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항구야. 언제나 불이 켜져 있는 항구

by 윤슬작가

가끔 혼잣말로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말이 있다.

"나는 항구야. 언제나 불이 켜져 있는, 잠시 정박하는 배와 출항하는 배를 밝게 비춰주는 등대가 있는 항구, 나는 그런 항구야."


조금 솔직히 고백하며 예전에는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내 곁으로 다가온 사람이 오래 머물렀으면 좋겠다'

'늘 함께 했으면 좋겠다'

'내 마음을 모든 사람이 알아차렸으면 좋겠다'

집착이든, 욕심이든 그런 바람이 있었다. 그러다가보니 누군가가 곁을 떠나거나 소식이 끊어지게 되면 원인 찾기에 나섰는데, 그럴 때마다 그렇게 된 이유가 나에게 있는 것처럼 스스로를 '문제 있는 사람'으로 몰아갔다. 나에게 문제가 생겨난 일이라고 여겼고, 나를 바꾸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결론에 이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노력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노력이나 의지와 상관없는 일이 벌어지는 이유가 뭘까?'

'이해와 오해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하여간 제법 많은 사람이 오갔다. 지금까지 만남을 지속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연스럽게 소식이 끊어진 사람도 있다. 오해에 대해 이해를 구하기도 했고, 이해받는 것을 포기한 경우도 있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오갔는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어느 시인의 말처럼 '오해받으며 살아갈 수 있다'라는 말과 '진심은 통한다'의 경계에서 중심을 잡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어떤 방향성이라는 것을 지니게 되었다. 어떤 노력과 상관없이 떠날 사람이 생길 수 있고, 또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다가와 우산을 내밀어 주고, 바람을 막아주는 일도 생긴다는 것을.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 있구나!, 모든 것의 잘못이 나에게 있는 게 아닐 수도 있겠구나!"


그때의 깨달음은 내 삶, 태도, 방식, 일을 바라보는 관점에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명확해지는 데 도움을 주었다. 바꿔야 하는 것과 바꿀 필요가 없는 것, 걱정해야 할 것과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 바라는 것과 바라지 않아야 할 것의 구분도 생겨났습니다. 생각이 그쯤에 이르자 많은 부분이 편해졌다. 받아들이는 것이 쉬워졌고, 주변의 바람으로부터 물러서는 일도 가벼워졌다.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에 어떤 학자가 하느님께 항의하는 글이 나온다. 어떤 사람은 행복하고, 어떤 사람은 불행하고, 이것은 몹시 불공평한 처사라고 얘기한다. 이에 하느님은 그를 요르단 강변에 불러 십자가를 지고 온 사람들의 무게를 달아보라고 한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큰 십자가도 작은 십자가도 무게가 모두 똑같았다. 하느님이 학자에게 전했다.


" 나는 십자가를 줄 때 누구한테나 똑같은 십자가를 준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행복하게 웃으면서 가볍게 안고 살고, 어떤 사람은 고통스러워하면서 쇳덩어리처럼 무섭게 짊어지고 산다. 내가 늘 똑같이 공평하게 주지만 이렇게 저마다 다 다르게 받는 것이 삶이라는 십자가다."


'저마다 다 다르게 받고 있다.'

저 문장을 읽으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모든 것은 어떻게 받아들이냐의 문제겠구나, 어떻게 이해하느냐의 차이겠구나.'


요즘은 정확한 이해, 본질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되려고 애쓰고 있다. 어떤 곳을 바라보고 있으며,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생로병사의 단계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거시적 안목을 유지한 채, 세심하게 들여다보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마치 바람이 드나드는 길목에 서 있는 것처럼, 배가 드나드는 항구의 등대처럼, 누구를 위해 종이 울리는지, 무엇을 위한 메시지인지 궁금해하며 바라보고 있다.


오늘도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저 멀리 정박을 위해 속도를 줄이며 다가오는 배가 보인다.

출항 준비를 마친 배가 준비를 마쳤다는 신호를 보내오고 있다.

고개 돌려 밝은 신호를 보내준다.


나는 등대다.


from. 기록 디자이너 윤슬작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윤슬은 윤슬답게, 당신은 당신답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