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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OO Oct 20. 2021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다?

고쳐쓸 수 없다면 어쩔 건데? 고쳐쓸 수 있다면 고칠 거냐며?

스카이캐슬 대사 中


비단 인사담당자들 간의 자리가 아니어도 리더든 CEO든 혹은 하다 못해 일상 속 연애 이야기에서도 나오는 이야기. 이 말이 나오는 자리에서는 모두들 각자 머릿속에 누군가를 떠올리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한다. '사람'을 '고쳐서' '쓴다'는 매우 무례하고 오만한 표현임에도 꽤나 자주 말하고 듣는 말.


그렇다면 이 무례하고 오만하기 짝 없는 표현을 대체 왜 이리 많이 쓰고 있는가?

예전엔 나도 이 말을 자주 썼다. 그리고 딱 잘라 확신에 차서 내뱉곤 했다.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에요!"라고. 능력이든 역량이든, 태도든 뭐든 문제가 심각하다 싶은 이들은 빨리 '걷어내야 한다' 강력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특히나 성격 까칠하고 나쁘다는 말엔 눈도 깜짝 안 하면서도 '무능하다'거나 '일 못한다'는 말은 끔찍하게 싫어하는, 극도로 '무능함에 가혹한' 언행을 쏟아냈었다.

그래서 이런 이들에 대한 구조조정이나 면직, 배제 등에 누구보다 적극적이기도.


마치 지금은 달라진냥 이 글을 쓰는가 하면 그렇진 않다.

단 저성과자를 유지하지 말자란 최종 결론은 동일하나 그 사이 많은 고려 항목과 기준들이 나름 만들어진 점에 차이는 있다. 학술적으로 연구한 문헌은 많기에 그런 건 따로 아티클을 찾도록 하고 보통의 일상에서 주고받는 말속에서 최소한 어땠으면 싶은지 끄적거려 본다.



많은 회사에서 인재를 분류할 때 자주 쓰이는 그림이다. B는 역량도 성과도 모두 탁월하니 어느 회사든 신규로 확보하든 이미 잡은 인재라면 이탈을 막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대상. D는 역량도 성과도 좋지 않아 어느 회사든 저성과자로 분류되는 부류. 그런데 잘 뜯어보면 B를 제외하고는 '감으로' 분류되는 게 대부분이다. 나름의 '체계와 원칙'이 있다는 회사도 고과 같은 걸로 일단 성과 레벨을 나누고 역량(그놈의 지긋지긋하고 모호한 역량)으로 분류한다. 그런데 논란의 여지가 없을 것만 같은 B도 잘 뜯어볼 필요가 있다.




스타트업처럼 아직 성과나 목표가 불분명하고 변화가 많은 기업 외 보통의 기업은 1년 단위 혹은 반기 평가를 진행하기에 성과의 결과인 고과가 매년 누적되어 간다. 인재 분류 시 B와 D에 몇 년치(주로 3년) 고과 평균으로 일단 쭉 잘라 배치하는 방식. 육성하고 리텐션 해야 하는 B와 이슈 직원으로 분류해 언제든지 재배치나 퇴출을 목적으로 분류하는 D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보니 A와 C가 상대적으로 그레이존에 있게 된다. 언제든 A와 C는 B가 될 수 있음에도 말이다.


여하튼 다시 돌아가 B를 좀 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주니어 시절 B였으나 미들, 시니어급으로 갈수록 A나 C에 머무르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고, 기업의 성장 등 환경에 따라 극단적으로 B, D가 바뀌기도 하지 않나. 그리고 연간 성과가 상향 평준화되어 지속되는 사람들이 B에 있다고는 하나 그 성과라는 게 정확히 정립되어 있느냐, 고역량은 정확히 정립되어 있느냐 하면 이 역시 아닌 경우가 더 많다. 그리고 성과는 기가 막힌데, 인성도 기가 막히게 반비례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때문에 조직의 성과 정의, 역량 정의, 둘의 반영방식에 따라 1차 분류가 되고 기타 소속 조직의 구성, 리더십, 프로젝트 대내외 환경 등의 영향 요인에 따른 고려 사항도 원칙이 필요하다. 때문에 100개의 회사가 있다면 100개의 B기준이 있게 되는 거.


워낙 회사에 중요하다 하니 B에 대한 원칙을 잘 잡아보자 하는 건 쉽게 협의가 된다. 그런데 문제는 D다. 물론 누가 봐도 '저 사람은 인성도 태도도 역량도 성과도 다 문제'라 싶은 사람이 있을 거다. 그 D의 기준을 명확히 하는 게 A를 명확히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A는 내가 선정되면 으쓱한 거고, 내가 인정하기 어려운 사람이 A라 하면 기분 나쁘고 어이없지만 D에 들어가는 순간 극단적으로는 사람의 자존감을 짓밟고 상처를 주게 될 수 있기 때문에. 더 나아가면 사람의 커리어나 삶을 바꿔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학창 시절 왕따와 별반 다를 바 없을 수 있다. 아무리 성과주의니 냉정이니 객관성이니가 쉽게 언급되는 직장이라 해도 사람이 모여 일을 하는 곳이기에 평가로 사람의 감정과 정신을 훼손해서는 안 되는 거다.


