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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OO Mar 31. 2022

일기, 주절주절.

아는 만큼 보이고, 생각할 수 있을 뿐

#1.


방학이 7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어제저녁 그간 캘린더를 탈탈 털어 보았더니 (시간이 남아 도나 봄) 자잘하게 뭐가 더 있긴 했겠지만 일단 캘린더에 기재되어 있는 만남들을 세어 보니 그간 총 107개 회사를 만났더라. 그중 대표를 만난 게 102건, 그 외 경영진이나 실무자만 만난 게 5건. 대기업 프로젝트 4건은 제외.


이 중 동일 대표와 2번 이상 만난 경우가 31건. 만나지는 않지만 가끔 카톡이나 전화하는 경우는 좀 더 있는데 이건 캘린더에 없으므로 패스.


얕은 수준이든 프로젝트든 해당 조직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본 회사가 대충 61건, 정기적으로 방문 근무(주 1회 풀타임 한 경우도 있음), 화상회의 등으로 2주 이상 과제를 진행한 건이 38건.


대화 정도로 분류될 수 있는 건은 제외하고 주기적으로 CEO 미팅이나 아예 현업 과제 수행 등으로 했던 프로젝트를 기준으로 했을 때 가장 많은 주제는 평가와 보상 원칙 논의, 조직 내 이슈 케이스별 대응 방안 논의였다.


평가와 보상 원칙이라 하는 건 제도 자체의 설계보다 본질적인 평가와 보상 이전의 경영진 자기 인식, 조직 파악, 현상 분석, 그간의 예외(원칙을 벗어났던)나 변수들 정리, 원칙의 마지노선 선명화 같은 것들을 먼저 짚어보는 일. 


보통은 논의도 고민도 많이 한다 하지만 막상 짚어보면 디테일이 많이 떨어지고, HR 컨설턴트들이 뚝딱대며 이렇게 하면 된다 하는데 그냥 어느 회사든 기성복처럼 던져주는 방식이 대부분. 내 경우는 마지노선(절대 타협할 수 없거나 하기 싫은)을 아주 디테일하고 선명하게 하는 작업을 주로 한다. 


스타트업 컬쳐덱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리는 ~한다" 식은 결코 구체적이지 않음. 이게 의외로 꽤 복잡한 데다, 여러 기준들의 상황별, 조합별 원칙을 다듬어야 하는데 좀 돌아가는 거 같지만 이걸 구체화하게 되면 채용, 평가, 보상 등을 전개할 때 상당히 쉽게 갈 수 있다. 큰 줄기를 잡는 게 핵심.


쉬면서 이런 프로젝트나 미팅들을 많이, 다양하게 해 볼 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게 아마 16년을 인사일을 해오던 중에 어쩌면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이 될 수도 있겠단 확신이 든다. 기본적으로 이건 해야 한다는 공통적인 일들이 꽤 있긴 하지만 하다 못해 업력, 업종, 코파운더 성향, 수, 파운딩 멤버 구성, 조직 규모, C-Level 성향과 역학관계 등등을 고려하면 미묘하게 다른 접근을 해야 함에도 놀라우리만치 거의 같은 수준에서 운영되고 있음도 발견하게 되었고.




#2.


이 기간과 과정은 나에 대한 인식과 검증으로 볼 수 있는데, 하나 좀 알게 된 건 적어도 어지간한 인담보단 직접 경험해 예상 가능한 조직, 사람 이슈에 대한 가짓수가 훨씬 많긴 하다는 거. 다만 스타트업에서 벌어지거나 좀 더 +로 대비할 것들은 그보다 훨씬 못 미치는 게 현실. 그럼 그 벌어지고 대응해야 할 경우의 수가 많은 회사여야 내 경험치를 제대로 알아줄 거고, 때문에 내가 효용이 있겠다는 결론. 


