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과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아무 일도 없는 게 제일 좋은 기다"
"그쵸? 어머님, 아무 일도 없는 게 제일 좋은 거죠?"
"그럼, 아무 일도 없는 거, 그게 제일 좋은 기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무 일도 없으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특별한 날, 계속되는 이벤트가 연속적으로 찾아와야 한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물론 지금은 아니지만. 다급한 소식 없이 천천히 시작되는 아침이 감사하고, 웃으면서 각자의 공간으로 현관문을 나서는 것이 감사하다. 돌이켜보면 행복이라고 하는 것에 매달렸던 적이 있었다. 형체도 없는 것을 붙잡은 것도 모르고 어떤 지표가 있는 것처럼 행동했었다. 그랬던 사람이 지금은 행복이 아닌 '감사'라는 단어를 기억하려 애쓰고 있다.
물론 여기까지 오는 데에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가는 필요했다. 그것은 '삶'이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살아보는 것'이었다. 살면서 배운 것들이 상당하다. 살아보지 않았다면 몰랐던 것들을 살면서 많이 배웠다. 그런 까닭에 오늘도 나는 '경험주의자'의 길을 선택한다. 물론 완전히 엉뚱한 방향은 배제하려고 노력하면서. 당장 어떤 결과가 금방 드러나지는 않지만, 나의 인생뿐만이 아니라 타인의 인생에 대해서도 다정해지는 일에 '경험'은 일등공신이었다. 순간의 선택으로 다른 결정을 내리고, 다른 경험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언제나 '배움'이 존재했다. 배움이 늘어나는 과정은 하나의 세계에서 또 다른 세계로의 이동을 의미했으며,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과정이었음을, 나는 인정하다.
"아무 일도 없음"은 실제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을 의미하지는 않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저마다 자신의 자리에서 마이크를 붙잡고 말을 건네고 있으며, 갑자기 램프가 꺼지는 사건에 당황하며 현장에 달려가있음을, 이제는 안다.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음에도 매일 새롭게 가지를 뻗는다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이제는 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음을,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조심스럽게 호흡을 가다듬고 있음을, 이제는 안다. "아무 일도 없음"은 실제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 아니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처럼, 충격스러운 사건을 뒤로하고 기쁨의 순간을 던져두고 양팔 벌려 도움닫기를 연습하고 있음을, 이제는 안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