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윤슬작가 짧은 소설

by 윤슬작가

"라이더? 라이더는 어떤 일하는 회사인데? "


나름 이름만 대면 알아주는 대학의 캠퍼스 커플이었다. 아니 지금도 여전히 만남을 이어가고 있으니 '캠퍼스 커플이다'가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높은 성적표와 거창한 자격증은 없어도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당당함, 무엇보다 연봉 높은 회사를 고집하지 않았기에 쉽게 취업될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해할 수 없는 형태로 불합격 통지를 받았고, 원인도 모른 채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비통한 심정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은수 선배는 희한하게도 면접에서 계속 떨어졌다. 사실 처음에는 서류심사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서류는 어떻게 되는 것 같아’라는 쪽으로 흘러갔다. 문제는 면접이었다. 일주일 동안 미역국은커녕 ‘네 이름이 무엇이니’라며 아예 국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낼 정도였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은수 선배와 함께 입사 준비를 한 동기 중에서 가볍게 합격 문턱을 넘는 사람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동기들을 통해 어쩔 수 없이 듣게 된 소식은 최대한 빠른 속도로 반대쪽 귀로 내보냈다. 나만 모른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이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선배를 만났다. 괜찮다고 말하고 있지만, 내심 의기소침해지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말이다. 다행히 은수 선배는 잘 견뎌주는 것 같았다. 지난 주말에 만났을 때도 그랬다. 괜찮다는 말과 함께 아무렇지도 않은 척,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여러 번 강조하며 얘기했다.


“걱정 마. 잘 될 거야”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하라고 했잖아"

"누가 나보고 그랬어. 대기만성형이라고"

오히려 은수 선배는 법인세, 부가세, 종합소득세 신고로 3월부터 지금까지 계속 야근과 잔업을 하고 있는 나를 위로했다.

"힘들지?"

"그렇지... 3월부터 5월까지는 늘 그렇잖아. 법인세 결산 신고도 해야 하고, 부가세, 마지막으로 개인사업자 소득세 신고까지만 하고 나면 그래도 좀 나아져"

"많이 힘들겠다. 조금만 고생해. 나도 열심히 알아보고 있어. 얼른 취직도 하고, 돈 모아서 결혼하자"

"응, 선배. 우리 잘 살 수 있겠지?"

“걱정 마. 나만 믿어. 잘 될 거야”

어떤 식으로든 은수 선배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마음이 생각보다 무거웠던 모양이다. 가만히 어깨를 토닥이던 선배가 나를 안아주는데 갑자기 마음이 푹 내려앉았다.

‘선배... 우리 정말 잘 살 수 있을까?’


사실 우리는 졸업 후 직장을 얻게 되면 1년 정도 일을 해서 직장 대출을 받을 계획이었다. 양쪽 부모님들께 조금 도움을 받아 결혼식을 올릴 생각이었다. 캠퍼스 커플로 지내는 동안, 결혼 얘기도 자주 했었다. 같은 집에서 출, 퇴근하고 좋은 곳 함께 여행 다니면서 함께 늙어가자는 말을 캠퍼스에서 3년, 졸업하고 15개월째 계속하고 있다. 스스로 답답해하면서도 둘 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서로의 마음을 살피면서 지내오고 있다. 그런데 낮에 문자가 온 것이다.

“나 취직했어. 축하해 줘. 이따가 저녁에 거기서 만나”

"라이더? 라이더는 어떤 일하는 회사인데? "

"회사? 어떤 회사라고 하면 좋을까. 그런 거 있잖아. 푸드 세상에 음식 주문하면 음식을 배달해 주잖아. 그런 사람을 라이더라고 하는데..."

갑작스럽게 더워진 날씨에 시원스럽게 목구멍 속으로 내달리던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순간 돌덩이가 되어 속에서 입안에 차곡차곡 쌓이는 느낌이었다.

“응? 그러니까 음식 배달하는 사람?"

"보통 그렇게 말하는데 단순히 음식 배달하는 사람이 아니야. 정확하게 표현하면 사업가라고 할 수 있어. 자기 사업을 하는 거야"


"사업?"

"그래. 요즘은 집에서 배달해서 먹는 사람이 많잖아. 그래서 라이더가 많이 필요해지고 있어. 다시 말해 시장이 형성되어 있고 점점 커진다는 얘기가 되는 거지 "

"....... 결국 배달하는 사람이잖아. 짜장면 배달하는 일을 하겠다는 거잖아...”

“그렇게 볼 것만은 아니야. 수요가 있는 곳에 시장이 만들어지는 건데, 배달하는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 그게 중요한 거야"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일도 깔끔해. 건당 수수료를 받는 형식인데, 정확하게 내가 뛴 만큼 수입이 생기는 방식이야”

“...”

