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네. 민지가 잘못했네"
"그건 민지가 잘못했네"
어떤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가만히 듣고 있던 딸이 수긍한다는 얼굴로 툭 던진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잘못'이라는 단어를 내미는 일을 어려워하지 않는 아이. 어릴 때부터 그랬다. 가끔 남편과 둘이서 얘기하면서 '너무 영혼 없이 얘기하는 거 아닐까?'라며 진정성을 언급하기도 했었지만 우리의 공통적인 의견은 '잘못했다'라고 먼저 얘기하는 것을 높게 평가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그런 부분은 여전했다. 어떤 상황을 두고 농담처럼 '양심'을 거론하면서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야?'라고 말을 건네면 언제나처럼 '민지가 잘못했네'라고 대답해 준다. 그런 아이를 볼 때마다 생각했었다.
'양심을 떠나, 진정성을 떠나 잘못했다는 말을 먼저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있구나'라고.
빵을 구워 간단하게 아침을 먹을 때였다. 얼마나 빵을 먹을지 몰라 쨈을 조금 넉넉하게 담았는데, 결국에는 절반 이상 버리게 되었다. 남편이 쨈이 필요하면 조금 더 내어먹더라도 적게 담았으면 좋겠다고 말을 건넸고, 남편의 말에 나도 모르게 웃으면서 '음, 잘못했네'라고 얘기했다. '잘못했네'라는 말에 머쓱해진 남편이 나를 보며 '이렇게 지적질하면 별로인데, 그치?'라며 말했고, 그 말에 함께 잠시 웃었다.
"아이가 나를 키운다"라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 말과 행동을 살펴보게 되었고, 아이에게 말하기에 앞서 내 말과 행동에서 불일치가 없는지 조심하게 되었다. 그렇게 조심을 해도 놓친 말과 행동으로 인해 걸려 넘어지기 일쑤였다. '자식은 부모를 보고 자란다'라는 말에 대한 부담감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현실성 있는 조언이라는 생각에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이가 17살이 되었고, 17살이 된 아이는 '잘못했네'라는 말을 먼저 꺼내 내어놓을 줄 아는 아이로 자랐고, 그 말을 배운 나 역시 '잘못했네'라는 말을 조금씩 던지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희한하게 '잘못'이라는 단어는 사람을 주눅 들게 한다. 그 단어를 뱉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기분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피하게 되는데, 조금 더 익숙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특히 이번처럼 가벼운 일이 아닌, 정말 큰 상황이라면 퍼뜩 수긍하고 내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윤여정이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을 받은 것에 대해 기사를 보았다. 송혜교는 윤여정을 얘기하며 젊은 세대와 어울려도 거리낌 없이 어울릴 수 있는 선배라고 언급하고 있었고, 나영석 PD는 현장에서 잘못된 부분이 있어 얘기를 건네면 피하거나 다른 핑계를 대며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빨리 인정하고 수긍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라는 얘기하고 있었다. 윤여정을 보면서도 생각했던 것 같다. 잘 어울리는 사람, 잘못을 수긍할 줄 아는 사람, 미안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쉽지는 않겠지만 소중한 태도라는 생각으로 노력을 다해볼 생각이다. 농담처럼 가볍게 노력하다 보면 나중에는 더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