그럼 저성과자를 어떻게 분류할까를 논하기 전 왜 굳이 저성과자를 분류하는가에 대한 근본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대체 저성과자가 뭐가 그리 문제여서 이리도 냉정하고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가.

어느 조직이든 경영진은 이왕이면 우수한 인재들로 조직을 채우고 싶어 하고, 성에 차지 않는 이들은 '고쳐 쓰거나' '내보내고 싶어 한다'. 이건 경영진 관점이고, 이들과 직접 부대끼며 일하는 사람들은 '고쳐쓰기'보단 '내 옆에서 멀찌감치 떨어뜨리고 싶어'한다.




최근 길에서 발목을 접질렸다. 심각한 부상은 아니었지만 2~3주 간은 여러모로 불편함이 있다. 통증을 피하기 위해 몸의 다른 부분에 무리를 주고 있는 거. 그래서 멀쩡한 반대쪽 발목이 아프고 허리도 당긴다. 잠깐 앉았다 일어나는 자세에서도 미묘하게 통증을 최소화하려 삐딱해진다. 테이핑한 다리에 물이 튈까 조심하며 샤워해야 하고, 잘 때도 압박되지 않으려 한쪽으로 잔다. 정말 괜찮은데도 옆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걱정하고 걸음 속도를 늦추며 식당에 가도 좌식이면 다른 곳으로 가자 하기도. 하다못해 하이힐을 포기해 모양새가 맘에 들지 않으니 정장이나 드레시한 옷도 포기한다. 매일 침을 맞고 초음파 치료를 받기에 걷어올리기 편한 통 넓은 바지나 롱스커트를 주로 입는 것 등등.

발목 좀 다쳤다 해도 어쨌든 내 몸뚱이는 움직여야 하고, 씻어야 하고 뭘 걸쳐야 한다. 내 몸에 붙은 모든 것이 어떤 식으로든 자기 기능이 있기에 그중 하나가 고장 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하는' 것을 위해 다른 것들이 좀 더 그 기능을 받쳐주게 되는 거.


저성과자란 다친 발목과도 같은 존재일지 모르겠다.

몸뚱이의 수많은 기능 중 하나를 담당할 뿐이지만 그 몫을 제대로 못해낼 때 해야 하는 일들을 위해 다른 부위가 무리를 하게 되는 것처럼. 저성과자란 기대하는 최소한의 자기 기능을 못해내는 다친 발목과 같다. 동료들에게 부담을 주는.


요즘 운동을 시작해 한창 열심이었다. 작심삼일을 극복하고 3주 차에 접어들며 몸에 좀 붙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그러나 이 작은 부상으로 운동도 두어 주 미뤄두고 있다. 빨리 건너고 싶은 신호등에서도 뛰지 못하고, 갑자기 훅 나타난 전동 킥보드에도 순간적인 통증으로 멈칫해 하마터면 다칠 뻔했다. 조직에 대입해 보면 제 몫을 못하는 이는 조직의 추진 속도를 늦추고 상황 대응에 신속히 반응하기 어렵게 만든다. 뛸 수도 있고, 구르기를 할 수도 있는데 고작 넘어지지 않고 잘 걷는 수준에 머무르게 만든다.


몇 년 전 같은 쪽 발목 인대가 파열됐었다. 꽤 큰 부상이라 꽤 오래 깁스하고 치료도 오래 걸렸다. 거동 자체가 어려웠던 당시, 약속했던 여행이 취소되었고 팀 대항으로 뛰기로 한 운동경기도 못했다. 다른 부위에 훨씬 큰 부담이 있었고 깁스를 풀고 거동이 가능해지고도 약해진 근육으로 한동안은 침 치료나 물리치료 등 재활 치료를 계속 받으러 다녀야 했다. 저성과자는 이런 존재인 거다. 치료와 주의 같이 갖은 노력을 들이지만 빨리 낫지도 다른 사람의 부담을 덜어내지도 못한다. 좀 나아진 거 같다 해도 여전히 손이 가고 제 기능을 다하기까지 또 기다려야 한다.


나 때문에 회식이든 모임이든 방해가 될까 알아서 빠지려 하게 되고, 사람들도 나를 배려하기 위해 계획을 수정하거나 취소해야 했다. 누구도 대놓고 짜증 내진 않았지만 그게 또 미안해 위축되기도. 당연히 해야 하고 하기로 했던 것을 할 뿐인데 지극히 개인적으로 다친 나로 인해 다른 이들이 내게 미안해하는 민폐를 끼치며.  