“라이더는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수입이 결정되는 거야. 아까 얘기했잖아. 자기 사업이라고. 일을 하면서 배워 나도 업체를 하나 운영해볼 계획이야”

“그래?”


어찌 되었든 복잡한 마음을 추슬러 축하해 주어야 하는데, 목구멍에 걸린 돌덩이를 잘게 부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차라리 듣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쑤시고 다녔다. 목구멍 속으로 억지로 돌덩이를 밀어 넣으면서 소리쳤다. 부서져라. 부서져라. 어서. 어서. 이런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선배는 의지를 다지기 위함인지, 나를 안심시키기 위함인지 시선을 맞추며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물론 얼마나 많은 플랫폼에 접속되어 있고, 콜을 얼마나 잘 따느냐의 문제가 관건이긴 해. 다시 말해 노력이 필요하지. 자기 관리도 필요하고. 그런 측면에서 이건 사업이야. 사업... "

“선배?”

“응?”

“... 선배 좋은 대학 나왔잖아. 다른 사람들처럼 회사 다니면 안 돼?”

“그냥 좀 더 알아보고 취업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알잖아... 요즘 취업이 쉽지 않아. 불경기, 불경기 하는데, 정말 쉽지 않아. 그리고 평생 이것만 하겠다는 게 아니야. 경험도 쌓고 인생 공부도 하고.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하라고 했잖아”

“그런 사람들 오토바이 타고 다니던데... 위험해 보여. 사고가 날까 봐 걱정도 되고...”

"알아. 알아 네가 뭘 걱정하는지. 조심할게. 정말이야, 정말"

"... 계속할 거 아니지?..."

"그래, 계속할 거 아니야. 공부도 하고, 내 몸도 챙길 거야. 너무 욕심내지 않고 열심히 해볼게. 정말이야. 나 믿을 수 있지?"


은수 선배는 어려운 이야기가 나오면, 적당한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면, 잠시 뒷머리를 긁적이다가 긁적이던 손으로 안경을 밀어 올리면서 진지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지는 버릇이 있다. 지금처럼.

“나... 믿을 수 있지?”

그 말이 지닌 막막함을 외면할 수 없었는지 스스로 조심스럽게 마무리를 했다.

"내가 열심히 할게. 정말. 믿어줘”

나는 선배가 어떤 의미로 그 말을 하는지 잘 알고 있다. 인생이 자신의 이마에 툭 던진 과제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가겠다는, 결코 뒤돌아서서 도망치지 않겠다는 다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둘이 같이 술을 많이 마시던 어느 날, 선배는 내게 결코 프러포즈 같지 않은 프러포즈로 청혼했고, 나는 입가로 퍼지는 미소와 함께 말없이 웃기만 했었다.


“나 이은수는 어떤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뒤돌아서지 않을 것이며, 나 이은수는 부끄럽지 않은 경험으로 나의 인생을 만들어나갈 것입니다. 나 이은수는 허은혜가 믿어주면 그 믿음 하나로 세상 끝까지 갈 수 있습니다. 허은혜는 이은수를 믿고 평생을 함께 하겠습니까?”

“네, 허은혜는 이은수를 믿고 평생을 함께 하겠습니다"

매일 늦은 시간까지 도로를 달릴 선배를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을 바늘로 쿡쿡 찌르는 것처럼 어질어질하다. 뉴스에서 사건, 사고 소식이 들릴 때마다 다리가 후들거릴 생각에 ‘그거 아니면 안 되겠어?’라는 말이 입안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하지만 애써 마음을 진정시켰다.


‘나라도, 나라도 믿어줘야지’

'나라도 잘 될 거라고 얘기해 줘야지'

'선배는 조심해서 할 거야. 분명 무리하지 않는다고 했잖아'

'그래, 그래 믿어줘야지, 내가 이러면 안 돼’

아파트 정문 앞에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괜찮은 척 환하게 웃음을 내보였다. 아주 멋진 여자 친구처럼 달콤함과 고마움은 전하는 인사도 놓치지 않았다.

“선배, 나는 선배 믿어. 나는 이은수를 믿어. 데려다줘서 고마워. 조심해서 가. 집에 도착하면 문자 넣을게”

"그래, 얼른 들어가. 조금만 지켜보다가 갈게"

"그럼 나 먼저 들어간다"

"그래, 얼른 들어가"

"응"


홀로 서 있는 은수 선배를 뒤로하고, 여느 때보다 어둡게 느껴지는 아파트 정문을 걸어들어갔다.

쌩....

무슨 급한 주문인지 배달 오토바이 하나가 바람을 가르며 지나간다.

순간, 나도 모르게 걸음이 멈춰졌다.

'선배가 저 일을 한다고?'


by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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