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시간이 살아갈 시간에게 건네는 말
지금보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른 어느 날 내 삶을 되돌아보면 과연 어떤 스케치가 그려져있을까?
마음 끌려서 그려본 것들, 마음 내켜서 시도해본 것들, 마음을 끌어모아 찍어놓은 것들은 과연 내게 어떤 말을 걸어올까?
그런 말이 있다. 크게 얻은 것이 있으면 크게 잃은 것도 있을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는 크게 잃은 건 없는 것 같다. 조금 김이 빠진 날이 있기는 했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기는 했지만, 섬뜩한 기분으로 절망감에 빠져 홀로 비를 맞은 기억은 별로 없다. 이쯤 되면 크게 얻은 것도 없다는 얘기가 될 것 같지만 하여간 적어도 내 기억에는 그렇다. 늘 누군가가 있었던 것 같다. 우산을 씌워주는 사람, 같이 울어주는 사람, 가만히 곁에 서 있어주는 사람이 있었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친구라는 이름으로, 동료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미처 깊이를 가늠하지 못해 놓친 인연도 있지만, 앞서지도 않았고, 뒤따르지 않으면서 함께 걸어준 사람들이 있었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서 모리 선생님은 이런 말을 한다. "우리의 삶은 매 순간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태어나오는 순간에만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살아가는 모든 과정에 부모든 친구든 스승이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고,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도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사랑을 나눠주는 법을 배워야 하지만,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도 배워야 한다. 그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라고.
몇 번을 다시 읽어도 좋은, 읽을 때마다 새로운 문장을 발견하게 되는 책이지만,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던 문장 중의 하나가 저것이다. 나는 오히려 주는 것이 쉬운 사람이었다. "나눠줄 만하니까, 할 수 있으니까 하는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의 도움이나 나눔은 어색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나눠줄 만하니까, 할 수 있으니까 해주지 않았을까'라고 받아들이지 못했다. 과연 내가 이런 도움을 받아되 되는지에 대한 의문과 함께 서둘러 도움이나 나눔을 갚아야 한다고 다짐하기에 바빴다. 그 상황이나 순간을 온전히 누리지 못했던 것이다. 거기서 더 나아가 상황을 누리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괜히 마음을 쓰게 했다는 생각에 미안함을 전하기에 바빴다. 모리 선생님의 가르침로라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랬던 나였지만, 요즘은 조금 달라졌다. 무엇보다 내가 과연 도움을 받아도 되는 사람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습관을 내려놓은 것이 결정적이었다. 그 고민을 벗고 나니 고마운 일이 생겼고 감사함이 차오르는 모습을 눈앞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지금은 그런 순간이 나를 찾아오면 온전하게 누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무언가 내가 더 도움을 주고, 나눠야 한다는 부담감까지는 떨쳐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어떻게 사랑을 받아들여야 하는지는 이해한 것 같다. 어제 책방에 도착하니 꽃다발이 배달되어 있었다. 꽃을 보내줄 사연도, 딱히 떠오르는 사람도 없었다. '누구지'라며 궁금한 마음에 손 편지를 펼쳤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분이었다. 순간적으로 '내가 이것을 받을 정도까지는 아닌데'라는 생각이 솟구쳤다. 하지만 이내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 아니. 이게 아니잖아. 실로 고마운 일이잖아. 실로 감사한 일이잖아. 그치?"
손 편지를 쓰듯 버튼을 꾹꾹 누르면서 한 글자씩 마음을 글로 옮겼다.
함께 일하는 동생이 꽃다발과 함께 사진을 찍어보라는 얘기에 사진을 찍으면서도 특유의 어색함은 어쩔 수 없었다. 거기에 사진과 함께 메시지를 보내면서, '괜히 마음을 쓰게 만든 건 아닌지 모르겠네...'라는 걱정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서 혼자 되뇌었다.
'고마워요. 감사해요. 이런 마음으로 가득채워도 부족한데... 윤슬... 아직 멀었어... 아직...'
by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