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 사랑해

짧다면 짧은, 길다면 긴 이야기

by 윤슬작가

오랜만에 나온 봉사활동이다. 내가 하는 일은 장애인을 위한 차량에 함께 탑승하여 하루 동안 곁에서 도와주는 활동이다. 학교 다닐 때 의무적으로 채워야 하는 봉사시간 때문에 알게 되었는데, 대학에 입학 후에도 그 인연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학기에 한, 두 번 정도 시간 내어 다녀간다. 솔직히 어려운 일은 아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분들이 타고 내릴 때 곁에서 도와드리는 것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분들이 없는 경우에는 문을 닫고 열기만 하다가 끝나기도 한다.


선천적 장애보다 후천적 장애가 많다는 사실은 봉사활동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22살에 갑자기 하반신 마비가 와서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는 김 씨 아저씨. 20년째 휠체어 생활을 하고 계신다. 처음 김 씨 아저씨를 만났을 때 '이 분은 장애인이 아닌 것 같은데'라는 착각을 했다. 먼저 차에 올라타 있는 아저씨를 만났고, 나처럼 봉사 활동하러 온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서서히 차가 이동을 하길래, '오늘은 태울 사람이 없나 봐요?'라고 묻자 뒷자리에 있던 김 씨 아저씨가 대답했다.

"오늘 태울 사람, 여기 탔는데..."


김 씨 아저씨는 내가 알고 있는 그 어떤 사람보다 긍정적인 분이셨다. 물론 긍정적이라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저씨가 몸이 불편해지고 나서 부인은 집을 나갔고, 하나밖에 없는 딸도 돈을 벌어오겠다며 집을 나갔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저씨는 아주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가장이 무너지면... 집이 무너져... 가장은 절대 무너지면 안 돼. 절대..."

장가는커녕 대학 졸업도 하지 않은 나였지만, 아저씨의 말 끝에는 뭔가 묵직한 것이 달려있었다. 가장은 침묵 속으로 사라지더라도 마지막까지 버틸 수 있어야 하며, 멈추고 싶을 때 멈추는 것이 아니라, 멈추도 된다고 그때 비로소 멈출 수 있다는 말처럼 들렸다. 빨리 가장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하면 너무 철없게 들려지겠지만, 정말 그랬다. 빨리 가장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김 씨 아저씨와 헤어지고 만난 사람은 올해 23살, 예천이었다. 예천이는 나와 동갑이었다. 17살 때 갑자기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안과를 찾았는데, 그때부터 조금씩 시력이 나빠지더니 작년에 1급 시각장애인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망막... 색소... 변.성.증?"

예천이는 자신을 실명에 이르게 만든 병의 이름도 제대로 외우지 못하고 있었다. 나 역시 생전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관광학과에서 의학용어를 접하는 경우는 의료관광 쪽으로 취업 준비하는 친구들뿐이다. 망막색소 변성증. 나중에 친구에게 물어 알게 되었다. 망막에 색소가 들어가면서 망막이 파괴되는 병이라고 하는데 망막 파괴라는 상황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몸과 마음이 모두 멈춘다고 했다. 이름조차 생소한데, 유명 연예인 덕분에 조금 알려지긴 했지만, 당사자들은 자신의 병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예천이도 비슷했던 모양이다. 눈이 나빠졌나 보다 싶었는데, 실명이 될 거라고는 상당도 못했다고 한다. 거기에 사춘기가 겹쳐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자살 소동을 벌여 지금은 예천이 어머니는 회사를 그만두고 24시간 예천이 옆에 붙어 있다고 했다.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예천이 어머니가 혼잣말했던 모습이 하루 종일 나를 따라다녔다.

"내가, 내가 멀었어야 되는데. 차라리 내가..."


예천이와 예천이 어머니를 내려드리고 천천히 집으로 걸어가는 길이었다. 아직까지 일을 마치지 않았을 엄마가 생각났다. 통화라도 할 생각으로 핸드폰을 꺼냈지만 점심시간이 지나 통화는 어려울 것 같았다. 아쉬운 마음에 문자를 넣었다.

"엄마, 식사하시면서 일하세요"

예상한 대로 답은 없다. 마트에서 일하는 동안에는 핸드폰을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한다고 들었지만, 아주 가끔은 아쉬울 때가 있다. 오늘처럼 목소리라도 듣고 싶은 날에는 더욱 그랬다. 아쉬운 마음에 한 줄을 더 넣었다.

"엄마,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모르긴 몰라도 엄마는 확인하는 대로 답장을 보내줄 것이다. 늘 그랬으니까.

"아들, 엄마도 아들 사랑해. 많이 사랑해"라고.


10년 전,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엄마는 암 수술을 했다. 처음에는 아버지와 형, 누나, 누구도 나에게 엄마의 병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엄마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아버지는 내게 엄마가 외할머니와 여행을 갔다고 했었고, 나는 그 말을 의심 없이 믿었다. 하지만 집에 돌아온 엄마는 하루 종일 누워 지냈고, 외할머니가 한 달 동안 집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알게 되었다. 엄마가 암 수술받고 왔다는 사실을. 그날 저녁 혼자 방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나도 알만큼은 알고 있었다. 암이 죽을 만큼 아픈 병이라는 것, 암에 걸려서 죽은 사람이 많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충격이었다. 하지만 엄마 앞에서는 입술을 꽉 깨물면서 참았다. 내가 울면 엄마가 더 많이 아플 거라는 것을, 생각보다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던 나였다. 그렇다고 해도 밤에는 사정이 달랐다. 피곤하다고 일찍 자리에 누워 혼자 밤새도록 울었다. 소리도 못 내고 혼자 끙끙대면서, 별의별 생각이 들어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엄마가 갑자기 사라지면 어떻게 하지, 엄마가 갑자기 죽으면 나는 어떻게 하지.


누나와 형은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오히려 내가 아는 척을 하면 혼낼 분위기였다. 그래서 나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행동했다. 특히 엄마 앞에서. 누나와 형 모두 그렇게 했으니까. 언젠가는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날이 오겠지, 그런 상상을 하면서. 물론 밤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울음이 조금씩 잦아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많이 나아졌다. 지금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것처럼 많은 기억이 흐릿해졌지만 한 번씩은 새벽에 잠이 깨는, 잠이 달아나는 일이 종종 벌어지곤 한다. 그렇다고 엄마에게 걱정을 드러내거나 마음을 표현하지는 않는다. 혼자 생각한다. 혼자 기도한다. 엄마가 건강하기를, 엄마가 오래도록 곁에 있어주기를.


그런 내가 엄마에게 문자를 보내게 된 것에는 같은 과 친구 성진이가 도움이 컸다. 성진이 어머니께서 검진 때문에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을 때였다. 수업 때문에 함께하지 못하는 성진이가 엄마에게 문자를 보내고 있었다. "어머니, 검진만 받는 거니까 마음 편하게 먹으세요. 어머니. 사랑합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우리는 '사랑한다'라는 표현을 받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사랑한다'라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성진이 문자에 용기를 얻어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에게 문자를 넣었다. 아주 짧게.

"엄마, 감사합니다"

낯간지러운 표현에 문자를 보내 놓고 혼자 어쩔 줄 몰라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괜한 짓을 했나 싶어 걱정하고 있을 때, 내 모든 걱정을 한꺼번에 날려준 문자가 도착했었다.

"아들, 엄마도 아들 사랑해. 많이 사랑해"


성진이는 옳았다.


by 기록디자이너 윤슬

이전 11화괜찮다고 말하기는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