많은 회사들과 사람, 각각이 이슈들을 대하며 내가 누구와 맞을 것 같다라든가, 저건 싫다라든가, 저건 흥미롭네, 저런 경우는 내가 별로겠다, 저건 진짜 별로 같은데 희한하게 땡기네 같은 알고 있던 건 더욱, 몰랐던 건 새롭게, 잘못 알고 있었구나 하는 건 의외네 한다. 나란 인간을 객관화 하고 최적점을 찾아가기 위해 날 선명히 할 수 있었다는 게 가장 큰 수확이라면 수확이겠다. 이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뭔가 했을 때 다른 기회가 혹시 없을까 하며 기웃댈 에너지를 최소화 시켜 주기 때문. 




#3.


한편으로는 틀을 깨야겠단 각성도 하게 되는데..


한 예로 두 달 전쯤 요즘 핫한 회사와 미팅을 했는데 (어제 포스팅에도 언급했던) 10여 명의 직원이 대표를 포함해 전원 기획, 개발, 디자인 등을 다 소화하고 있었다. 기존에 본 적 없는 조직구조와 R&R이었는데 단순히 초기 스타트업이라 멀티태스킹 하고 있다가 아닌 각자가 하나의 문제를 두고 그걸 해결하는 구조로 일하고 있더라. 첫 투자를 크게 받고 다음 라운드까지 이미 수백억 예정된 상황에서 채용규모가 확 늘어야 하는데 어떻게 조직을 가져가야 하는가에서 이제 세분화될 수밖에 없을 거고 현재 멤버들도 특정 직무에 집중하거나 제너럴리스트가 되거나 하지 않겠나 등으로 이야기하던 중 아차 싶었다.


'당연히' 조직이 커지면 기능별로 쪼개지고 매트릭스로 간다 생각하는 게 과연 맞느냐란 의문이 들었기 때문. 나는 물론 어떤 인담이 가도, 어떤 대표나 경영진이 가도 아마 그 틀을 벗어나긴 어려우리라 생각한다. 아차 했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결국 그리 되지 않겠나 싶고. 하지만 중요한 건 저런 문제를 타스크로 잘개 쪼개 개개인이 해당 과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R&R의 처음과 끝을 가져가는 구조를 누가 경험해 봤고, 저게 안된다는 건 또 누가 확신할 수 있을까 싶다. 

이미지 출처: http://asq.kr/yqp1m4ZlX


그제 인사담당자들과의 화상 미팅에서도 온/오프라인 논의 시 기본적으로 모두가 오프라인 세상만 경험하고 이제 갓 재택이니 퍼진 상황에서 그 누구도 성공이라 할 만한 충분한 사례 축적과 검증이 없으니 이렇게 한다 저렇게 한다 할 수 없는 데다, 우리 모두가 '오프라인' 중심을 전제로 이야기하고 있더라는..


나도 그런 이 중에 하나이겠지만 회사들을 만나고, 그 회사들을 거쳐갔다는 인담, 자문, 고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리고 스타트업 씬에서 HR 멘토처럼 상징되는 이들을 자주 만나며 느낀 건 대부분은 당면한 이슈 해결에 도움이 되긴 하지만 마치 정답처럼,, 팁처럼 제시하는 사람이 참 많구나 싶다.


앞서 회사에서 나도 훈수 두듯 이렇지 않을까요라 이야기하다 "아니다, 대표님, 이렇게 말씀드리면 안 될 것 같아요. 제가 이런 구조를 경험한 적도 없고 해외는 있는지 모르겠지만 정확히 모릅니다. 아는 척하면 안 될 것 같고 제 경험치와 지식 내에서 이야기하는 수준밖에 안 될 것 같네요. 중요한 건 이런 형태로 지금 이런 성장을 하고 계시다는 걸 텐데 말이죠" 했더랬다. 


각자의 관과 철학이 서고 이렇게 저렇게 해보고 싶다 하며, 성장하고 싶어 많이 배우기도 하지만 그래 봐야 있던 것에서 뭘 선택해 해나가느냐가 아닐까 싶다. 그게 나쁘다는 아니고, 훈수 두거나 정답처럼(잘 모르지만~ 처럼 겸손히 말한다고 겸손한 게 아니듯) 말하고 있진 않은지 자기 검열도 참 중요하겠다 싶음.


일기니 그냥 주절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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