문제 직원, 저성과자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많이 물어온다.

결론은 내보내고 싶다이지만 근로기준법 때문에, 그래도 최선을 다해봐야지 하는 진심 그리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모진 사람이 되기 싫어서 등의 이유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고충과 울분을 토로한다. 그러면서 나오는 말이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다!".


내게 묻는다.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다란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이에 대해 요즘은 확신에 찬 답변 대신 먼저 묻는다.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다란 대단히 오만한 말 같다. 당신 조직, 당신의 저성과자 기준은 정확히 무엇인가?".


덧붙여 말한다.

"사람을 고쳐쓸 수 있느냐 아니냐는 나도 잘 모르겠다. 굳이 어느 쪽이냐 단정해야 한다면 후자에 가깝다 하겠다. 그러나 정확히는 개선하기 너~~어무 어렵다가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한다. 그래도 결론적으로 어때야 하냐를 묻는다면 빼내는 게 최선이란 생각을 한다. 고쳐진다 해도 문제는 너무 많은 에너지가 들어가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데 그 과정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나가떨어진다"라고.
"더구나 스타트업은 '육성'에 욕심내지 말자. 솔직히 업력이 오래되어 체계가 마련되어 있고 인력 수준이 뛰어난 일부 회사가 아닌 다음에야 끌고 갈 실력과 체력이 있기나 한가. 함께 돕고 으쌰으쌰 하는 것과 당장 죽어라 달려야 하는 전장에서 누구를 업어 뛸 새가 있는가는 다른 얘기 아닌가?"
"다만 그 헤어짐을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하느냐가 관건이다. 그래서 우리 조직과 당신이 '저성과자 기준'이 명확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준은 어디까지나 우리 조직 내에 한정될 뿐 어디서든 통용된다 생각지는 말자. 우리 조직의 에이스가 타 조직에서는 언제든 저성과자가 될 수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적어도 누군가는 열을 받고 누군가는 상처 받을 수 있다 했을 때엔 상처 받는 이가 최소화되어야 하는 거 같다. 그래서 정확히 무엇 때문에 개선이 필요한지, 어떻게 개선하길 바라는지, 내 도움이 필요한 게 무엇인지, 언제까지 개선이 얼마만큼 되어야 하는지, 그 기회는 얼마나 줄 수 있는지 그 끝은 무엇인지를 최소 3~6개월 간은 성실히 커뮤니케이션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조직에서 맞지 않음만 언급하자. 타 조직에서도 그러면 안 된다 같은 오지랖은 떨지 말자" 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나부터도 주의해야 하는 거.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다"라는 말 자체를 이제 하지 말자는 거.




다시 앞의 사분변으로 돌아가 정리해 보자.

단순 분류, 그 분류에 의한 대처를 논하기 전 인재상의 원칙 정립이 먼저. 인사에서 비전체계와 인재상 등을 언급할 때 마치 뜬구름 잡듯 치부되는 걸 강조하는 게 아니다. 저 4개의 사분변 정의를 명확히 해야 하는 거다. 이쯤 되면 B와 D는 확실히 정하고 가자 할 수 있다. 그럼 A와 C가 남는다.

인재상의 그레이존에 방치되곤 하는 A와 C야 말로 B와 D를 명료하게 다듬는 데에 중요한 기준이 되는데 말이다. 조직에서 대다수의 인재는 소위 B Player, 매우 탁월하지 않을진 모르지만 충분히 기대 역할을 해내는 이들에 의해 조직은 지탱된다. 그러나 능력, 역량, 성과의 모든 부분을 고루 높게 만족시키는 인재는 많지 않기에 A와 C에서 우리는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무엇은 용납할 수 없는가에 따라 D가 정해지는 거다.

"아무리 성과를 내고 능력이 출중해도 역량과 태도가 맞지 않는다면 우리는 함께 가지 않는다" 치면 그 회사는 육성에 대한 인내심과 체계가 중요해진다. ""아무리 태도가 좋아도 능력과 성과가 좋지 않으면 같이 갈 수 없다 "한다면 이런 조직은 철저히 기능 중심으로 조기 전력화와 빠른 의도적 턴오버에 집중하고 기대 역할과 목표, 점검과 피드백 시스템 정비에 우선 무게중심을 두는 게 낫다.


조직이 원칙의 모호함을 구성원에게 전가시키지 않도록 '좋은 회사, 좋은 사람' 되려 말고 '우리는 이런 회사'라는 정체성 확립이 먼저다. '나는 이런 사람'이란 색깔을 드러내듯 '우린 이런 조직'이란 색을 분명하고 일관되게 보여주는 , 그게 저성과자 대응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애초에 사람을 고치는  어렵다기보다는 다른 사람이 다른 누구를 바꾸기 어렵다가 맞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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