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크 입센의 작품 <노라의 집>에서 노라는 자기 자신을 위해 특별한 선택을 한다. 두 아이를 남겨두고, 자신이 예쁜 인형이기를 원하는 남편을 두고 독립을 선택한다. 그녀의 독립은 단순한 반항이 아니다. 원망이 아닌 절규였고, 익숙함이 아닌 새로움이었으며 'best'가 아닌 ' only'였다. 유일한 방법을 찾은 사람처럼, 전투사가 되어 내뱉는 노라의 말에 개척자의 냄새가 느껴졌다.
"나는 나 자신부터 교육해야 해요. 당신은 그 일을 도와줄 만한 사람이 아니에요. 내가 혼자 해야 해요. 나는 자 자신과 바깥일 모두 깨우치기 위해 완전히 독립해야 해요."
강점이든, 약점이든, 좋아하는 것이든, 두려워하는 것이든, 무엇이 되었든 정면에서 마주 보겠다고 선언하는 노라에게서 잊고 지낸 어느 봄날의 장면이 떠오른다.
교육자의 길을 간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어느 날이었다. 주위에서 소개를 해주어서 찾아왔다는 분과 글쓰기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글쓰기를 넘어 책 쓰기, 나아가 삶에 관한 얘기까지 경계 없이 주제를 넘나드는 분위기였다. 얼마나 이어졌을까, 그러다가 속내를 털어놓았다. 자신은 무엇이든 끈질기게 하지 못한 것이 약점이라며, 지금까지 어떤 성과도 내지 못했다고 답답해했다. 6개월 과정을 수강하고도 두 달 만에 그만둔 사연에서부터 컴퓨터 자격증을 따고 막상 일을 하러 가서는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두었다는 얘기까지. 끈기도 부족한데 성격도 다혈질이라 잘 해내는 것이 없다고 고백했다. 가만히 듣고 있고 있던 나는 몇 가지가 궁금했고, 그녀의 대답을 들은 이후 외부의 결과가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6개월 동안 배우기로 한 강좌는 두 달을 성실히 다녀보았지만 도저히 흥미가 붙지 않은 것이 이유였고, 자격증을 따고 현장에 갔을 때는 업무의 문제가 아니라 나이가 너무 어린 사람들의 대화법이나 언어에 적응하는 데 너무 힘이 들었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얘기가 끝났을 때 나는 지금 겨울이 아니라, 봄을 지나고 있다는 말을 해주었다.
"스스로를 알아내시는 중이시잖아요. '그럴 것 같아'에서 끝내지 않고 도전을 해보았고, 생각과 다른 부분이 무엇인지, 내가 어떤 상황을 어려워하는지를 알게 되셨잖아요. 밑바닥에 꽁꽁 숨겨져있어서 잘 모르는 나를 알아낸 소중한 기회였네요. 그러면 다음에는 똑같은 상황은 만들지 않겠죠. 겨울이 아니고 봄이라고 해도 충분할 것 같은데요?"
"이 나이에요? 봄? 그럴까요?"
"그럼요, 청춘은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이라는 말 있잖아요? 지금 자기 자신을 알아가고 있잖아요. 교육이라는 말 아시죠? 교육은 '안에 있는 것을 밖으로 끌어낸다'에서 유래했어요. 지금 내면에 있는 것을 밖으로 드러내어 나를 알아내는 작업 중이시네요. 그렇게 나에 대한 정보가 쌓였을 때, 정보를 가지고 활용을 할 수 있는 거예요.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활용은 불가능하겠죠?"
"작가님이 아니라 선생님 같아요. 아니다. 교육자라고 해야 하나?"
"교육자요?... 그렇게까지 거창하지는 않아요"
그 즈음 <인형의 집>을 읽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노라의 얘기까지 해주지는 기억나지는 않지만, 스스로를 교육하는 위대함에 대해 한참 떠들었던 기억이 난다.
언어는 생각의 집이고, 하나의 세계라고 했다. 언어는 단순한 글자의 조합이 아니다.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고,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를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그런 측면에서 자신이 어떤 언어를 쓰는지, 근거가 되는 생각은 무엇인지, 어떤 세계관과 인생관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지는 일생 동안 지속되어야 한다. 똑같은 오늘이 계속 반복되는 것이 아니니까. 우리는 스스로 교육자가 되어야 한다. 자신을 교육하고, 내면에 있는 것을 밖으로 모습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나는 스스로를 교육하는 작업은 평생에 걸쳐 이뤄져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평생교육'이라는 말은 4차 혁명의 시대가 되어서 화두가 된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반복적으로 강조되었다. 평생교육, 가장 처음의 대상은 누구도 아닌 '나'였다. 나를 발견하는 것을 목표였고, 조금 더 확장되어 '누군가 스스로를 발견하는 일을 돕는 것'이 되었을 뿐이다. 교육자의 길을 간다는 거창한 표현은 여전히 부담스럽다. 다만 '스스로를 발견하는 일을 돕는 사람'이라는 정도는 기꺼이 동참할 수 있을 것 같다.
from. 기록 디자이너 윤슬