. 많은 회사에서 세일즈가 욕 먹는 이유 중 하나가 ‘의지치’를 매출에 반영할 때다. 채용도 의지치로만 의욕이 앞설 때가 참 많다.


경력자 역시 회사를 선택할 때엔 '나는 전문가이고, 이런 나를 처우나 포지션으로 만족스럽게 대접해주는 , 내가 일하고 싶은 (나를 사람들이 부러워하게끔 만들만한 회사) 중요하지만,  회사가 나를    아는 곳이냐를 진지하게 짚어  필요가 있다. 많은  꼼꼼히 따져도 이걸 많이들 간과한다.




뭐든 익숙해지는 데엔 초반의 노력이 필요하다. 익숙해진다는 건 점점 능숙해지는 것이지 깊이가 깊어지고 넓이가 확대되는 것과는 다른 얘기다. 응용을 하고 다른 쪽으로 확장하고 싶다면 낯선 걸 찾아 나서고 그 역시 또 지리한 익숙해짐의 시간을 요한다. 보통은 다른 게 궁금해도 익숙하고 능숙한 것에 치중되기에 스스로를 어딘가에 가두지 않도록 끊임없이 성찰이 필요하다. 이게 가능하려면 비판에도, 낯섦에도 오픈되어 있어야 하고 내가 정답이 아니란 겸손함이 최소 전제다.


뭐든 잘 쓰는 데에도 노력이 필요하다. 슈퍼카를 준들 면허가 없다면 무용지물이듯 뭘 손에 넣었다고 내가 그걸 잘 쓰는 건 아니다. 잘 쓸 수 있을 것 같고, 이제부터는 잘 쓸 생각이라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거다. 슈퍼카를 일단 사고, 그걸 능숙히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았다 치면 그 차는 굴러갈지 모르겠지만 정작 조직에서 겉돌거나 그만 신나 있진 않은지, 그런 슈퍼카와 드라이버를 우리도 보유했단 경영진의 자기만족이 더 큰 건 아닌지도 신중히 생각해 볼 일이다. 아니면 중형차쯤 몰아보던 이가 "나 슈퍼카 몰던 사람"이라며 시장 내 스타가 되어 떠날 수도.... 채용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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